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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진철
  • 조회 수 2437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5월 16일 08시 23분 등록

선물

 

1. 고무장갑

 

국민학교 다니는 삼남매가

주머니 쌈지 돈을 모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플라스틱 카네이션을 두 개사고,

집으로 가는 골목 입구 점빵에서

물개표 빨간색 고무장갑을 샀다.

어머니 드린다고

 

식모처럼 사시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효도인줄 알았다.

 

2. 노란장미

 

예순하고도 셋

희끗한 파마머리 소녀를 생각하며

노란 장미 한 단 샀다.

카네이션보다는 나을 거 같아서

 

고급시런 부직포대신

횟푸대 누런 종이로

살아온 삶처럼만 포장해서

 

그렇게 변덕스럽지도 않으면서...

이별이 많아서일까

노란 장미만 고집한다.

 

3. 노란연필

 

노란연필 한 자루

싱싱해 보인다

늘 글을 쓰고 싶다던

그 바람대로

쓴 길 살아온

인생살이 써보라며

거친 속지 공책 한 권에

노란연필 하나

 

칼을 노래한

어느 글쟁이를 떠올려 보며

깎아 둔다

 

마음 훔친 죄가 미안해

살짝만 숨겨둔다

 

4. 호루라기

 

족쇄를 채운다

목걸이를 흉내 낸 악세사리

죄인도 아닌 죄인에게

급할 때 쓰라며

은장도 대신 너를 지켜줄지도 모른다고

이해도 못하는 딸에게

족쇄를 채운다

호루라기 부는 시늉을 해 보인다

재밌는 모양이다

갓 열 살된 딸은

 

5. 사랑한 죄

 

이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없다

그저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네 몸같이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웬수를 사랑하고

모두 다 입을 맞춘 듯이

사랑하라고, 그렇게 살라고 써 있다

그러고서는

사랑한 죄를 묻는다

억울하지 아니한가

누가 죄인인가

 

6. 약은 약사에게

 

오거리 약국에 들러

약봉투하나 달라했더니

그냥 가져가란다

길다란 포스트 잇 뒷면에

하나씩 처방전을 쓴다

누구 생각나면, 꺼내 보고

화가 나면, 한 숨 돌리고

짜증나면, 웃어보고

힘들면, 잠깐 쉬라고

‘꽝’ 다음기회에도 있다.

둘둘 말면 딱이다.

투명한 유리병 상자에 담고, 마개도 한다.

라벨용지를 잘라 붙인다

‘조미를 위한 엔돌핀’

그리고 주의사항도 꼭 써 붙인다

‘과남용은 금물, 한 번에 한 개씩만’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친구에게’

 

7. 5월은 가장의 달 ?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냥 하고 싶었다.

5월 달도 주말마다 행사가 줄줄이어서

얘들 성화에 미안해들 할 것도 같고,

나같이 하숙집 드나들 듯 살 것도 같아서.

선배의 생일을 핑계 삼아

딸린 자식들 숫자대로

헌 책방에서 찾은 동화책 한 두 권씩하고

사무실 이면지 엮어 만든 허접한 공책 한권씩

때 지난 포스터로 싸 보냈다.

 

IP *.221.2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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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2010.05.17 14:15:16 *.236.3.241
옛날식으로 싼 책표지 - 왠지 막 떨리는 맛이 있더라~~

가정의 달에 가장은 간데 없고 산타 할아버지 출현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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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5.21 00:30:32 *.186.58.25
산타는 무슨? 상현아, 우리 차카게 살자,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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