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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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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7일 15시 30분 등록
 

 



선생님, 이거 드세요. 쿠키 만드는 재미에 푸욱 빠진 중학생이 이번에 건넨 건 내 얼굴이다. 우와~ 어머나~ 이걸 어떻게 먹니? 내 얼굴을 뜯어먹는 맛은 상상을 초월했다. 씹는 것도 그렇고 넘기는 것도 그렇고 쿠키가 아니었다. 같은 재료로 만들었지만 맛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환상적인 신기함을 맛보게 해 준, 맘이 참 예쁜 아이다. 많이 고마웠다.


선생님, 여기요. 매주 수첩을 내밀며 편지를 써달라는 녀석도 중학생이다.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보내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예쁘게 귀찮은 아이다. 엄마에게는 비밀이라며 매주 별얘기 달얘기를 늘어놓는다. 이 아이 때문에 수요일이 행복해진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관계가 늘 새롭게 느껴지는, 내가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고 싶다. ‘월말 병’이다. 내 직업은 학습지 교사다. 학습지 교사는 호칭만 ‘선생님’이다. 실제 하는 일은 회원 관리, 즉 영업이다. 매달 마감을 하고 매달 새롭게 시작을 한다. 마감을 앞둔 요즈음, 내 스트레스는 하늘을 찌른다. 그만 눈을 감고만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적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나는 수치상으로 이 일을 잘하지 못한다.


2009년, 한동안 나는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다. 남편의 실직은 계속되었고 나는 지쳐갔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며 생활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아팠다.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의 선생님들과 나누며 나는 깜짝 놀랐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절망적이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가 원한 건, 남편과 함께 맞벌이하는 것이었지 나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서 내 꿈과 삶을 병행하는 것이었지 꿈을 잊은 채 삶에 치여서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려면 내가 선택해야 했다. 나는 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물론 수입도 그만큼 줄었다. 남편이 자리 잡기를 기다리는 스트레스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했다.


일을 줄이자 제일 먼저 몸이 반응을 했다. 긴장이 풀린 것이다. 일주일을 꼬박 앓았다. 어디가 아픈 줄 몰라서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 대신 많이 자고 많이 울었다. 다시 일어났더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새삼스러웠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일은 알게 모르게 흘러갔다. 마음이 조금씩 멀어진 채로 그렇게 또 자리를 잡은 듯 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지금의 학교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어떤 이념이나 공식들을 머리와 가슴에 주입시키는 곳이다. 공교육의 영향권에 있는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나도 그 공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미와는 거리가 먼 공부를 재미있게 해야 하는 숙제가 있어서 재미가 없다. 행복하지도 않다. 에너지가 마구 샌다.


투정을 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일에 나는 지쳤다. 그래서 쉬고 싶다. 나에게 쉰다는 건,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일을 찾는 것이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감옥처럼 고인 시간이 아니라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할 줄도 안다. 


생각이 갇혀 있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에 온통 점령당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내 안에는 아주 다양한 색깔의 내가 있다. 엄마, 아내, 딸, 언니, 누나, 며느리, 친구, 애인, 동생, 선배, 후배, 선생, 제자 등등이 골고루 섞여 있는 것이 나임을 기억하고 싶다. 내 안의 나와 골고루 만나고 싶다. 그렇게 잘 쉬고 싶다. 그렇게 나와 잘 놀고 싶다.


나는,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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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3.28 04:22:52 *.53.82.120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일에 나는 지쳤다. 그래서 쉬고 싶다.

제가 쓴 글인줄 알았습니다!! 
전 그래서 큰맘먹고 한 일년 쉬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일도 살아있을 것임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자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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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3.28 22:44:39 *.210.111.178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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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07:58:58 *.160.33.180
미영아, 때때로 지금 하는 일에 의미를 물을 필요가 없다.  꽃이 피는 것이 의미 때문만이겠느냐 ? 
식물에게는 꽃을 피우는 것이 살기위한 의무와 책임일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라 생각하든 그 꽃이 좋지않더냐.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워 지고,  쓸 것을 생각하면 가난해진다.  그러나 날씨 좋은 날, 투정하는 아이들이 있고,  세상 모르고 자는 남편이 있다는 것이 문득 축복일 때도 있을 것이다.  

 열심히 쓰도록 해라.  글을 쓸 수 있으니 좋지 않느냐 ?   글을 아주 잘 쓰도록 해라.  그 일로 유명해 지도록 해라.  조금 써서는  먹고 살수 없다.  그러나 많이 쓰면 먹고 살수 있다.  많이 쓰면 잘 쓰게 된다.  잘 쓰면 너는  그 일로 먹고 살고 또한 유명해 질 수 있다.  얼마나 걸릴까 ?   운이 좋으면 더 짧을 것이고, 보통의 운이라면 10년 후엔 잘 쓰게 될 것이다.   겨우 쉰 살의 문턱에서 죽음에 이르기 까지 먹고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너는 자유다.   나쁜 운이라면 ? 그것도 밑질 것 없다.  이미 즐기지 않았느냐 ?  
  
  분명한 성공의 원칙.  아무도 빗겨가지 않는 성공의 원칙은 자명하다.  매일 해라.  나는 오직 이것을 믿을 뿐이다.  이것이 연금술이다.  다른 것은 믿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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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3 15:37:04 *.96.12.130
ㅋㅋ 요기도 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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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4.03 00:08:52 *.210.111.178
이 아래에 있는 얘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난 안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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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3.28 22:54:24 *.210.111.178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제게 주시는 답글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실까요?

영원히 제자로만 머문다면 선생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지요.
도리를 다하는 제자이고 싶습니다.

보통의 운이나마 닿았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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