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신진철
  • 조회 수 2434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5월 16일 08시 23분 등록

선물

 

1. 고무장갑

 

국민학교 다니는 삼남매가

주머니 쌈지 돈을 모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라스틱 카네이션을 두 개사고,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 점빵에서

물개표 빨간색 고무장갑을 샀다.

어머니 드린다고

 

식모처럼 사시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효도인줄 알았다.

 

2. 노란장미

 

예순하고도 셋

희끗한 파마머리 소녀를 생각하며

노란 장미 한 단 샀다.

카네이션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고급시런 부직포대신

횟푸대 누런 종이로

살아온 삶처럼만 포장해서

 

그렇게 변덕스럽지도 않으면서...

이별이 많아서일까

노란 장미만 고집한다.

 

3. 노란연필

 

노란연필 한 자루

싱싱해 보인다

늘 글을 쓰고 싶다던

그 바람대로

쓴 길 살아온

인생살이 써보라며

거친 속지 공책 한 권에

노란연필 하나

 

칼을 노래한

어느 글쟁이를 떠올려 보며

깎아 둔다

 

마음 훔친 죄가 미안해

살짝만 숨겨둔다

 

4. 호루라기

 

족쇄를 채운다

목걸이를 흉내 낸 악세사리

죄인도 아닌 죄인에게

급할 때 쓰라며

은장도 대신 너를 지켜줄지도 모른다고

이해도 못하는 딸에게

족쇄를 채운다

호루라기 부는 시늉을 해 보인다

재밌는 모양이다

갓 열 살된 딸은

 

5. 사랑한 죄

 

이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그저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네 몸같이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웬수를 사랑하고

모두 다 입을 맞춘 듯이

사랑하라고, 그렇게 살라고 써 있다

그러고서는

사랑한 죄를 묻는다

억울하지 아니한가

누가 죄인인가

 

6. 약은 약사에게

 

오거리 약국에 들러

약봉투하나 달라했더니

그냥 가져가란다

길다란 포스트 잇 뒷면에

하나씩 처방전을 쓴다

누구 생각나면, 꺼내 보고

화가 나면, 한 숨 돌리고

짜증나면, 웃어보고

힘들면, 잠깐 쉬라고

‘꽝’ 다음기회에도 있다.

둘둘 말면 딱이다.

투명한 유리병 상자에 담고, 마개도 한다.

라벨용지를 잘라 붙인다

‘조미를 위한 엔돌핀’

그리고 주의사항도 꼭 써 붙인다

‘과남용은 금물, 한 번에 한 개씩만’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친구에게’

 

7. 5월은 가장의 달 ?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냥 하고 싶었다.

5월 달도 주말마다 행사가 줄줄이어서

얘들 성화에 미안해들 할 것도 같고,

나같이 하숙집 드나들 듯 살 것도 같아서.

선배의 생일을 핑계 삼아

딸린 자식들 숫자대로

헌 책방에서 찾은 동화책 한 두 권씩하고

사무실 이면지 엮어 만든 허접한 공책 한권씩

때 지난 포스터로 싸 보냈다.

 

IP *.221.232.14

프로필 이미지
박상현
2010.05.17 14:15:16 *.236.3.241
옛날식으로 싼 책표지 - 왠지 막 떨리는 맛이 있더라~~

가정의 달에 가장은 간데 없고 산타 할아버지 출현이요 ^^
프로필 이미지
신진철
2010.05.21 00:30:32 *.186.58.25
산타는 무슨? 상현아, 우리 차카게 살자, 잉?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29 [사랑후愛] 투명인간 [4] 김미영 2010.05.16 2553
2928 스승의 날에 - 내가 만난 책과 스승 [2] 김나경 2010.05.16 2351
» 5월은 가장의 달? [2] 신진철 2010.05.16 2434
2926 [칼럼 11] 부처님 오신 날에 [1] 신진철 2010.05.16 2359
2925 [사랑후愛] 평일부부 [2] 김미영 2010.05.15 2392
2924 [오리날다] 나에겐 두 남자가 필요해 file [2] 김미영 2010.05.15 3040
2923 연필을 깎으면서 [4] 신진철 2010.05.14 2892
2922 책내는 일 [7] 이수 2010.05.14 2716
2921 딸기밭 사진 편지 30 / 스승의 날 file [4] 지금 2010.05.14 2534
2920 <바른생활 유부녀의 발찍한 상상> 2. 휴직 16일째 [4] 깨어있는마음 2010.05.14 2946
2919 칼럼따라하기-9<내속에 무엇이 있는가?>-밀린숙제5 [5] 청강경수기 2010.05.14 2301
2918 [펭귄잡다] 그저 내 여자니까 [2] (미운)오리쉐끼 2010.05.14 2616
2917 [사랑후愛] 사랑해 반대말 [2] 김미영 2010.05.13 3858
2916 [오리날다] 유치빤쓰 file [2] 김미영 2010.05.13 2700
2915 <바른생활 유부녀의 발찍한 상상> 1. 시가렛, 너는 자유의 연기? [2] 깨어있는마음 2010.05.13 2769
2914 워킹맘의 아이말 채집놀이(9)_약속 file [6] 동건친구 2010.05.12 2587
2913 마이 아프다. [3] 동건친구 2010.05.11 2270
2912 오프라인수업청강숙제1-<나의신화쓰기-소피와 '마르지 않는 만년필'> [8] 청강 경수기 2010.05.11 2899
2911 5-2칼럼 나의 신화쓰기 [3] 윤인희 2010.05.10 2980
2910 [칼럼10] 내 안의 신화 찾기 4 [4] 신진철 2010.05.10 2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