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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30일 10시 38분 등록

나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학부 1학년 때 교양 필수과목으로 수강한 철학개론의 기말고사 시험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공과대학 학생이었고 철학은 참 어려웠다. 그때 아마 교수님이 강의한 것을 딸딸 외워서 답안을 작성했던 것 같다. 기억력과 당일치기의 기적으로 성적은 잘 받았으나 철학이 뭔지 전혀 모른 채 교양철학을 이수했고, 그 이후 철학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 인생에 철학 따위가 파고들 틈도 없이 석사과정까지를 공대에서 끝냈다. 철학을 몰라도, 고민하지 않아도 내 인생은 잘 굴러 갔었다. 의식없는 지식인으로......

 그러다가 박사과정을 인지과학으로 변경하면서 철학은 내가 반드시 이수해야만 하는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인문학적 배경이 전혀 없이 공학 공부만 해왔던 내가, 심리학, 철학, 인류학, 신경과학, 언어학, 인공지능, 컴퓨터 공학 등등 십여 가지 이상의 학문이 종합되어 형성된 인지과학을 선택한 것은, 나의 사고의 패턴을 완전히 뒤흔들게 만드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논문 쓸 때 사용했던 ‘생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인지과학을 할 수가 있었다.

 인지과학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컷고, 나는 철학과에 원정을 가서 철학만 전공한 석박사 과정 학생들 10여명 틈에 끼여, 함께 수업을 들어야 만 했다. 첫 학기 내내 가장 어려웠던 것이 철학수업이었다. 당시 나는 심리학과에서 인지심리학을 들었고,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에서 신경과학도 들었는데, 그것들보다 철학과 수업이 몇 배나 더 힘이 들었다. 그 이유는 사고하는 방식과 토론방식,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공대는 대부분 세미나 위주의 수업을 하므로 줄곧 세미나에 익숙해 있던 나는,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철학과의 수업은 그 방식부터가 생소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나는 저능아처럼 말 한마디도 못한 채 그냥 앉아 있어야만 했다. 말의 의미는 고사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은 진짜 실화다. 의미는 고사하고, 단어들조차 못 알아들었으니, 그들의 토론과 교수님의 커멘트를 이해해야 진도가 나가는 대학원 수업에서, 내가 받은 스트레스의 강도가 어땠으리라는 것은 짐작하시는 대로다.

철학은 정말 어려웠다. 수업 받을 때 받은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어느 날은 수업 끝나고 차에 한 시간 가량을(출발을 못하고) 진정시키느라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문자 그대로 가슴이 아팠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올 만큼, 그들의 생각 방식과 수업 방식은 나를 뒤 흔들었고 괴롭혔다. 문제는 나도 수강학생이었기에 그들처럼 발표를 해야 만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그 수업에서 교수가 요구하는 조건을 다 충족 받아 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는지,  그 이후 연속으로 동일한 교수의 철학 수업을 2학기 더 계속 최고점수로 수강 받았는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나는 3학기 수강기간 내내 교수님의 요구사항과 내 발표분량, 과제를 수행하면서 늘 교수님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 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로 내가 변하여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철학을 통해, 그때까지 내가 생각해오던 방식, 내가 추구한 연구 방식을 탈피할 수 있었고 내 생애에 최초로 ‘사고실험’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철학의 독창성은 기존의 사고방식과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데서 나온다” 는 말이 내게도 진리로 작용한 것이다. 철학을 배운 덕분에 나는 인지과학 박사학위논문을 정말로 인지과학답게 쓸 수 있었고, 파트타임 임에도 불구하고 3년 6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철학이 준 선물이었다. 박사과정 중 내게 가장 많은 가르침과 학문적 성장을 안겨준 것이 철학이었다. 그리고는 철학을 완전히 잊었다.

  연구원 청강 밀린 숙제를 하느라고 바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역시 철학이 어렵다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그런데 서양철학사를 읽으며, 내게 철학은 인지과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푯대역할을 역할을 한 것 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기능을 숨어서 하고 있었음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불교신자였었는데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13년을 기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순전히 은혜다. 그런데 내가 교회에서 보고 겪은 것은, 내 신앙을 강하게 해주는 것과 교회 가기 싫게 만드는 것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어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교계에서 인정한 이단이야 더 이상 논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통 기독교 교단 소속의 멀쩡한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풍조를 보면서, 나는 참 혼란이 많았었다. 
  내가 한때 섬기던 어떤 교회는 정통기독교 교단 소속인데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판도가 너무나 이단 같은 면이 많았다. 목사가 성도를 어찌 인도(?)해서 그들이 인생과 재산을 통째로 교회로 헌납하게 만드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문제는 고등교육까지 받은 그들이, 하나님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너무 커서 그 소망 때문에 목사의 거짓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예수가 아닌 담임목사에게 충성했고,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교회 일에 헌신했고, 교회가 운영하는 영리사업에 정말 헐값으로 자신의 지식과 인생을 투자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의 실존을 믿었고, 예수가 나의 구주라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담임목사와 목사 측근들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급기야 담임목사는 내게 당시 다니던 직장(연세대 연구교수시절이었다)을 그만두고 교회 일만 하라는 명령을 하셨고, 오래 고민한 나는 결국 그 교회를 떠났다. 천국 소망도 중요했지만 내 인생과 내 소명인 직장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마 그들에게 나는, "사탄의 조종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나님이 준 축복을 외면한 지옥으로 떨어질 어리석은 백성"으로 결론지어졌을 것이지만, 나는 당시 수십일 동안 생각하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조사한 결과, 그 담임목사의 ‘잘못된 영성’을 깨달았고 그 결과 그 교회를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 나는 수많은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읽었고, 그 책들에서 말하는 기독교와 그 교회의 행태를 비교분석 했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담임 목사의 선언처럼, 내가 직장도 때려 치고 교회 일만 하기를,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면 어떻게 하냐?” 라는 것이었다.
  많은 책을 통해 비로소 나는, 기독교가 왜곡하고 성도를 위협하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교회에 대한 절대 충성은, 분명 ‘잘못된 영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빗나가지 않게 가드레일 역할 해준 것이 바로 ’철학‘이었음을 ’서양 철학사‘를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신학서적 등을 봤었는데,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철학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철학자들의 사고실험 결과물을 내 사례에 적용하여, 내 인생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을 위기에서 나 스스로 건져내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자들의 오랜 사고실험의 결과인 철학, 지혜의 결정체이다.

 러셀은 서양철학사의 마지막에서  “객관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어느 곳에서나 광신행위는 감소하고, 공감 능력과 서로 이해하는 능력은 증가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망치지 못하게 하라’고 충고 하지만 나는 ‘잘못된 영성에서 야기된 광신과 왜곡이 우리를 망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철학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게 광신행위에 빠져들지 않게 한 객관적인 방법인 철학은, 나로 하여금 공감능력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주고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진심을 다해 철학해야 만 인생이 풍요로워짐을 알게 되었다.

 진리의 산이 있다고 한다. 그 산의 맨 꼭대기에는 진리가 있고 산기슭에서 우리는 각자의 학문과 각자의 종교와 습관들의 등산로를 타고, 진리의 산을 오른다고 한다. 미학과 물리학 같은 전혀 상관없는 학문은 산기슭에서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지만, 산을 오를수록 그 격차가 좁아져 급기야 꼭대기에서는 모든 학문이 하나로 만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학문을 깊이 하면 할수록 다른 학문에 대한 통찰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산 꼭대기 진리, 바로 아래를 휘감고 있는 첫 번째 등고선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이 철학이라는 말인데,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통해 진리를 찾고, 철학을 하면서 진리에 가까워지는지 모른다.

나에게 철학이란, 참 어려웠고 여전히 어려운 학문이다. 그러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도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내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게 보호한 것도 철학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죽는 날까지 인지과학을 하면서 하나로 남길 것을 요약한다면, 결국은 철학일 것이라는 사실을 오늘 다시 보게 되었다. 진심을 다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겠다. 그들이 그랬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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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5.01 03:11:54 *.36.210.171
애쓴 보람이 있구려. 그리고 참 잘 오셨소. 우리들의 놀이터에.
언젠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몇 날 밤을 새도 모자랄 듯 싶소만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성 싶구려.
웬일인지 한 방에 모여 따뜻한 방에서 고구마라도 쪄먹으며 들어야 할 것 같소.
듣기만 하는 데도 거침없이 쏟아내고 퍼붓는 열정에 배가 고풀 것만 같아서리.  

과제도 거의 다 따라마셨구려.
열공하는 모습이 한껏 피었다가 지는 봄꽃처럼 아름답구려. (우리 철이도 그랬으면... ^^ 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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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 경수기
2010.05.03 06:23:54 *.101.179.82
써니언니
고구마 먹으며......... 이야기는 제가 오히려 들어야 할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 한분 한분마다 엄청난 보따리와 내공을 소유한것 같은데....
언제 한번 밤새워 emoticon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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