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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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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0일 22시 00분 등록

1.

시밖에 쓸 것이 없었다.

 

얼마 안되지만

세상 살아 온 길,

다 풀어 말하자니 별 것 없어 보이고

아팠다고 눈물짜자니 혼자서만 유난 떠는 거 같고

그냥 적자니 너무 가벼워 보이고

있는 대로 말하자니 오해만 살 것 같고

그렇다고 차마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의 삶에
쓸만한 것이라곤 시밖에 없었다

 

2.

그녀는 왜 치마를 뒤집어 썼을까?

 

바람도 불지 않는

눈길도 먼 볕자락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 걸까

연분홍 치마,

홀딱 뒤집어 쓴 그녀는

 

인당수 푸른 물에

눈 먼 아버지 생각때문이었을까

공양미 삼백석에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고

서러운 목숨 하나

홀딱 뒤집어 쓴 그녀-

얼레지

 

3.

쑥- 내밀고

 

아침식사. 쑥-국이다

쑥- 내밀고 왔다가

다시 언제가 될지

도로 묻혀 버릴 사연들

밥을 먹다가도 적고

반찬을 집다가도 쓰고

쑤-욱하고 지나가 버릴까봐

다시는 오지 않을까봐

 

4.

어느 유명한 통신회사에 다닌다는 내 친구는

소통 전문가가 될 것 같다

막힌 곳 이곳저곳 부지런을 떤다

모르지 또, 전생에 배관공이었는지도

징하나 들고서

둘둘 장대말린 빗자루를 끼고

외친다

‘징~ 뚫어~’

 

딱 봐도 안다. 나나 그나

무지랭이 같은 인생이다

제 머리 못 깍고,

제 가슴 맺힌 것도 못 풀면서...

 

누가 글드라. 우떨이 닮았디야

짜샤.. 사랑한다.

 

5.

2010. 4. 13 아침

 

신기한 그녀

별일이다.

오늘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냐고,

어디 아프지는 않느냐고

꿈에

내가 죽었댄다.

미-친-년, 어찌 알았디야

 

6.

콩, 너는 죽었다

콩잡아라

콩잡아라

저 콩잡아라

......

세상에 이런 것도 시란다

베트콩 잡던 월남이야기도 아니고,

초등과정 주부학교에 다니는 어머니가 시를 왼다

8살 손주딸과 마주앉아

벌써 몇 명이나 잡았는지 모르겠다

신나게 잡는다

 

7.

말장난

 

엿가락처럼 늘렸다가,

오백원짜리 뒤집어도 봤다가

말꼬리 잡고 시비도 걸어봤다가

뛰다가, 다리를 쭉 뻗고 뒹굴뒹굴

꽈배기처럼 꼬다가 피식 웃어버린다

 

커피한잔 시켜놓고

담배도 한 대 꼬나물고

라이타 불을 당겼다 놓았다

공책에 끄적끄적

머리를 극적극적

 

뭐시여... 이것도 시여?

 

8.

고향의 봄

 

벌써 10분 째

복숭아꽃여... 복사꽃여...

고향의 봄은 복숭아꽃인디,

왜 내 머리엔 꽃보다 복상이 먼저냐고..

꽃지고 복상 열릴텐데

깨물면 줄줄 흐르는 침이 먼저 나냐고

도대체 꽃은 어디로 갔냐고

봄은 왜 안보이냐고

백번을 물어봐도 복사꽃여.

글치, 고향의 봄은 역시 복사꽃이지

9.
집사람 전화는 녹음기다

어디여?
뭐혀?
늦어?
일찍 와.

그려, 내가 죄인이다.

IP *.221.2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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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4.21 02:32:23 *.67.223.107
돌배나무 신진철
돌배나무 술이 잘 익으면 웬만한 와인은  명함도 못내밀 만큼 맛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디고 알맞게 숙성된 돌배주....를 기다려봅니다.
건투를 빕니다. 

나도 고독을 견디며 숙성되기를 기다리는 중이어서
쉬이 나서  댓글달아  격려하는 일 잘 못합니다.
다만 그대가 그대의 길을 즐겨 춤추며 나아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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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4.21 03:05:12 *.36.210.214
배운 것 만큼은 그대에게 줄 수 있다. 
칼럼 대신 시를 쓰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그대여,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

가장 잘해서 다른 것에 비해 하기에 쉬운 효율적인 것의 가치와 그저 만만함으로 인해 적당히 해치워버리기에 쉬운 것을 선택하는 경우의 가치는 사뭇 다르다.

내가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기는 하는데 중요한 것을 게을리 한다는 데에 실패(성과의 저조함)의 요인이 있다. 그러니까 그것이 너무 하고 싶어 안달이 나거나 가장 하고 싶은 좋아 하는 일이어서 라기보다, 가장 손쉬운 접근으로 간단히 해치워 버릴 수 있는 일부터 골라내어 한 가지를 해 치운 것에 대해 우선 만족을 하며 그친다는 데에 맹점이 있는 것이다. 즉 해야 할 진중한 의미의 일을 두려워하며 손쉬운 일들만을 먼저 골라 조물락 거리다 그것도 끝까지 들러붙어 사생결단을 하며 달려들기보다, 중도에 샛길로 빠지거나 그저 이저 저도 없이 어영부영 말아버린 다는 것에 있다. 얼마나 한심한 노릇인가. 남과 같은 시간 동안 흉내내어 시간을 쏟기는 하지만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별반 없는 정도의 가벼운 빙빙거림을 주로 해대는 것으로는 결코 가치나 주목을 받을 수 없다. 인정은 인정에 그칠 뿐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방바닥만 비벼대서는 닳기는 닳았는데 진정한 운우지정의 일체감을 느껴 생산해 낼 수 없음이다.

의미를 두고 깊이 파고 들지 못하면 무엇을 잘할 수 있으리. 그러므로 그 골작의 진액 그것 하나만은 누구의 거시기에도 물러서거나 지지 않을 자신감을 가지고 온몸으로 덤벼들 수 있을 때, 골 깊은 곳으로부터 뭐가 흘러나와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전력투구하여 사생결단을 할 수 있어야 단단한 무기가 된다. 그대여, 허영의 누이를 답습하지 마라. 어떤 이유로든 이 이야기나마 그리 길게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인생을 위하여(혹은 인생에게) 술을 몇 번이나 대접하였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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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2010.04.21 08:14:42 *.219.109.113

너에게 선택 당한 언어들은 유쾌한 단어들인데 시를 읽다보면 마음이

슬퍼져. 이유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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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랭이
2010.04.21 10:31:57 *.236.3.241
나 무지랭이 맞다 ^^ 내 한 몸 죽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 가슴은 어찌
찌르겠다고.  그래도 무지랭이끼리 지지고 볶다 보면 밥상에 오른 무말랭이라도
되지 않을까, 막연하지만 통렬한 심정을 가져본다.

봄이 왔다. 창문을 열고 달라진 공기를 느껴 보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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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1 19:56:54 *.154.57.140
올 봄엔 비도 잦네요. 또 비가 내리네요.
덕분에 커피향도 더 진하고, 맛도 더 좋네요. ㅎㅎ~
항상 그리고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호우시절,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비 그리고,
라일락 향기가 짙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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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2 12:55:40 *.221.232.14
ㅎ~ 비온 뒤 약간 을씨년스럽네요. 날씨가.
변경연에서는 '결국 들키고야 마는 것'같습니다.
숨을 곳도. 숨길 것도 없이.
고맙습니다.  진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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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한정화
2010.04.22 10:03:28 *.72.153.43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던가 쓰던가 하세요. 그냥 해요. 그거 빼면 쓰고싶은 거 별로 없을걸요. 쓸 것도 없고.
4월 9일이라고 앞쪽에 써둔 제 노트는 한두가지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벌써 마지막 장입니다. 얼마전부터 쓰던 이야기를 읽었는데 유치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썼습니다. 몇페이지에 걸쳐서 쓰고는 이야기를 마치면 다시 또 같은 이야기를 또 썼습니다. 그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하기가 꺼끄러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었습니다. 며칠은 그냥 머리 속에만 두다가 그러다가 쓰기 시작하자 계속 같은 이야기만을 썼습니다. 다음날에는 다른 사람이 등장하는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같은 이야기를 계속 썼습니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건 제가 제게 하는 이야기였나 봅니다. 
노트가 다 채워졌을 무렵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서 웃었습니다.
앞쪽과 같은 이야기가 뒤쪽에 있고, 왜 사람이 바뀌었는지, 왜 3인칭을 쓰다가 1인칭을 쓰다가 자꾸 왔다갔다 하는지 우스웠습니다.
쓰레기 같은 글을  한참을 털어놓고 나서야, 내가 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해 계속 다른 이야기 속에 묻어서 숨겨서 내 놓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구원 중에 누군가가 당신과 내가 좀 닮았다고 해서 관심이 갑니다.
애정이 많은 그 사람이 내게 보내주었던 응원을 당신에게 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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