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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 조회 수 2336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0년 3월 25일 02시 15분 등록
1.
한 그루 가시나무가 있었네
그길에 서.
선생님은 이유를 물으셨고
나는 이유없는 하늘만 봤네

누가 심었던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눈도 그친 강원도의 하늘
파란 모자 깊게 눌러 쓴 이가
내게 갈 길을 물으셨네
나는 눈물만 삼키게 되었네

가시나무 가시는
너무 아파서 생긴거라네
내가 먼저 찔리기 싫어서
나보다 먼저 남을 찌르지만

그래서 고귀한 이의
머리에 앉을 수 있었네
파아란 모자처럼 앉았네

2.
소풍가기 전날 밤, 아이는
새로 산 신발을
신어 보고, 벗어 안고
다시 일어나
머리 맡에 두었다가
결국 늦잠을 자고 말았네

모두들 가버렸을까
나만 두고서?

허겁지겁
미안하다는 인사도 잊은 채
아이는 그렇게
소풍길에 늦고 말았네

- 범해 선생님께 드립니다.

3.
하루를 잊은 아이셔는
아이들 차지가 되버렸네
책상위에 덩그러니 빈-
뚜껑만 열린 채
나는 입만 벌린 채

아이셔는 맛도 보지 못했네
남겨 둔 편지만 만지작거리지만
먹어보지도 못한 맛을
감사하다 말하기도 멋적어
곱게곱게 써 준 글에
답장조차 미루고 있네

그녀는 참 좋은 이름을 가졌네
이미    나.

4.
그의 시집에서나 나를 볼 수 있을까?

오늘에서야
옥상 정원에 금낭화를 옮겨 심었다
가장 큰 화분에
오래 묵은 퇴비를 섞어서
토닥토닥 시인의 마음을 만지듯

그는
어디에 심었을까
악양의 볕좋은 자리에 내 맘을 싦었을까?
아님, 좋은 벗의 마음에 심었을까.

나는 옥상의 꽃을 보지만
그는 잠깐 스쳐간 나를 기억할까?

손을 씻고
담배 한대 물어 피면서
산수유 노오란 봄 뜰에서
Esse를 물었던
부끄럼 많던 시인이 보고 싶다
다시 보고 싶다

5.
이름때문이었을까?
유치한 기쁨으로 불리는 그녀
망가져 웃음을 지어내는 보라색

그녀는 나를 위해 운전기사가 되어 주고
나는 그녀를 위해 갤러그의 외계인이 되고
던지는 것은 눈뭉치였지만
내가 맞은 건 고마움이었지

사학년 나영이의 웃도리도 보라색
곁에 앉은 선생님의 목도리도 보라색
백미러로 보이는 그녀의 웃음도 보라색
그녀의 눈뭉치에
멍든
내 마음도 보라색!

6.
아직 결혼도 안한
서른 다섯이란다
마흔 셋, 내겐 부러운 나이 서른 다섯이란다. 그는

산책을 다녀오는 길
내내 선생님 곁을 지키던 그는 이미 1기란다

나무가 새를 알아볼 수 있다는 내 말에
나쁜 짓을 같이 하는 게 친구라고 말하던 내게
그는 위험하다는 듯, 웃음을 지었고
옆으로 열리던 Mild Seven을 피우는
그를 위해 나는 빈 필름통을 하나 주었다

그의 주머니에 내가 아직 있을까?
빈 필름 통에 하나씩 내 기억이 담길까?

7.
아마추어 가수의 노래는 아침에만 있지 않았네
지난 밤, 새벽 5시까지도 그는 기타를 쳤다네
벗을 위해 '벗'을 지었다는 그는
신청곡 하나 거부하지 않던 신사였다네

그를 위해 라면을 끓이는 일쯤이야
스프가 없다는 것이 이유가 될까
깍두기 국물에, 된장 한 스푼 그리고 죽염 두 스푼
그래도 싱거운 라면과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안주 삼고
한사코 노래대신 춤이라며 사양하던 카페 여주인과
승호님의 숟가락 장단에 맞추고
기도문처럼 선생님의 불호령을 해석해주던 병곤 선배의 알토에 맞춰

낮엔 산을 타고
밤엔 가야금을 타고 싶다던 그는
밤새 추억을 짓고
사랑을 노래했다네 소원처럼
그래서 그는 최우선으로 뽑혔다네

8.
미옥은 거기서도 누웠네
두근거리던 심장이 지쳤을까
겨울 눈발이 채 녹지도 않은
그 자리에 누워
건너편 산자락을 보라했네

그를따라 누웠네
볕좋은 무덤자리
내겐 파란 하늘이 보였네

까페바닥에 눕던 써니도 봤을까?

9.
써니 누나
밖에 누놔
밖에 누운 온.다.고. 누놔

10.
술을 마셨네
저잣거리에서 배운 막술
겨우 와인1~2병에 소주가 반병,  맥주가 두어잔인 어린 죽순 주제가

머얼리 그리움과 맘이 담긴 안동소주도 두 병
어머니 손길로 빚고, 연주님 마음으로 담은 술도 있었고
선생님 품에 담겨 오두막에서, 딱 한 잔만 주시던 와인도 있었고
저마다 한 잔씩 건배잔도 있었다고 하네

순리를 잊었네
술이 나를 마셔버렸네
아뿔사. 이런...

11.
필름이 거꾸로 돌아간다
며칠 전이지만, 이미 오래된 사진첩처럼
시간이 기일다.
간혹 끊어진 기억조차
잠시 한 눈을 파는 순간에도
필름은 정해진 시간의 규율을 따라
흘.러.간.다.
잊혀진 시간에도 눈들은 있게 마련이다

자꾸만 오줌이 마렵다

누구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고
누구는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내 마음 촛불처럼 흔들리는데
바람은 어디서 불어 오는가

무심한 새벽
심장소리만 잠들지 못하고 있다
저기
서성거리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IP *.186.5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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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3.25 09:45:59 *.36.210.184
 
서슬 푸른 대나무 에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일으켜 세워 어미 호롱불에 회오리 바람같은 인연을 노래하는 이 누구인가.

총"끼" 있으면

유"끼" 없으란 법 있을까?

죽쓰기 싫으면 죽으면 되지.



마음이 두려워 하는 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잠 못드는 잠에서 깨어나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세상은 무너져도 마음은 살아야 한다.

모두가 사라지고 떠나간다 해도

스스로를 살아낼 힘은 가져야 한다.




                                                                                                                             죽순의 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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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3.25 10:27:27 *.67.223.107
너무 일찍 "함무너조봐" 해버린 신진철에게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신나는 유끼의 댓글놀이에도 댓글을 못 달았습니다.

왜 늦어놓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도 모르느냐고
당신 땜에 뽀대나게 유끼 만나려고 했는데...모냐고
닿으면 떠나고 또 앉으면 떠나고
차거워진 모밀만두 떠 먹으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는 비가 더 추웠다고...

먼 길을 달려왔으니 몸이 긴장을 풀고 싶었을  것이고
짝사랑 하던 분을 뵈었으니 이미 충만한 기쁨에 이르렀을테지요.

어떤 예감이 있어 마치 남편에게 이르듯
그리 오버하지 말라고 옷깃을 잡아 끌었건만
기어이 튀어나가 엎질러 물을 쏟아내고 독까지 깨어버린 신진철.

그러나 나는 그대를 만나 관심을 기울이고 나눔을 시작하였으니
또 하나의  글을 골라  얼어붙은 땅에 묻어 봅니다.

돌배나무는 가시가 돋쳐 볼품없고 쓸모없는 나무인 줄 알았더니
온 몸에 하얀 꽃을 피우는 걸 보고 그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법정스님의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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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10.03.26 09:06:07 *.12.20.111
'늦잠..열시쯤 도착 예정입니다. 그래도 태워 주실 거죠?' ㅋ 그냥 갈까봐 걱정하는 마음이 아이처럼 귀여웠어요.
'당연하죠. 수험생인걸요~~^^ 맘 편히 오세요~' 수능시험장에 늦은 수험생을 경찰아저씨가 싸이렌을 울리며 데려다 줘 무사히 시험을 치뤘다는 그 긴박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떠올라 내가 그 경찰이 된양 이렇게 보냈는데........그 말도 이젠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따지고 보면 늦은 건 제탓이죠. 좀 더 늦게 도착했고, 베스트드라이버는 한 시간이면 갈수 있다는 거리를 주파하지 못했으니 말이에요. 정말, 시인의 마음을 가지셔서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그러한 사건들을 만들어낸 사이니 서로에게 들어온 것이죠. 이 인연을 길게 가져갔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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