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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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7]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그는 꽤 유명한 치과의사였다.
라디오 방송진행자는 그에게 왜 의사를 그만두려 하는지를 물었다.
그가 말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라고.
가난한 집의 큰 아들로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30년을 넘게 성공한 치과의사는, 이제 서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2학년 미술시간, 선생님의 칭찬한마디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감촉을 그는 백발이 되는 나이까지도 잊지 못하고 살아 왔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소년이다. 무지개를 쫒아 나선 눈이 맑은 소년이다. 행복한 그의 웃음이 보인다.
20년쯤 전이었다.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서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그리고 지금도 가슴에 꽂혀 있다. 아직껏 뽑을 용기를 내지 못해서, 가슴에 못 박아두고만 살고 있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잘 나가던 상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배를 불태우게 했을까. 용기가 없어서였을까. 불태우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려 할지도 모를까봐서?
봉인된 무덤을 여는 일, 왕가의 계곡, 달빛 찬 그 죽음의 골짜기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아 헤맨 것일까? 세 번씩이나 거르고, 세 번을 뒤집어엎고서도 부족해서 그들을 목마르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남들처럼 일확천금으로 폼 나는 노후?
그런 이들의 삶을 접하면, 제멋대로 뛰기 시작하는 이놈의 심장은 누구의 것인가.
그는 절박한가를 물었다.
1년 반을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절박한지를.
와인 한 잔을 주며, 그가 또 묻는다. 꼭 지금이어야 하냐고.
그래서 말했다. 내 나이 마흔셋이라고. 평생에 딱 한번 만 오는 마흔 셋이라고.
그는 별로 힘들이지도 않은 척, 선문답처럼 던진다. 툭.툭.
나는 아프다. 구석구석 여기저기 부지깽이 끝이 닿는 자리마다 시뻘건 불이 일고, 더러 파란 멍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문득 봤다. 부지깽이도 빨갛게 달아 있는 것을.
아 그렇구나, 남을 달구려면, 자신부터 달궈져야 한다는 것을.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려면 먼저 아파야지. 정말이지 제대로 아파보지 않고서,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서야. 제대로 쓴다고 할 수 없지.
사랑 때문에 울어보지 않고서 제대로 사랑했다고 말하면 안 되지.
운명 때문에 서러워보지도 못하고서 운명을 탓해서는 안 될 말이지.
버림받고, 배신당해보지 않고서, 외롭다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
벌써 4월이다. 눈꽃 나리던 시작이 이미 벚꽃을 지는 때를 지나고 있다.
저 벚꽃, 앞으로도 마흔 번을 더 본다고 하면, 아니 열 번만 더 볼 수 있다고 하면,
아니다. 내년엔 다시 볼 수 없다고 하면, 꽃잎 한 장, 한 장 이파리가 목숨처럼 보이지 않을까. 비가 오려는지 또 하늘이 어두워진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년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엘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엘 가자.
http://blog.daum.net/jaesushin/13742483?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jaesushin%2F13742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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