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 조회 수 2498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두 개의 돌, 뒷돌을 앞으로 옮겨 놓아가며 혼자서 강을 건너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고 했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건너려는 강이 어떤 강인지, 무슨 강인지 알지 못한 채 그냥 건너기 시작했다.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아마도 더 이상 누군가에게 돌다리에 대해 묻는 것에 지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게으르지 않은 채 글쓰기가 멈췄다.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틈새시간,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체력이 바닥났거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알면서 나는 지금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이놈의 돌을 옮기고 있다. 온몸을 던진 한판 싸움이다. 평화로운 전쟁이 있던가. 어떤 싸움이든 평화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내 몸은 지금 전쟁 중이다. 아무 이유 없이, 단지 싸우고 싶어서 싸우지 않는 한 전쟁의 목적은 명확하다. 싸움의 목적은 승리다. 하지만 이 끝없는 전쟁의 목적은 싸움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말이 되나? 말이 안 된다. 나는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배우는 중이다. 이걸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이유로.
2005년 3월, 1기 연구원의 첫 번째 숙제는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소감을 적어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하지 않았다. 연구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보았다. 혼자서 두 번 봤다. 권투영화는 아니지만 권투영화이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권투는 고통스러운 스포츠다. 코뼈가 부러지고 온몸을 부스러뜨리는 험난한 스포츠다. 그러나 네가 그 고통을 즐기기만 한다면 네 몸 안에서 신비한 에너지가 솟아나올 것이다. 그것이 너를 일으켜 세우면 너는 챔피언이 될 수 있다."
나도 챔피언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때 그 여자, 서른한 살이란 나이로 복서라는 꿈에 전부를 건 그녀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그때의 눈물을 기억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던가. 돌다리 두들기는 짓과 더불어 내 사전에서 지워버린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 하더라도 일단 째려보다가 기어코 올라가 보리라. 내 싸움의 목적을 기억하리라. 나는 지금 이 싸움을 즐기는 것을 공부하고 있다. 고통스러움을 지속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치열하게 계속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귀찮은 것을 피하다 보면 이것도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된다. 요즈음 남편과의 대화가 그렇다. 살림 못하는 여자인 내가 고무장갑 대신에 책과 씨름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남편이 자주 주먹을 들었다 놨다한다. 머잖아 내가 권투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체급을 엄청 늘려서 말이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다. 싸움에서 이기는 또 다른 방법은 싸움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남편과의 싸움을 영원히 피하는 것이다. 그건 바로, 세상에서 젤 쉬운 일! 공부가 젤 쉽다고? 아니, 또 있다. 쉬운 거!

커다란 무엇인가를 자신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10년정도. 그냥 조금 움찔 거리며 두었더니 그러더라구요. 그 정도면 잔인하다면 잔인하고 축복이라 하면 축복이죠. 엎드려 바람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견디고 나면 바람이 안부는 게 이상해 갑갑합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없는 봄을 즐길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 봄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더군요. 바람이 지나갔다고 여겼는데 안에서 부는 바람은 엎드려서 피할 수가 없었어요.
아흐. 이렇게 심각한 거 싫은 데.
종윤이 말대로 아이스크림이나 달달한 케이크 같이 먹을까요? 먹고 힘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