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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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산으로, 바다로, 심지어 하늘까지 싸돌아다니며 사냥질에 여념이 없던 그가, 돌아왔다. 사냥을 포기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꾸준히 지속될 전망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심각한 상황이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그때, 그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눈 튀어나오고 목 부러져서 잠이 들던 그 수많은 하얀 밤들. 하늘 두어 번 보고 별 두개 딴 이후, 그 별들만 들여다보며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아갈 꿈을 키웠더랬다.
사방팔방 온천지에 믿고 의지할 곳이라고는 나 자신밖에 없다는 믿음을 검은 머리카락이 하얘지도록 철석같이 심어놓고는 강산이 두 번째 변하려고 모습을 반쯤 바꾼 순간, 혜성처럼 짠하고 나타났다. 이제 와서 뭘 어쩌라고!
나의 그림에는 도무지 등장하지 않았던 그가, 지금껏 길들여진 나와 별 두개, 딱 셋만 있는 그림에 은근슬쩍 궁딩이를 디민 비상사태다. 나를 엄마로 착각까지 한다. 배가 고파서 젖을 찾듯 수시로 울어재낀다. 사방에서 공습경보 싸이렌이 마구 울린다.
모성본능이라는 기적의 무기는 별 두개 전용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10개월이라는 임신기간, 출산의 고통, 수유와 육아 등 지금까지 투자한 것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무리 몸이 지쳐도, 제아무리 누가 뭐래도 내팽개치지 못한다.
모든 걸 포기하고 매달리게 했던 엄마라는 이름의 모성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 기적의 무기는, 이미 종쳤다. 나와 그의 관계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그것도 셀 수 없을 만큼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서로를 선택했듯이 모든 관계는 선택이니까.
사냥꾼이 자연을 버리고 집구석으로 기어들어와 시작한 것이 전쟁놀이다. 상대는 바로 나. 그의 엄마가 아닌 나는 멋진 한판을 위해 선선히 칼을 맞대기로 한다. 그와 눈을 마주하다니, 실로 얼마만인가. 그래, 원한다면 상대해주마. 덤벼봐라. 어서.
나는 그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은 물론, 심지어는 토요일 일요일까지도 온종일 함께한 적이 없다. 기억의 모래밭을 아무리 파헤쳐 봐도 분명히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중년의 여자는 더 많이, 더 자주, 더 변덕스럽고 더 확실하게 변한다.
묘약을 지닌 변덕스런 호르몬은 한 가지 지혜를 선물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어깨에 지워진 운명 같은 모성본능을 가진 자의 배려라고나 할까. 나는 그에게 기꺼이 베풀려고 한다. 평일부부는 허하노라. 주말은 건들지 마라. 포기할 수 없는 내꺼 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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