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강 경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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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부적응자’임에 감사하라!
“물은 부딪치면 빨라지고, 화살은 힘을 받으면 멀리 가는구나!”
사기열전 중 (굴원 가생 열전 P. 603)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우리 대부분은 그다지 큰 행운을 갖고 태어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받아 보이는 자들을 부러워한다, 자신의 위치나 자신이 가진 것에 불만이 많은 겁 없는 일부는 혁신적인 번영을 꿈꾸고 자신을 개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 앞에 굴복하여 그저 그렇게 살다가 간다.
그런데 너무 가혹한 운명으로 자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출생의 이력을 가진 자들과 스스로의 럭키한 운명에 만족하여 일생을 안락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변화를 별로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한계 파악으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의 영향력을 받는 집단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운이 억세게 좋은, 이미 다 가지고 태어난 그들의 ‘변화부정’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이 그 좋은 운명의 막강한 도움을 받는다면, 엄청나게 전설적인 것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이 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현재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절대 변화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죽~ 이대로’ 를 외치며 한평생을 운 좋게 살아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운 좋은 사람을 몇 명 운 좋게 알고 있다. 화려하고 편안하다. 다 가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 애석하게도 운 좋은 이들에게는 인생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없었고, 그들은 타인에게 차갑거나 용렬하거나 냉소적인 면을 공통적으로 많이 보여줬다. 실망스럽고 놀라웠다. 그들을 그 자리까지 올려준 것은 순전히 운이지, 그들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많이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을 변혁할 놀랄 만한 뭔가를 이루어 낼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것이 재계든 학계든 교계든 ‘이대로~’를 외치는 자들에게서는 큰 변영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약간 부족한 그룹에서는 놀라운 발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심적 에너지가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행운아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더 부유하고 더 재능 많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 중에는 지치지 않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이것은 누구나 다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이라 식상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본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 KAIST가 한국 최고의 과학 산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곳에는 머리 좋고 최고 학벌을 가진 재능 많은 교수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K고 관악의 S대, 미국 최고 대학의 학위들....... 많고도 많았다. 그런데 옆에서 직접 보니 연구 결과는 글쎄다. 하지만 그곳 기계과 O교수의 연구결과는 휴머노이드 로봇분야에서 세계 2위(1위는 일본 혼다사의 ASIMO)라고 할 만하다. 이미 언론에 너무 많이 발표되어 웬만한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학자가 되었다. 그런데 불행히 O교수보다 더 훌륭한 학위와 재능을 가진 교수들이 그곳에 많이 있었지만, 그들 중 많은 교수들은 연구를 전혀 하지 않고 학생들이 연구한 것으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막대한 연구비는 골프접대 같은 로비를 해서 따오지만 어마 어마한 연구비 수혜에도 불구하고, 깡통에 색깔이나 입히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나 깔아대면서 프로젝트 평가위원 속이고, 기자와 시청자를 속여서 연구비와 명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직접 목도하였다. 그들을 탓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O교수에 주목했다. 그는 조금 달랐다. 그는 K고 출신이 아니었고 오히려 K고 지원 탈락자가 간다는 2차 D고 출신이었다. 대학도 국내 최고 학부인 S대가 아닌 신촌의 Y대 출신이었다. 물론 박사를 받은 미국대학도 아이비리그도 초일류대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연구결과는 같은 학과 교수들이 자신의 정년을 10년 더 연장해줬다고 학과회의에서 직접 감사의 말을 할 만큼(회의 중 직접 들었다) 획기적인 것 이었다. 동료들이 인정한 놀라운 연구 결과!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학생에게서 전해 들었다. 처음 O교수가 그 대학에 부임했을 때 O교수는 KSU(경기고-서울대학사-미국박사) 출신의 초일류 교수들의 위세에 눌려 너무나 미미한 존재였고, 연구비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열악한 연구실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매니퓨레이션 연구를 홀로 숨어서 10년 가까이 했다는 것이다. 그 10년의 분투가 오늘날 동료들이 연구비를 몰아주자고 할 만한 우수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10년을 분투하게 만든 원동력이 ‘자신은 초일류가 아니고 게다가 자신은 완벽한 행운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자각을 O교수가 이미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채울 수 없는 부족함이 그를 그렇게 연구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오히려 전부 다 가진 이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변혁을 이루어 내는 집단은 초일류나 최상층이 아니다. 그들 바로 아래 집단, 즉 ‘부적응자 집단’이라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개혁을 꿈꾼 자들은 양반도 양민도 아닌 서얼집단에 많았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물론 간혹 천민들의 반란이 있긴 했으나 일반적으로 굶주리지 않을 때 천민과 양민은 별로 봉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얼들은 달랐다. 그들은 늘 불만이 많았다. 그들의 한쪽에는 양반의 피가 흐르지만, 그러나 그들에게 있는 나머지 치명적 약점인 모계의 혈통이 오히려 그들을 들끓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책임이 아닌 모계 혈통과 제일부인이 아니라는 모친의 신분으로 인해 주어지는 신분의 격차를 통해 서얼집단은 인생의 고락을 동시에 배우며 자라난다. 그들이 양민이나 천민과 다른 점은 불행히도 한쪽에 양반의 피가 그래도 흐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포기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반항적이 되고 부적응자들로 살아간다. 그 결과 그들 중에 혁명가가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족한 면이 우리의 강점이 되는 지점이다.
왜 그럴까? 무엇이 O교수를 10년간 칼을 갈게 했고, 무엇이 부적응자들에게 사회 변혁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준 것일까?
나는 그 실마리를 심적에너지 법칙에서 찾을 수 있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id)는 인류에게 내재된 본능적인 힘이라고 한다. 빛이 들어오면 눈을 감거나, 방광이 압박되면 판막을 열고 소변을 배출하면 된다. 이런 이드가 충동을 억제 당할 때 자아(ego)가 발달 한다는 것이다. 욕망의 억압이 자아를 발전시킨다는 말인데 억압되는 욕망이 없다면 이드는 반사장치로서만 역할을 하고, 인류는 고등한 정신체계를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이드를 반대하는 힘 그것이 자아를 발전시키듯,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쉬운 성취를 반발하는 어떤 힘, 그게 운명이든 사회적 제약이든 자신의 한계이든, 아무튼 뭔가 반대되는 힘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부의 이드를 강하고 역동적인 자아로 발전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행운이 많았던 적응자들은 항상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오히려 불행했던 부적응자들이 획기적인 창조물을 많이 이루어 내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사기열전의 굴원․가생열전 중에 “물은 부딪치면 빨라지고, 화살은 힘을 받으면 멀리 가는구나!”라는 글이 있었다. 시냇물이 그냥 흐를 때는 잔잔하지만 큰 바위를 만나면 소용돌이가 생기고 그 소용돌이 힘으로 물살이 세지 듯, 우리 운명에서 우리를 막는 불운이 우리를 오히려 크게 성장시킬 것이다. 또 화살을 뒤로 당기는 힘이 강할수록 그 화살이 멀리 가듯이, 뭔가가 우리를 반대하고 강력하게 억압할 때 그것은 도리어 우리 성장을 향한 추진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진실이 될 것이다.
버나드 쇼가 한 말 중 “이성적인 여성은 세상에 적응하지만 비이성적인 여성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하도록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미 부적응자로 만들어져 버린 것 같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오히려 적응자가 아니었음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약함이 도리어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을 미리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이성적인 여성(혹은 남성)으로서 불에 타면서 잿더미 속에서 나와 비상하는 불사조가 되어, 우리가 살다간 세상에 그냥 적응하지 않고, 그 세상이 우리를 기억할 뭔가 하나의 창조결과를 이루어 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적응자였음이 오히려 감사한다, 나의 불운과 나의 적들과 나의 약점이 ‘위장된 축복’이었음 깨달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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