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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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받았다. 그것도 내가 젤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누가 뭐래도 이거 내 꿈이었다. 어리바리 인생에 작은 성공 하나 추가! 나름 섬세하고 예민한 내 마음은(뭐, 가끔) 겉으로 드러난 격려와 박수에 사정없이 무너진다. 행복바이러스 와장창 쏟아져주신다. 그런가 하면 또 워낙 굳세고 튼튼해서(뭐, 이것도 가끔) 한번 받은 격려를 분명하고 꾸준하게 유지하곤 한다. 그러니 더 미칠 준비를 마쳤다고나 할까.
지쳐 비틀거리고 있었다. 버릇처럼 익숙하게 징징거릴 준비를 하며 일상에 치여서 살고 있었다. 뒤뚱거리고 휘청거리다 못해서 중심을 잃고 가볍게, 자주, 흔들리고 있었다. 일과 가정과 꿈의 조화와 균형? 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소린지, 언제부터 중얼거렸는지, 이런 야무진 꿈이 따로 없다. 일은 영업실적 저조로 출근하면 깨졌고, 가정은 남편에게 멱살을 잡히며 망가졌고, 꿈은 언제나처럼 보이지 않았다.
속초로 떠나기 전날, 나는 또 남편과 다퉜다. 새벽같이 가방을 꾸려 집을 나오는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집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해방감 비슷한 행복을 느꼈다. 겨우 1박2일짜리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언젠가처럼 그렇게 떠난 길에서 만난 장례식은 이번에도 불편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찾는 가족이 낯설었다. 내 가족은 누구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처참했다.
새장 안에 갇힌 채로 자유를 배웠다. 행복 대신 불행을 배운 셈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배우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내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가, 불쌍했다. 미안했다. 그래서 슬펐다. 그래, 밥 차려주자. 꿈이고 나발이고 이따위로 살 바에는 그냥 자유를 버리자. 무슨 대단한 걸 이루겠다고 눈물바람을 하면서 산단 말인가. 그래, 다 관두자, 일도 다시 열심히 하고, 살림도 다시 열심히 하자, 남는 시간에 꿈꾸자, 그랬다.
그러다가 꿈 선생님 강의 도중에 느닷없이 호명되고 박수까지 받았다. 이런 제기랄. 나보고 어쩌라고. 가슴이 먹먹했다. 잠시 후, 기타에 실린 꿈같은 목소리에 난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의 그 선율과 그 목소리라니. 아, 정말이지 변경연은 나를 미치게 만드는 곳이다. 지금 이 자리를 뛰어 넘게 한다. 그래, 돌아가자,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 뭐가 됐든 열심히 살아보자, 부딪치자, 그랬다. 그렇게 다시 돌아왔다.
이틀 동안 남편과 통화도 하지 않았다. 어떤 얼굴로 마주할까 하면서 나왔던 집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찌개 냄새와 은은한 섬유린스의 향과 반짝반짝 빛나는 집안의 구석구석이 보였다. 새벽에 나를 떠나보낸 남편은 청소를 시작했단다.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생각해 보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래고래 노래 부르다가 잠겨버린 목소리와 멀미나는 속을 부여잡고 남편과 술을 조금 마셨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밥도 잘하고 암튼 다시 잘하겠다고 했다. 우리의 도돌이표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새로운 월요일, 나는 아팠다. 감기 몸살에 마술까지 시작된 몸은 어쩔 줄 몰랐다. 진통제를 사 먹으며 수업을 했다.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해열제를 챙겨주며 한마디 던진다. 멀쩡하게 나가서 왜 병이 나서 왔냐면서 그 모임, 앞으로 나가지 말란다. 귀여운 놈, 나는 속으로 웃었다. 어디서 생긴 여유인지 알 것 같다.
내가 거기 가서 칭찬 받았거든. 나 그런 사람이거든. 나 쫌 미쳤거든. 아싸라비아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