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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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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5일 20시 00분 등록
 

 



둘째가 중학생이 되었다. 3월을 시작하며 새로운 출발을 했다. 멀리 떨어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어 살짝 긴장한 채로 입학식을 함께 했다. 새 교복을 입은 낯선 모습으로 어색하게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는 허한 속을 달래려 거한 점심을 먹고 각자의 일터로 바쁘게 헤어졌다. 그날 밤, 남편은 금연 첫날을 보냈다며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우리 천재소녀가 그렇게 소원하던 금연을 남편이 드디어 시작한 것이다. 남편의 금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년 전, 약국과 보건소를 들랑거리면서 온갖 금연보조용품을 갖춰놓고는 몇 달 못가서 다시 담배를 사들고 왔던 전력이 있다. 그 뒤로도 또 시도는 했었다. 하지만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어서 그냥 피우라고 했더니 잽싸게 담배를 사왔었다(가끔은 말을 참 잘 듣는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머리가 아프다, 눈이 빠질 것 같다, 운전이 무섭다, 식은땀이 난다, 온몸이 가렵다, 입맛이 없다, 악마랑 산다, 다중이다, 등등 지난번과 똑같은 레퍼토리를 떠들더니 말시키지 말라며 화를 낸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작년에 내가 약속을 했다고.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났다. 자전거를 번번이 잃어버리고는 또 산다기에 담배 끊으면 사준다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징징거리는 꼴이 완전 초딩이 따로 없다.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늘 길에 친정 엄마랑 통화하다가 남편 얘기가 나왔다. 엄마는 맛있는 거 해주라고 하시며 많이 웃으셨다. 퇴근길에 전화를 한 남편에게 그 얘길 전했더니 뭘 해줄 거냐고 물었다. 해줄 건 없고 같이 한잔 하자고 대답했다. 역시나 목소리가 바로 천진난만해졌다. 으이구 술 마시는 초딩. 담배를 끊더니 말이 더 많아졌다. 내 말은 듣는지 마는지 자기 할 말만 끊임없이 해댄다. 패치를 붙였더니 좀 낫다,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갑자기 담배는 왜 끊었는데? 내 물음에 대한 남편의 답은 ‘그냥’이다. 그 순간 문득, 어떤 복권 당첨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사람은 복권에 당첨이 되자마자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혹시 남편도 복권에 당첨이 되어서 혼자 오래오래 살려고? 내가 그렇게 사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는데 또 샀단 말이야? 그나저나 진짜 당첨이 됐으면 어쩌지?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다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상상이었다.


얼마 전에 TV에서 본 우스개 하나. 중년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와 필요 없는 한 가지는? 필요한 것은 돈, 친구, 건강, 딸이고, 필요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남편이란다. 그렇다면 중년남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다섯 가지는? 부인, 아내, 집사람, 와이프, 마누라란다. 남편과 둘이서 이 얘기를 듣고 나는 큰소리로 웃었고 남편은 바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동의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다 또 싸우지 싶어서 말았더랬다.


남편은 내가 자전거를 사준다고 해서 끊었다고 한다. 물론 막내가 걸리기도 했을 것이다. 어쨌든 거절하기 뭣해서 100일 되면 기념으로 선물하겠다고 했더니 버럭 화를 또 낸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면서 당장 사 내라고 한다. 운동도 하고 뱃살도 뺄 테니 두고 보라며 시키지도 않은 소리를 해댄다. 아~ 초등학교를 졸업한 막내가 기숙사로 가자마자 초딩이 하나 생겼다. 방귀대장 마빡이 술 마시는 초딩. 남편에겐 내가 꼬옥 필요한 모양이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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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나비이기를. 그대의 꿈이 꽃잎이기를. 그리하여 하늘 가득 날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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