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희
- 조회 수 2305
- 댓글 수 8
- 추천 수 0
오늘 저는 하늘나라로 떠납니다. 이제 저에게는 10분 만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와 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제대로 베풀지도 못했는데도 이렇게 찾아 주시고 슬픔을 같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동안 제 삶에 대해 돌이켜 보고자 합니다. 부족한 저를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지인 모든 분들,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미안합니다.
먼저, 아버님 어머님께 아룁니다. 늘 고마웠고 존경해 왔습니다.
최근 몇년간 너무 힘들게 해드려 죄송하고 송구합니다.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효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지금까지 늘 힘들고 어렵게만 살아 오셨으면서도 한번도 여유있는 생활을 해 보지도 못하신 아버님,어머님.
지금의 연세에 좀 쉬시면서 남들처럼 여생을 즐기며 보내실 수 있는데 저 때문에 맘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저는 못난이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해 드리고자 노력했으나 그렇지 못했지요. 이제 막 그간의 복잡한 일들을 다 끝내고, 편히 모시면서 효도해 드리려 할 즈음에, 제가 먼저 하늘 나라로 가게 되는 불효를 하는군요.
그러나 운명이니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받아들입니다. 제가 그곳에 가서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아버님 어머님의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우리 아이들 잘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유언한다. 명*아! 시*아! 정말 고맙구나.
잘 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잘하라 잘하라 잔소리를 많이 한 것에 대해서도 미안하구다.
아빠가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기에, 그것이 한이 되었었기에, 너희들에게는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다행이도 너희들이 기특하게 이해하면서 잘 따라 주어서 고맙구나.
엄마없이 자라다 보니 너희들이 힘들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희들의 마음이 나약해 지지 않도록 아빠가 다그치기도 많이 했구다.
지금까지 우리 셋은 잘 해 왔고, 이 고난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자부한다.
큰 딸, 네가 작년 이맘때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본다고 했을 때, 아빠는 참으로 암담했었다. 고등학교는 최소한 마쳐야 하는데 중간에 자퇴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힌 지 아찔하기도 했었지.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처음에는 너도 아빠도 힘들었지만, 아빠와 함께 새벽 신문 배달을 하면서 너는 매우 대견하게 잘 해 주었지. 새벽 2시경에 일어나 약 200여 가가호호 방문하는 것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도 우리 큰 딸은 잘 견디면서 잘 해 주었지. 그리고 작년 말부터 시작한 버거킹에서의 알바를, 지금까지 성실하게 잘 하고 있으니 흐뭇하구나. 그러면서 학교에 복학한 후, 성실하고 부지런히 생활하는 모습에 아빠는 기쁘구나.
지난 1년간 우리들에게는 특히 너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이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해 보지 못한 값진 인생경험을 명*이가 한 것이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아빠로서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구나.
작은 딸 시*아! 너는 어린 초등학교 때부터 이 고난을 함께 하고 있으니 특히 너에게 미안하구나. 그래도 잘 적응하고 꿋꿋하게 잘 자라준 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먹을 것 제대로 못 사주고, 입을 것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했는데도 불평 하나 없이 잘 성장해 주어 기특하다.
이제 너희들은 다 컸구나.
고 2의 명*이, 중 3의 시*이가 아니야. 집안 걱정을 하고 우리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갸륵하고, 모든 면에서 성숙했으니 말이다. 특히 미안해 할 줄 알고,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직은 많이 다듬어져야 하겠지만, 웬만한 어른 정도는 능가하는 마음과 마인드, 그리고 정신력을 구비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않겠니?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 어떤 사안이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승화시키는 마인드, 그리고 사려깊고 투철한 생활력,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기본이고 전부이기 때문이란다.
아빠는 너희들을 보면, 이제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구나.
그러나, 오늘 이 순간, 아빠 개인으로 볼 때는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이르다.
그리고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고자 노력했기에 더욱 그렇구다. 때문에 지금 이시간 이후 할 일이 많은데, 이제 막 시작이고,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조금만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뭐든지 자신하는데 모든 것이 아쉽구나.
지난 몇 년간 진정으로 숭고한 삶을 살고자 해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 간병을 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지. "빗방울 같은 땀흘려 내 죄 의논하시던 주님의 그 모습 보네 그 모습 보네" 처럼, 빗방울 같은 땀은 아닐지라도 고통받는 분들께 힘이 되고 싶었다. 어느정도 그 목표를 달성하여 정신력을 강인하게 만들었지. 참으로 흐뭇했고 보람있었던 기간이었다. 의미와 가치가 있었던 시간들이었단다. 대신 밤낮으로 정신없이 하다보니 나의 온몸은 골병이 들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그때 죽을 각오로 간병을 했었기에 나의 장례식은 이미 그때 치뤄졌고, 다시 태어난 것이나 진배 없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이 나의 장례식 같았던 것은, 내가 맡게 된 바로 그 분이, 하루밤에도 몇 번씩이나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분이셨지. 심야시간에 모든 분들이 잠들어 있는 그 순간에 그 분 옆에 붙어서 모든 요구사항을 응대하면서...
이제 인생에서 온유하면서 강렬함이 무엇인지를 터득했고, 그 노하우를 가지고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나 사회통합위원회에 들어가 이 한몸 사회의 성숙과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자 하려는, 진정으로 진실로 현재의 우리 사회와 미래의 아이들 세상에 한 알의 씨앗이 되려는 중이었는데 몹시도 안타깝구나
형제들 지인들에게도 너무 고마웠고, 미안했습니다. 특히 동생 미희에게 고맙구나. 엄마없는 아이들에게 엄마역할을 다 해 주었고, 내 대신 부모님께 효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우이. 그리고 제수씨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이들 엄마가 하지 못하는 역할까지도 너무도 잘해 주고 있으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 지 난감합니다. 그리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버지 어머님! 제 육신은 사회에 기부했음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안구와 장기는 벌써 10여년 전에 기부했고, 시신은 서울대 병원 근무 당시인 2009년에 그 병원에 기부했으니 잘 성사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시신은 화장을 한 후 절반은 고향에 있는 대종산에 뿌려 주시고, 나머지 절반은 현충사 경내 연못에 뿌려 주십시요. 이순신 장군의 기를 받아 우리 가문 후손들이 번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묘비명은 “개인의 힘을 키워 주위분들에게 힘이 되고자 노력했던 인희가 잠들다.” 라고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속초에서 2010. 4. 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