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강 경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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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간이 어떤 것인지를 막상 쓸려고 하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 중 저 유명한 구절 “시간에 관해 아무도 나에게 물어보지 않을 때 나는 알고 있는 듯하다가 막상 물음을 받고 설명하려면 모릅니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나 역시 시간에 대해 말을 하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시간이 뭔지 모르겠지만 시간 사용 성패로 인해 발화하는 나의 감정의 종류는 잘 알고 있다.
최근까지 나는 무척이나 불안하고 초조했었다. 40대가 후반으로 가기 시작하면서 부주의한 실수로 이미 저질러 버린 사건이 야기한 손해를 몸으로 확인하며, 이직 이루지 못한 소망을 이룰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불면에 시달린 날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내가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평생직장이라고 여기고 있던 H대학에 8년 정도 근무했을 때, 그곳이 지겹고 그만두고 싶어지기 시작하면서 나의 부적응이 시작되었다. 그 욕망이 ‘부적응의 단서’인줄 미리 알았다면, 나는 그곳에서 65세 정년을 안전하게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었고, 급기야 많은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잘난 척하며 그곳을 10년 반 근무하고는 미련없이 나와 버렸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잘 가고 있던 시간이, 전혀 문제가 없던 시계가 때론 멈추기도 하고, 가끔은 거꾸로 가기도 하다가, 어느 날은 수십 시간 앞으로 날아가 버리는 그런 기이한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게 되었다. 불행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고, 해야 하는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오랫동안 나를 길들여온 시간이라는 것이 나를 이미 망쳐놨기 때문에 나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남들은 그것을 습관이라고 했다. 내가 삼킨 시간에 의해 형성된 악습은 그 어떤 강한 힘으로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바위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나를 다시 과거 지점으로 돌리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힘겨운 투쟁을 해봤으나 나는 백전백패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다 동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한번도 나는 이기지 못했다. 가끔은 내가 이기는 것 처럼 보이던 게임조차도, 언제나 마지막에 가서 뒤집기 한판으로 나의 완벽한 패배를 또 한번 증명시켜 줬다. 패배의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그 절망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해도 해도 안 되었다....... Give up!! 어느 날 나는 모든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 포기가 있었기에 여기에 올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지 몇일만에 선생님께서 “매일해라!”고 말씀하셨다. 쾅~하고 마음이 울리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나를 살려내기 시작했다. 나는 패배의 이유를 단번에 알아 버렸다. 이유를 몰라 죽음까지 생각하게 만든 나의 절망이 그 정체를 단번에 보인 것이다. 사탄은 정체를 들키고 나면 더 이상 우리를 이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탄은 자신을 위장하고 숨고 기만하여, 우리가 자신의 실체를 절대로 모르도록 모든 시도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로 몰랐었다. 그런데 ‘매일하라’고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사탄의 실체를 비추는 환한 빛이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한일이라고는, 이미 저질러버린 과거의 실수들을 반복하여 후회하는 것과 후회로 억울한 마음이 생기면 미래로 날아가서 내 실패보다 두세 배 쯤 높은 꿈의 탑을 만들어 세우며, 그렇게 나의 보석 같았을 하루하루를 ‘과거와 미래의 구슬치기’ 제물로 탕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로 유리구슬과 구슬치기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행위들이 반복되면서 나의 현재는 더욱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영광과 치욕의 씨실 날실을 교차시켜 가면서 인생이라는 직물을 만들어간다. 그들이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일에는 공통적으로 “매일의 집중”이 들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있었다. 매일의 행위가 정답임을 오래전에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실패의 쓰레기 같은 습관만이 몸에 익숙해져 버려 나의 가능성을 전부 다 죽여 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한 변화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고, 로또 복권 당첨도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나의 완전한 변화 그것이었다. 그건 기도로도 의지로도 안 되었다. 시간을 들인 습관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철같은 의지로 될 줄 알았고, 신의 은총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줄 알았다. 의지로도 은혜로도 되지 않음을 학습하면서 나는 더 절망했고 인생의 목표를 갖는 것은 허영이 되어 버렸다.
보통의 수학자가 평생에 한편 쓸까 말까한 논문을 1,475편 발표한 헝가리 출신 폴 에어디시를 책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곤 그의 재능을 질투하고 또 질투했지만 그가 날마다 19시간씩 수학을 생각하고 저술했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었다. 조셉 캠벨이 5년간 산속에서 책만을 읽었다는 것을 보면서 그를 부러워했지만, 그가 하루를 4등분으로 단위로 잘라 한 단위를 4시간씩 운영하며 그에게 주어진 시간 일분 일초를 아꼈다는 점은 슬쩍 모른척하고 하고 넘겨버렸다.
나의 이런 태도에는 ‘오랜 게으름’이 버티고 있다. 지금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땀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는 땀을 흘리는 노동보다, 생각만으로 그 노력을 안해도 되는 명분을 찾는데 재빨랐다, 나의 지성은 이유와 원인을 찾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고, 땀 대신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 결과로 나는 목적지에 빨리는 갔으나 엉뚱한 곳으로 잘 못 가고 있었고, 뭔가를 만들어 내긴 했으나.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목적지에 빨리 가는 것이 목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엉뚱한 장소에 제일착으로 가버려 되돌아오는 시간까지 소요되게 하여 늘 꼴지였다.
이제, 시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이제 한 가지씩 생각하기로 한다. ‘매일과 습관과 과정과 반복’만을 남기려고 한다. 나머지는 잡초로 여기고 뽑아내려 한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어제에도 내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오직 지금, 오늘, 현재, 여기만 내게 제공되었다고 생각하려고 계속 나를 가르친다.
그 ‘지금과 여기’가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과거란 <이미 없는>것이고 미래는 <아직 없는>것이다. 내가 <이미 가진>것은 지금 여기에 내가 있을 그때 뿐 임을 이제는 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생존 시간과 장소이어야 함을 이제 알았다. 나의 변화가 보이고 있다. 그 결과인가? 나는 더 이상 초조해 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후회도 되지 않고 있다. 놀라운 변화이다. 후회와 초조 대신 ‘뭔가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매일의 시간이 내게 주고 있는 전에 없던 습관이다. 내 인생에서 ‘게오르규의 25시’ 같은 시간은 이제 지나간 듯하다. 그와 함께 나의 불행도 지나가고 있다. 나는 현재에만 집중할 것이고 나는 생산할 것이다. 내가 놓쳤던 것들을 다시 되 찾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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