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건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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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바쁜데, 만나자면 덜컥 만나줄 지 알았니?’
나는 좀 전에 거절 메일을 받았다. 물론 이렇게 적나라한 대사는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매우 정중하고 세련되게 포장된 회신메일에서는 보낸 이의 의도와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팀원들이 눈치라도 챌까 지레 헛기침이 나왔다. 누군가의 거절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또 다시 주눅이 들었다. 거절 당하는 게 분명 창피한 일은 아닐진대, 나는 매번 거절이란 놈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심장이 콩닥거리고 마음이 우왕좌왕 길을 잃는다.
그러니까 예산을 얘기하기 전까지 우리는 동상이몽을 꾸었던 것이다. 나는 멋진 브랜드스토리를 만드는데 전문가인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 말했고, 그녀는 나를 선뜻 만나러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너 얼마나 쓸 예정이니?’
라는 질문에 나는 그건 그녀를 만나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의논해봐야 안다고 했고, 그녀는 사전에 예산과 계획이 확실치 않은 미팅으로 시간낭비를 하지 않겠다며 최종 회신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네 열정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다. 글쎄, 하지만 그건 네 입장이고 나랑 같을 수 없지.’
그녀는 내가 보낸 메일의 한 줄 한 줄에 댓글을 달아 답을 보냈는데 그건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한 줄마다 내가 얼마나 순진하고도 멍청한지, 자신같이 유명하고 바쁜 사람의 시간을 아니 미팅시간당 얼마로 환산해서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낭비하겠다고 했는지 조목조목 따지지 않고 조금만 더 주눅들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해주었어도 나는 충분히 알아 들었을 텐데 말이다. 글쓰기로 유명한 그녀는 그렇게 조목조목 따져서 답장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았을까?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잠시 막막했었다. 저 쪽에서 원하는 것은 미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답장을 꼭 보내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답장을 안보내자니 그건 또 사람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고.... 한 편으로는 조목조목 나를 민망하게 한 그녀에게 뭐라고 답장을 쓴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회신 메일쓰기를 눌러놓고 커서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뭐 이것도 어차피 해야 할 훈련이다. 거절에 세련되게 대처하는 것도 살면서 훈련해야 하는 것이지..하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나중에 유명해지면 그녀도 나를 알아볼 텐데 나중을 위해서라도 지금 매너 있게 대처하자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푸하하하하..
‘앗, 마음만 앞서서 무례를 했나요?’로 시작해서 ‘제 열정이 다른 분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로 끝나는 메일을 방금 보냈다.
오늘 또 한 번의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보는 시도를 했고, 또 한 번의 거절을 겪으면서 한 껍질 둔해졌으니 그걸로 괜찮은 하루였다.

제가 하는 일은 브랜드 매니저입니다. 브랜드 매니저가 무슨 일을 하느냐면... 아주 거칠게 말하면 고객이 원하는 어떤 가치(=브랜드 컨셉)를 많은 사람이 알려나가면서 우리 브랜드와 고객과의 끈근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모든 일을 기획하고 그 중 일부는 실행합니다. '승리를 항한 도전'이란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고객에게 '나이키'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 이렇게 예를 들어도 좋겠네요. ^^;;
그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한선생님께만 살짝~ 말씀드릴께요.
저 6월 이후엔 한선생님을 직접 얼굴뵐 계획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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