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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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4] 도망치고 싶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밀실로 숨어들어 세상의 눈을 피하고 싶었다.
영국에서 돌아온 지난 6년 동안,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 아니고선 거의 새로운 사람을 일부러 찾아서 만나지 않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피해 동굴로 숨어 들어온 짐승처럼 그냥 그렇게 숨어 지냈다. 보이지 않는 내 갈 길 때문에 불안했지만, 함께 운동을 해왔던 지난 동료들과의 만남이 점점 더 힘들어 졌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그들의 길에 더 이상 함께 할 수가 없었다. 그 무엇인가를 쫒아 점점 더 내 속으로 파고들었고, 그 몇 해 동안 나는 너무 외로웠다. 또 다시 이념의 도그마에 빠지는 것이, 또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 받고 상처 주는 것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거 같았고,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모른 채.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막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바닥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아파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속에 무엇이 숨어있는가.
나는 그것을 ‘짐승’이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잠시 지나치는 슬럼프라고도 생각했고, 가벼운 우울증이라고도 믿고 싶었다. 그런데, 마흔을 전후해서 점점 잦아지고, 점점 요동을 치더니, 결국 지난 일 년 내내 요동을 쳤다. 김광석에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다가 울컥해서 차를 세우고 울기도 하고, 반 발짝만 더 나가면 죽는 것도 별거 아니겠다 싶은 난간에도 몇 차례 서 봤다. 정말이지 하루에도 열 두 번 변덕을 부리는 그것을 나는 ‘짐승’이라고 불렀다. 미쳐 날뛰는 고삐를 잡아보려다 뒷발에 채이기도 하고, 질질 끌려 다니다가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책들을 폭식하기도 했다. 술이 아니면 잠시라도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정말이지 어찌해야 할 줄을 몰랐다.
108배 명상을 시작했다. 매일 매일. 어떤 날은 4백배를 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힘든 날은 그렇게라도 해야만 견딜 수 있었다. 묻고 또 물었다. 비우고 또 비우고 어느 때는 억지로라도 토해내야만 했다. 때로는 불꽃처럼 튀기도 하고, 천천히 가라앉는 흙탕물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만난 생각들이 있었다. 놀라웠다. 20년도 더 된 기억들, 15년 전에 잘못하고서도 사과를 미뤄왔던 일들, 짧게 스쳐들었던 별로 중요치도 않았던 말들까지도. 내 속은 그야말로 온갖가지 잡똥사니, 쓰레기통이었다. 이미 유통기한을 넘겨 상한 음식들이 곰팡이를 피우면서 부패하기 시작해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 왔지만, 정작 행복하지는 못했다. 남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는 못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가난을 탓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이목이 무섭기도 했고, 금을 밟으면 안 될 것 같은 소심함도 있었다. 일을 핑계 삼기도 하고, 입바른 칭찬 몇 마디에 귀가 가벼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림 그리는 일을 미뤄왔고, 글 쓰는 일을 주저해왔다. 내 안의 짐승은 그렇게 굶주렸고, 소외되어 왔던 것이었다.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껴안고 춤을 출 것이며, 가슴으로 느끼고 부딪혀가며 살 것이다. 그렇게 아주 조심스럽게 내 안의 짐승을 길들여가며.
나는 봄을 기다린다.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마흔 세 번째 봄을 맞을 것이다. 단 한번 뿐인.
P.S. 아플 때면 꾸는 꿈이 있다.
그렇지만 깨고 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꿈을 꾸면서 나는 안다. 또 이 꿈이구나. 그리고 경험적으로 내가 곧 아프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물론 어떤 때는 끙끙 앓을 때 이 꿈을 꾸기도 한다. 둥근 원반들이 돌고, 재질감이 느껴진다. 얼음처럼 매끄럽지 않다. 그렇다고 많이 거칠지도 않지만, 다소 거친 편이다. 그것들은 중심을 바꿔가면서 때로는 크기까지도 달리하면서 계속 돈다. 그러면서 어디론가 자꾸 빠져든다. 어지러움과 멀미가 느껴진다. 어떤 때는 좀 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저 견딜 만한 정도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몸에서 뭔가가 쑤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첨엔 그냥 긴장이 풀리나보다. 했는데...
웬걸... 그동안 저를 감싸고 있던 예리한 레이더가 꺼진 것같이
갑자기 매우 감각이 둔해졌습니다.
아... 그 숨소리... 짐승의 숨소리가 편안해지는... 그 깊은 안도의 숨소리...
더 지켜봐야겠지요. 이 녀석, 언제 다시 요동을 칠지...
* 좋은 일 하나, 오늘 아침 시에틀에 다녀온 후배로부터, 스타벅스 커피 홀빈을 선물받았습니다.
지금 막 맛보고 있습니다. 와 눈도 오는데. 나무라디오에는 손님이라곤 딱 저 혼자 뿐이네요...
나만을 위한 카페... 오늘 이 시간... 눈도 내리고... 좋 다... 미옥님..ㅎㅎ

연구원레이스에 임하는 저의 각오였습니다.
그 '부끄러움', 은근슬쩍 스며들어
어느샌가 제가 뛰어 놀아야 할 땅에서 저 대신 주인노릇을 하고 있더라구요.
끔찍하게 싫는 녀석들이죠.
피해다니느라 정작 가야할 길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을 몰아내지 않고는 제 길을 갈 수가 없는 걸 깨달은 지금
그들은 이미 맞서서 이겨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도려내기엔 너무 커져버린 암세포같이...
방법은 하나..
작정을 하고 그들속으로 빠져든다!!
온 몸을 부끄러움으로 흠뻑 적시고 나면
더이상 그들을 피해다니지 않아도 될테니까요.
힘들었지만
딱 그만큼 자유로워졌습니다.
진철님은 어떠세요? ^^

오늘 내린 눈은.. 과거의 내가 녹아내리고... 싱그러운 내가.. 캬~
연주님, 그거 아세요? 4주동안 서로서로 닮아진 모습들이 있다는 것!
이것 또한 댓글 구경하는 관전포인트인데. 예를 들어, ... 이 마침표를 3개 찍는지,
2개만 찍는지, 아니면 4개 이상을 찍는지. 안 그러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그러면,
누구를 닮아가는 건지..ㅎㅎ
사무실에서 제 말버릇을 닮아가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조그마한 변화들을
즐겨 관전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ㅎㅎ 암튼 저도 많이 즐거웠습니다. 땡큐베리감솨~

뵐 수 있게 되어 반갑네요.
좋은 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하동에 가시는 것 한 번 추진해 보시죠
저도 함께 가고 싶은데
소주 한잔 하며 진짜 인생에 대해 한번 말씀도 나누고요.
좋은 말씀 듣고 싶네요.
제가 청강생이라 멀리 하지 마시고
너그러운 맘으로 수용해 주시길
016-370-7461 inheenet@hanmail.net
어여삐 봐 주세용.
제가 장점 많으신 진철님 조수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