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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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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8일 04시 47분 등록

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  

(무의식에 대한 한 고찰) 

우리는 평소에 자주 만나지 않는 주변의 많은 친구와 친지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 모든 이름을 항상 의식에 담아두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기억해 낼 수도 있다. 그 이름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있지 않았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융에 의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다. 개인 무의식은 깊고 넓은 바다이기도 하면서, 정교한 자료정리 체계나 기억은행과도 같은 것이다.  

무의식은 신비롭다. 무엇인가를 경험할 당시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이 배우거나 관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경험에 대한 기억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 되면 개인의 무의식에서 그 경험을 불러 낼 수도 있고, 낮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경험이 밤에 꿈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4주차 주제인‘내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라는 문장을 계속 되뇌이면서, 유년시절부터의 나의 기억, 무의식의 자료들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다. 빈약했던 유년기 기억과 현재까지의 삶을 환등기로 계속 돌리고 돌리자.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들이 보였다. 무의식의 상영관에서 건져 낸 영상들은 크게 4가지 키워드로 나타났다. 융처럼 표현하면 크게 4위일체 였는데, 그것은 두려움, 연민, 사랑 그리고 My Way 였다. 

1) 표현하지 못하는, 위축된, 겁에 질려있는, 두려움이여!

해군을 나왔던 아버지는 전 세계를 누비던 외항선의 1등 항해사 였다. 1년간 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오면 1개월간 집에서 놀다가, 모아놓은 돈을 다 까먹고, 다시 1년 동안 배를 타는 생활을 30년을 하셨다. 뱃사람 답게 아버지는 좀 사나웠다. 1년에 한번 집에 와서는 한달 중의 20일은 술로 세월을 보냈고 술을 먹으면 아버지는 주사가 심했다. 취기가 오른 날, 옆에 있으면 그날은 재수 없는 날이었다.  

어느 겨울인가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한 아버지가 벌인 ‘달밤의 쇼’로 인해 우리 집 마당은 깨진 유리 조각들과 빠알간 피, 불덩어리 연탄과 화상 입은 손들로 밤하늘을 말갛게 수놓고 있었다. 그리고 한옥 집 마당에서 벌어졌던 그 날의 무서웠던 풍경을 바라보는 겁에 질린 아이가 있었다. 울기만 하면서 ‘무섭다’는 표현조차 하지 못한 채, 겁에 질린 아이의 마음속에는, 아마 커다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유년기의 두려움은, 학창시절, 소심한 성격을 지닌 아이로 발현되었다.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것을 싫어하고 두려워 했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쉽게 말을 건네지 못했고,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모범생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삶에 위축된 아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냥 착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는 30대가 되어도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연결되었다. 결혼 후, 부부싸움시에도 화내서 큰소리치는 아내에게 할 말을 못하고, 내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힘들어 했었다..(물론 아내는 인정 안하겠지만...ㅎㅎ )  

2) 그저, 애틋한 연민

연민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꽃다운 20대에 중국집에서 남편얼굴을 처음 보고 시집을 온 아가씨는 괴팍한 시어머니 땜에 고생을 많이 했다. 배 타는 남편은 1년에 한번 집에 들어오고, 남루한 집에 얹혀살던 군식구들까지 먹여 살리면서도 찬거리를 사기 위해 시어머니에게 콩나물 값 100원씩을 매번 받아가는 모습이, 어머니 나이로 50세 때까지 이어졌다. 외조모, 외조부는 갑작스런 병으로 연이어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의지할 남편도 없이 장례를 치렀다.10대였던 유일한 피붙이 여동생은 시어머니 반대로 집에 데려오지도 못해서, 결국 친척집을 떠돌며 거칠게 자랐고, 3년 전 알콜중독으로 사망했다. 본인이 거두지 못한 이모만 생각하면 슬피 울던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 하셨다.
 

한옥집에서 여름이면 마당의 펌프를 틀어 등목을 하던 낭만도 있었지만 쥐덫을 놓고 쥐를 잡던 일, 겨울이면 물을 덥혀서 씻어야 하고, 새벽마다 연탄불을 갈다가 가스중독으로 쓰러지신 일들이 마음속 영상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의 아픈 자화상을 어머니도 비켜가지는 못하셨고, 나는 내색은 안 했지만 어머니의 상황을 많이 안타까워 한 것 같다. 그래서 였을까? 삶의 주요한 의사결정 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합리적인 이성이 아니라,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연민이 되었다. 분별력 없는 연민으로 인해 비싼 수업료를 치루면서도, 왜 그랬는지 몰랐고 동일한 상황들이 반복되는데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3) 사랑

어머니로부터 연민과 함께 받은 것은, 또한 ‘사랑의 기억에 대한 부재’ 였다. 지금도 부모님께 고마운 것은 대학 입학때까지 단 한번도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대단한 교육철학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배타고 외국에서 30년을 돌아다니셨고, 어머니는 고달픈 시집살이로 인해 자식에 대해, 애정을 쏟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애써 찾아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 나를 서럽게 했다. 어머니와 정서적인 의존, 감정의 교류가 없었던, 나에게 의존의 대상은 중학교 시절(미션스쿨) 부터 다니게 된 ‘성당’과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이었다. 만약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떤 식으로 발전했을까? (종교의 순기능! ^*^)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본적으로 ‘연민’이었고 사랑의 갈구였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이유, 그토록 남의 말에 휘둘리며 살아 온 이유가 느껴졌다. 여행을 갈 때 행선지를 정하는 것도, 하다 못해 음식적에서 음식을 시킬 때도 같이 있는 친구의 의견,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아이였다. 여자친구를 소개할 때도 친구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고 내심 걱정했던,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착한 아이’, ‘사랑받고 싶은 아이’ 였다. (지금은 ‘독재자’라는 얘기를 들을까봐 겁 난다) 

4) My Way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을 살아가는 존재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1년차일 때였다. 학교 다닐때도 읽지 않았던 전공원서를 새로 사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스스로도 ‘내가 왜 이걸 읽고 있지?’하고 반문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술과 최루탄으로 휩싸였던 대학에서, 배움과 학문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사회로 진출했던 아쉬움이, 무의식에 존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려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70세나 80세에도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노인들의 얘기와 뭐가 다를까?  

주사가 전혀 없는 나의 깔끔한 술 매너가 유년기에 형성된 아버지의 주사 탓이라면, 건설회사에 다니다가, 대학병원의 기획실로 옮기면서 ‘그래 직장을 병원으로 옮기면, 어머니는 내가 돌봐드릴 수 있겠다’ 라는 기특한 생각을 제일 먼저 했던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다. 

생각해보면 내 삶에 반복되는 문제가 늘 있었다.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문제가 되는 그런 일들은 유년에 형성되었던 나의 이미지와 연관이 있었다. 겁에 질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이, 부모와의 정서적인 의존과 사랑이 부재했던 아이는, 나 자신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느낌을 주었고, 내 삶과 주요한 선택의 의사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다. 

사랑받고 싶어 남의 말에 휘둘리는 아이, 담배에 의존하는 모습, 사랑에 대한 구걸과 질투, 시기심,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모습들이 무진장 좋아보여서, 그런 사람들을 내 삶의 롤 모델로 정했던 일 들이 영화처럼 흘러갔다.‘인정받고 싶다는 것은,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의 뒷면’ 이라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30대 중반부터) 아버지가 남자로 이해되면서, 이젠 형제들 중 아버지와 가장 친한 자식이 되었고, 어머니 역시 잔병은 있으시지만 나의 지속적인 병력관리(?)로 건강하시다. 음하하하.. 내 삶의 Life Motto 로, 수첩에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사람, 분별력을 지닌 사람, 걱정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리’ 라고 적어 놓으면서, 다가오는 수많은 걱정들을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 가지가 더 내 무의식속에 강력하게 존재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건, My Way 에 대한 것이었다.  

내 무의식은 내 삶의 변화를 간절히 원했다.
그것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
살고자 하는 욕망, 제대로 살아보자 하는 욕망, 실패하고 힘들어도, 이겨내자고.. ‘진짜배기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 설득하는 내안의 소리가 있었다. 객관적인 상황은 연구원 생활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의식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지만, 내면에서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그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변경연 연구소에 지원했을 것이다.  

‘무의식’에 대한 컬럼을 쓰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결론이 나오는 재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안다는 것’,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유쾌한 고통이었다.

 

IP *.30.2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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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옥
2010.03.08 06:21:13 *.53.82.120
유쾌한 고통이었다

1만 퍼센트 동감입니다.  ^^
점점 더 뵙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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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2010.03.08 07:23:29 *.138.193.248
의도하지 않았던, 기대하지 않았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는 것의'
혹은 자신이 몰랐던 다른 말 일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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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3.08 19:42:32 *.154.57.140
참 차분하면서도.. 깔금하게 정리된 모습일까요?
두려움, 연민, 사랑 그리고 My way로 자신을 정리해내는 우성님의 깊은 성찰이 그려지네요.
참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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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트리
2010.03.08 23:33:16 *.71.76.251
된다 아님 말고,  아니 된다.  청계천에서 다들 함께 부르던 노래, 생각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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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10.03.11 11:33:27 *.59.199.3
전 햇살이예요..레몬트리가 아니랍니다. ㅋㅋ 저도 그날 밤의 노래들이 떠오르네요..그동안 보이신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레이스!!!!앞으로도 쭉~응원합니다. 역쉬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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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09 00:20:23 *.108.158.238
4주간 고생 많으셨고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만나서 좋은 말씀  듣고 싶네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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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3.09 01:06:58 *.83.68.7
어릴적 기억은 지우고 싶어도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 다니며
어느날 불쑥 내 앞에 서 있곤 하잖아요.
이 모든 기억을 유쾌한 고통으로 전환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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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3.09 10:53:58 *.236.3.241
최근 한달간 우성님의 마음 풍경이 많이 선명해진 느낌입니다.

'유쾌한 고통'의 느낌을 이 기회에 노래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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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2010.03.09 23:28:53 *.68.10.114
자신의 무의식을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건...정말 나를 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겠죠~
나를 알아가기 시작한 순간이 바로 변화의 시작...4주간 유쾌한 고통을 즐겨오신 최우성님의 삶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유쾌한 고통이라는 문구가..정말 와닿습니다..제 4주간의 느낌이 바로 딱 그것인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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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희
2010.03.11 13:34:31 *.142.217.231
2차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뵐 수 있게 되어 반갑네요.
좋은 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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