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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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생님.
지난번 만났을때 전달해드렸던 영화, <너를 보내는 숲>을 보고 제가 간단하게 메모했던 내용을 보냅니다. 이 글을 쓴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선생님께서 영화를 보시고나서 이 글을 보여드릴까 하다가 지금 당장 보여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래도 제 글을 보시면 조금이라도 이 영화를 보실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입니다.
그저 푸르다, 라는 말로는 부족한, 거대한 숲 이면에 있는 죽음의 이미지가 휘감고 있는 시와 같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전 참 좋아해서 이 부족한 글과 함께 올리고 싶은데, 기술적으로 아직은 제가 좀 부족한지, 지금 당장 올릴 수가 없습니다. 일단, 저의 글을 소네트와도 같이 선생님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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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너를 보내는 숲 殯の森, The Mourning Forest >은 인간 치유에 관한 영화이다. 상처받은 두 사람을 감싸는 것은 숲으로 대변되는 자연이다. 생태 이미지를 수려하게 담아 내려는 이 영화는 자연을 찍은 아름다운 장면들로부터 치료효과를 내고 있다.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산들바람에 살랑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사방으로 펼쳐진 녹차밭, 향긋함이 뭍어 나오는 묘목, 그리고 울울한 수림 등 온통 초록으로 우리의 눈을 말끔하게 치유해 준다. 뿌연 스모그와 회벽들이 눈앞을 가로막는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시원함을 선사해 주는 것이다.
마치코와 시게치. 두 여행자가 지나가는 곳도 온통 나무로 뒤덮힌 숲이다. 초록의 숲은 완강하게 그들을 포위하지만 공포감을 주기보다는 안온함과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광포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잠시 그들은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이 역시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자연의 친화력에 은근히 젖어들게 된다.
영화의 백미는 폭우가 쏟아 지던 날 밤, 오한에 떠는 노인을 위해 마치코가 웃옷을 모두 벗고 필사적으로 시게키의 살을 비벼대는 장면일 것이다. 시게키를 위해 마치코가 할 수 있는 것은 맨몸으로 그 감촉과 열기로 노인의 몸을 데우는 것이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숨을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식물과도 같은 존재들이 비로소 화합하여 서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인 것이다. 그들은 숲 속에 있는 시게키 부인인 마코의 묘에 이르러 비로소 자궁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증은 이제 치료된다. 납덩이처럼 가슴을 누르던 답답함도 숲과 함께 사라지고,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내던 인물들의 지겨운 일상들이 이젠 숲에 부는 바람이 되고, 빗방울이되고, 또 하늘거리는 나뭇잎의 흔들림이되어, 서로의 삶 속에 한들거리는 것이다.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에서 현실감각이 가장 진하게 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한 이 순간은, 특히, 마음이 울쩍하거나 자연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영혼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꼭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 영화의 원 제목은 ‘모가리의 숲’ 이라한다. ‘모가리’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시간, 또는 그 장소를 의미한다고 한다. 07년 깐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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