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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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 – 무의식에 대한 한 고찰>
대학 4학년 한여름 밤이었다.
그때 나는 졸업 후 진로를 앞두고 한창 고민중 이었다. 집안 형편은 내가 졸업해서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이 타당했지만, 그때까지 나는 내가 취직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사는 생활인의 삶과 나 자신은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열망 또한 없었기에 공부는 지지부진한 그런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단순히 때가 되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선택인가를 해야 하고, 그것에 따라 내 앞길이 갈린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밤도 그렇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여름이라 열어둔 내 방의 넓은 창 사이로 환히 보이는 한여름의 둥근 보름달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달을 바라보는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한 순간 나를 잊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을 꿰뚫는 것이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지금 같은 이 몰입의 순간을 내게서 앗아가는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라는 암시.
즉, 내가 외적으로 무엇을 하든 나는 그대로 나일 수 있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일기장에 한밤 달빛을 받으며 쳐다보고 있는 내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대학원 시험에서 실패하고 서울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생활과 천연덕스럽게 계약을 한 내 모습을 스스로 비관적으로 볼 여지도 있었으련만, 다행히 나는 스스로의 모습을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위한 하나의 단계로 인식하며 계속 앞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겐 너무나 당연하게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나를 위한 그 마음의 자리는 남편이나 아이로 대체되지 않았다. 가끔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친구나 지인들이 ‘이제 내가 뭘 하겠니, 우리 애들이 잘 되야지!’ 라고 하는걸 들을 때면, 내 스스로가 너무 개인적이고 때로는 이기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속의 그것은 말한다.
‘네가 먼저 있고, 네 가족이 있는 것이고, 네 스스로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주변인들에게도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단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감각이 무뎌지고 퇴화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일깨우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면 그 의미를 파헤치려 노력했다.
가끔 좋은 사람들이 나에게서 무슨 열정, 하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이 읽힌다며 호의적인 눈길을 보낼 때, 정말 기분이 충만한다. 나에겐 뭔가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나, 공유하지 못한 나만의 방식으로의 공감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아주 흔하게 발견되는 시대적 감성의 뭉치이기도 하고, 그리고 특정 주파수 영역에선 아주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 고유의 감성이기도 하다. 아이의 의견을 어른의 권위로 무시하던 그때의 행태에 부당함을 느꼈던 마음, 편파적이고 주관적인 결론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혐오하는 기질이기도 하고, 느껴지면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편견과 무지로 의해 마음 아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는 괜찮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을 어떻게든 공유하고픈 그런 열정이 아직 내 마음속에서 어떤 형태로 발현되어야 할지 몰라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독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융의 고독과 예민한 감성에 눈길이 많이 갔다. 나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의 마음 앓이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기억하는 장면의 선명함이 놀라웠다. 그는 내면에 영향을 미친 장면을 80세가 넘어서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기억을 되돌이켜 본다. 그리고 무엇이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지 유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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