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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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성천 연어의 꿈
살만하다는 어성천
연어들이 몰려들었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새로운 생명들을 품고서
남대천 물길을 따라
법수치 지천을 거슬러
꿈을 쫓고
본능의 힘을 따라
40여마리 연어들이 모여들었다
사자든 호랑이든
때로 모이고
때로 흩어지고
봄 봄
알싸한 생강나무 노오란 꽃시절
강원도 계곡물은 아직 찬데
매일매일을 뜨거운
첫 입술처럼 살자고 연어들이 모였다
2.
길에서 길을 묻다
속초에서 돌아오는 길
불타버린 낙산사
의상대가 보이는
어느 바닷가 모래밭에 묻었다
어제 밤 죽은 우리들의 장례식
상현이를 먼저 묻고, 은주를 묻고, 연주도 묻고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묻었다
4월은 신화의 계절,
동해보다 파란, 코발트 블루
그리스 지중해의 꿈을 묻었다
계를 묻었다
그 길에서 길을 물을 것이다
3.
수족관 속 황어의 눈길이 불안하다
몸은 이미 달아 오를 대로 달아올라
짙은 주황색마저 짙노란데
지느러미 갈래갈래 걸레처럼 찢기고
네 눈에 갇힌 내 가슴도 미어지는데
무엇에 갇힌 것일까
알을 가득 품고서
고향으로 돌아 오던 길
누구 손에 그리 된 것일까
길목마다 지켜선 죽음들
세상은.. 사람들은..
굶주린 듯 제물을 찾고 있다
목숨 걸고 돌아오는 길
수족관 속,
길 잃는 황어에게서 죽음을 본다
버스 유리창 안으로 갇힌 꿈들을 묻는다
4.
베이스 캠프에서
내일이면 우리는 정상을 향할 것이다
모두 또 각자
제 갈 길을 좇고, 목숨 같은 시간을 다투면서
그 길에서 누가 살고, 누가 살지 못할지
아무도 모른 채
베이스 캠프에선 축제가 열린다
불을 피우고
연기가 오르고
방금 죽은 7명의 식지 않은 주검들을 굽고
술을 마시고 노래를 지른다, 춤을 춘다
인디언 추장 현상금이 걸린
베이스 캠프에서
5.
-나의 장례식 ‘Memento Mori’ 중에서
화장을 해 주십시오
살아 생전에 다 태우지 못한
욕심덩어리마저 남김없이 태우고 싶습니다
다시 돌아다 볼 미련조차 남기지 않고
자유로이 떠나고 싶습니다
-중략-
이제 제 별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중략-
눈물도 필요치 않습니다
꽃도 필요치 않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치 않습니다
다만 하나, 나의 F.R.A.N.C.E.S.K.A
파란 하늘 눈물만 콕. 콕. 찍어 쓰던
그 이름 자 새겨진 하나 만으로 족합니다
제 몸 속 피를 짜내어 쓰던
오직 그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그것으로 나는 양식과 돈을 구하지는 못하였지만,
아픔을 치유할 약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심장에서 뻗어 나온 가지 끝으로
그 몸뚱이를 움켜쥐고서
비로소 파란 하늘을 보았고
사랑 때문에 울었고
슬픔을 나눌 수 있었고
기쁨과 행복의 시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늘 여러분들과 함께 있으며,
나를 찾아가던 나침반이었고
세상을 향한 문을 열었던 열쇠였고
이제는 제 별로 돌아갈
영웅의 전리품이기도 합니다
가슴에 꽂고 가려합니다.
6.
끝으로,
성심으로 나를 대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려 합니다
다음 생이 있거든
늘 먼 산을 바라보던 나대신,
당신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을
만나기를 빌고 싶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7.
내 몸도 죽어지면 저리 될 텐가
검게 그을린 둥근 타원형,
뼈를 갈 듯이 갈아서
팔팔 끓는 물을 붓고... 잠시...
침묵이 향기를 먼저 마신다
뼈를 우린 물,
데운 컵을 비우고서야
온전히 피보다 짙은 그 물로 빈 속을 채운다
쪼르르륵
마지막 몇 방울까지도 짜내려 붓고서야
뜨거운 한 모금 입안에 머문다
식도를 따라 위장이 먼저 데워지고
작은 실핏줄들을 따라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피같은 죽음을 맛 본 짐승이 요동을 친다
Allegro Allegro
구석구석까지 불을 지르고 돌기 시작한다
누구의 주검은
그렇게 내 몸에서
또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한 번만 더, 진한 유혹이 번진다
Andante con Moto
Andante con Moto
Memento Mori
Memento Mori
내 죽음도 저리 될 텐가
누군가의 몸속에서 심장 뛰게 할 것인가.
8.
첫 입술처럼 살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사..
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