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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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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6일 11시 36분 등록

[칼럼 8] 내 안의 신화찾기 1

 

어느 일요일 새벽처럼, 성당에 가는 대신 나의 성소를 먼저 찾았다.

108배를 하고서, 마지막 한 배를 더, 그리곤 나를 위한 커피를 내리고, 잠시 눈을 감는다.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차가운 호숫물처럼 거울이 맑고, 살짝 바람이 잠시 스쳐간다.

다시금 잔잔해진 거울에 파란하늘이 들어온다. 고요하다. 천천히 내 모습을 비쳐본다. 숨쉬는 것도 잊었다.

 

1. 톰소여가 떠올랐다.

어느 햇볕 좋은 봄날인가 보다. 낡은 청바지의 멜빵 끈이 풀린 채, 톰은 터덕터덕 페인트 깡통을 들고 나타났다. 입이 잔뜩 불어 있다. 울타리 한 쪽 구석에 깡통을 쳐박아 두고 선, 이 궁리 저 궁리, 놀 궁리를 해본다. 엄한 고모의 표정에 ‘이번만큼은 착하게 말을 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해보지만, 벌써 마음은 미시시피강 뗏목을 타고, 돛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머리를 두어 번 세게 흔들고 나선, 붓을 잡는다.

“제기랄, 이 좋은 햇볕에 울타리 페인트 칠이라니....”

얄궂은 동네 개구쟁이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저마다 한마디씩 비웃음을 던지기도 하고, 사과 한 입을 베어 물고서 조용히 톰을 지켜보는 녀석들도 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은 짧은 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톰에게 제안을 했다.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대신 아끼는 주머니칼을 만져보게 해주겠다고 한다. 옆에 있는 녀석도 덩달아 먹다 남은 사과 반쪽을 내민다.

순간이었지만, 톰은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바꾸게 될지를 깨달았다. 지겨울 것 같던 일이 한 순간에 즐거운 놀이로 변했다.

이제 톰의 손에는 붓 대신 빠알간 사과와 멋진 주머니칼이 들려 있다. 주머니칼을 만지작거리면서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하나씩... 더없이 행복한 오후 햇볕을 즐기고 있다.

 

2. 라푼젤

오랜 시간 탑 속에서 갇혀 자신을 구해 줄 왕자를 기다리던 라푼젤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용과 맞서 싸우고서, 이제 자기를 구해 줄 차례인데, 저 밑에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왕자를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월의 길이만큼 자라버린 머리카락을 빼고선.

‘놓치면 안 되는데..’

‘저 분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되는데...’

‘어쩐다지...’

높은 성, 창문을 통해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왕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오르게 될 것이다.

 

3. 돼지들의 소풍

소풍을 나선 돼지들이 꿀꿀거리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그 무슨 셈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세고, 또 세어 보는데, 표정들이 심각하다. 번갈아 가면서 다른 녀석이 세어보지만, 뭔가 결과는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하나가 부족하다. 어데로 갔지?’

분명히 떠나올 때는 숫자가 맞았었는데, 돼지들의 셈세기는 봄날 오후 내내 계속된다.

 

-만약, 당신이 이 숲속을 지나거든 꼭 이 가엾은 돼지들을 위해 잠시 셈세기를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혹시 당신도 저 소풍 나온 돼지를 무리 속에 있지는 않은지...

 

4. 12시가 되자,

모든 것이 다시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마법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늠름했던 마부는 생쥐가 되고, 마차는 다시금 늙은 호박으로 변해버렸다. 화려했던 드레스는 낡은 재투성이 하녀의 누더기로 되돌아와 버렸다.

두고 온 유리구두만 빼고.

그것도 한 짝만 두고 온.

 

5. 좀 더 멀리 보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만, 조금만 더 높이 날아올라야 했다. 아버지는 위대했다. 내게 이런 날개를 달아주다니...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기억하지 못했다. 어깨 뒤에 힘이 조금씩 풀린다. 자꾸 헛날개 짓을 한다. 몸이 더 이상 맘을 쫒아가지 못한다. 고개를 들어 내가 좀 더 오르려했던 저만큼을 어림해보지만, 내 몸은 서서히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날개짓도 풀이 죽는다.

순간 균형을 잃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추락이다.

구름 아래로 파란 바다가 아찔하다.

“아-- 아버지, 왜 하필 저에게...”

 

6.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햇볕에 눈이 부시기 시작한다. 저- 웬수같은 녀석, 아폴론. 그도 그 자의 핏줄이지않던가.

손목에 감긴 쇠사슬 사이로 축축한 이슬이 차갑다. 찌뿌둥한 몸을 움직여 볼 요량이었지만, 철거덕거리는 이 사슬소리에 괜한 짓임을 다시 깨닫는다.

저 놈의 간. 저 놈의 독수리.

차라리 끝내고 싶다.

 

‘그게 그렇게도 큰 죄였더란 말인가...’

 

IP *.186.57.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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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4.26 16:49:23 *.236.3.241
신 마담, 커피 내려 마시면서 지난 주말도 긴긴 밤을 버틴겨 ㅎㅎ

우리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뭐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자구~~

12시가 되면 칼같이 잠자리에 드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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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8 07:57:25 *.186.57.251
긍게..이제 일곱고개 넘었는데... 아직도 한 살이 안된거 같아서..들쭉날쭉하네
나도 routine 하게 되겠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그래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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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2010.04.26 18:06:36 *.219.109.113
신화를 찾은겨?

난  못 찾겠어. 너무 어려워. 진철아 난 언제 널 따라 갈까?

너두 천주교 신자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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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8 07:55:58 *.186.57.251
아뇨..찾고 있는겨... 이렇게 하다보면.. 찾아질까 해서..ㅎㅎ
천주교? 사실 신자라기 보담...냉담자라고 해얄거 같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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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10.04.26 23:55:06 *.166.98.75
아- 진철씨가 내려준 커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커피 향을 찾아 방을 전전하다가 마지막 방에서 찾은 그 커피향이란..!!
오늘 저녁, 커피 한잔 마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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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8 07:59:36 *.186.57.251
허걱...12시가 다되어서.. 오늘 저녁이라.. 재엽님, ㅎㅎ 암튼 좋네요..
우유빛깔 정재엽...ㅎㅎ 우리가 섞이면..초코우유나..아님.. 밀크커피가 될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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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4.29 11:32:11 *.72.153.59
진철님 안의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물론 진철님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그 사람은 진철님과 동일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당신의 신화입니다. 자신의 이야기... 그것이 당신의 신화입니다.

신화 속 인물에게 이름을 주시고, 특징을 주세요. 그가 사는 세계, 그가 살고자 하는 세계를 선물하고, 그에게 특별한 여정을 선물하세요. 그러면 그때부터는 그가 아닌 당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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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4.29 20:48:24 *.154.57.140
지금은... 쓰레기를 뱉어내고, 3인칭으로 보고, 1인칭으로 느끼고...
우선은... 그것이 궁금하고,
다음은, 그것을 궁금해하는 내가 궁금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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