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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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5] 꽃 시절, 정치인과 시인
또 다시 선거철이다. 그들이 바쁘다. 새우처럼 굽었다. 웃음도 판다. 꽉 잡는 악수가 부담스럽다. 눈 마주치기조차 싫다. 깔끔한 메이커 양복, 빳빳한 명함이 쥐어진다. 휴지통을 찾는다. 화려한 말빨에 하늘만 새빨갛다. 냄새가 난다.
또 다시 꽃시절이다. 나도 바쁘다. 밤새우고 읽었다. 적막은 절판이다. 손조차 내밀기 부끄럽다.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누더기 기워 입은 바지, 꼿꼿한 인상이 새겨진다. 일기장을 찾는다. 수줍은 얼굴에 찻물만 노랗다. 향내가 난다.
엄동설한에도 군자처럼 핀다는 매화가 하나둘씩 져가고,
반짝 한 시절 화려하게 살겠다는 벚꽃들이 슬슬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남도의 끓는 술을 보자기에 싸들고 봄 사치를 부렸다.
시인은 내내 아픈 이야기만 했다. 사랑니를 뽑아서 아팠고, 슬픔조차 사라져서 아팠고, 청계천을 어찌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4대 강이 순리처럼 흐르지 못한다며 울었다. 새로 애로 시를 써보려니 애로점이 많다고도 했다. 맘을 줬다.
정치인들도 내내 아픈 이야기만 했다. 다른 이를 뽑아서 아팠고, 자리조차 사라져서 아팠고, 청계천을 다시 생각하는지를 물었고, 남의 당이 우리처럼 정치를 못한다며 울었다. 새로 판을 바꾸려니 애로점이 많다고들 한다. 표를 달랜다.
메타포(은유)는 말로 풀어지는 순간 힘을 잃는다.
설명하는 순간, 신비의 힘을 잃는다. 마법이 풀리고 만다.
사는 만큼 시가 나온다. 은유가 된다.
살아지는 만큼 글이 된다. 신화가 된다.
마디마디 굵어진 대가 된다. 그래야 된다.
우리는 가끔 신비가 깨지는 경험을 한다.
연극 속의 주인공과 실제 삶 속에서 배우,
그리운 시 속에서의 울보시인과 술 한번 안사는 짠돌이 선배,
깨진 거울처럼 실망한다. 상실감이 크다. 상처 때문에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 안 주겠다고 다짐도 해본다. 배신감마저 든다.
누가 만든 환상이고, 누가 만든 거울이었던가?
내가 느끼고, 내가 만든 환상이었을 뿐이다. 그럼 그 뿐인가? 온전히 아픈 사람만의 몫인가? 사랑이 아픈 이유를 그렇게만 판결하고 나면 공정한 재판인가?
작가가 글을 짓고, 배우가 연기를 통해 배우고, 싱어가 사랑을 노래하면서 해야 할 책임은 없는 것인가. 실망하고 상처받은 관객들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글이 진실했는가, 연기가 진짜였는가, 노래가 진심이었는가. 참말로 아팠던가?
솜씨에 따라 잠시 세상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고, 눈먼 이들의 찬사에 정작 자신도 속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가지 못할 일이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이미 너무나 많은 정치인들의, 배우들의, 글쟁이들의 삶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다만, 우리가 못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또 실수하고, 또 반복하고, 다시 아프고, 그렇게 깨닫고...
사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 바보 같은 것인가 보다.
또 다시 봄이다.
바람이 분다.
이것저것 맘만 바빠진다.
정신 바짝 차리자.
눈을 똑바로 뜨자.
속지 말자. 똑바로 보자.
신화를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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