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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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 – 무의식에 대한 한 고찰
제목 : 일곱 살의 나
‘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나’ 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였다. 그렇다, 거위는 매일 하나의 황금알을 낳았지만, 그 뱃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무엇인가가 황금알을 계속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때는 X-ray 가 없었다. 하지만, 있었더라도 그 거위가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그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이, 오래 전 코스모스(우주)라는 TV 프로그램에서의 인상 좋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퍼포먼스 한 장면이었다.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화학적 물질들(수소와 탄소, 산소 그리고 물 등)을 정확한 양과 비율로 양동이에 섞어 넣고 긴 막대기로 휘휘 젓고, 싱긋 웃으면서 하는 멘트 – “그런데, 왜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 무엇인가가 부족한 거다. 생성시기의 온도나 압력 같은 환경의 미비일까? 아니면 신의 입김 부족? 그것도 아니면 양동이가 혹시 ‘Made in China’?
이 두 가지로는 글감이 안되겠다 싶어, 이번엔 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왜 ‘지금의 나’가 되어 있을까? 프로이트의 무의식, 융의 집단적 무의식, 마이어스와 브릭스의 MBTI 등 내가 조금 아는 지식으로는 답에 이르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도 막막해서 급기야 초등학교 생활통지표를 찾아보게 되었다. 1학년에서 5학년까지의 - 6학년 것은 없었음 - 행동발달사항이나 특기사항 난을 보니, 오 맙소사! 지금의 나와 이렇게 같을 수가 있나? 당시 선생님의 글씨가 붉은색도 아닌데, 전율 비슷한 것을 느꼈다. 뭔가 중요한 보물을 잊고 살아온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 아니, 상시 업데이트되어왔던 진행형의 나는 최소한 7세의 나와 언제나 동일했다는 것인데,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수십 년간 거쳐왔던 주변환경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지하철, 직장, 컴퓨터, 토익, 아파트, 인터넷, 승진, 스마트폰 등등.
그렇다면, 어릴 적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유전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취학 전 가정교육이나 많지 않은 경험을 통한 인식들일 것이다. 유아기에 형성된다는 프로이트적인 무의식의 영향은 아직도 느낌이 잘 오진 않고, 융의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개별적인 특성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고, MBTI는 초년의 심리유형에 대한 관련은 적은 편이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객관적인 관찰에 의한 ‘일곱 살의 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나아가 그것이 유전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짧은 유아시절의 경험이나 무의식의 결과인지 보다는,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는 나의 일곱 살 때의 성격 - ‘마음의 고향’이나 ‘제0의 고향’ 이라 부르면 어떨지? - 에 더욱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일곱 살의 나’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이 제2 제3의 고향을 만드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마음의 고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므로. 하지만, 나라는 것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기 자신을 떠날 국면을 자주 맞게 된다. 상급학교 진학이라든지, 전공의 선택 특히, 직업의 선택 등, 당시에 원하는 선택을 했든 원치 않은 선택을 했든, 이런 관문 자체를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위의 권유나 화려한 유혹에 의해 또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를 지켜나가지 못했던 것에 있다. 이렇게 일단 ‘마음의 고향’ 혹은 ‘제0의 고향’을 떠나게 되면, 기쁨은 짧고 고난은 길어진다. 산행을 하다가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 것은 즐겁지도 않지만 쉽지도 않다. 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온다. 갈수록 기암절벽을 만나게 될 것이므로. 일곱 살의 성격이 평생토록 바뀌는 것이 아니니, 당연히 돌아올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황금알을 낳는 그 무엇이 ‘일곱 살의 나’일지도 모른다. 성공의 싹마저 잘라버리는 어리석음은 피하기.
그 양동이에 ‘일곱 살의 나’를 넣어 휘휘 저으면 나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 부족했던 ‘0%의 핵심요소’를 무시하지 말기.
이렇게 다짐해봅니다.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