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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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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10시 53분 등록
 

장보기의 즐거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는 일을 “장보기”라고 한단다.

장가기라든가 장하기가 아니라 장“보기”인 까닭을 이젠 알겠다.

요즘은 거의 날마다 장보기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작은 동네에 꼭 그만한 작은 재래시장이 있다.

그 시장은 주로 연세드신 아주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꾸려가시는 작은 가게들로 이루어져있다. 야채가게가 서너개, 생선 가게 둘, 반찬가게 둘, 떡집이 둘, 과일가게 서넛 그리고 수퍼가 둘, 건어물가게... 대충 그려보니 그렇다.

나도 예전에는 대형마트를 2주에 한 번 정도 갔다. 그리고는 2주 동안 먹고, 쓸 것들을 사오는 것이다. 재작년부터 개인적인 이유로 마트를 가지 않게 되면서 한동안은 인터넷 쇼핑의 찬양자가 되었다. 대형쇼핑몰부터 시작해서 생협물품까지 무엇이든 클릭만 하면 집앞까지 배달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조합원인 생협에서 가까운 곳에 매장을 열게 되었다. 걸어서 갈 만한 곳에 생협이 생기니 좋은 점이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싸기도 하고, 일찍가지 않으면 물품이 다 떨어지는 경우도 제법 있다.

또 생협이 말하는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저항이 조금씩 생기기도 했다. 윤리적인 소비에 대한 내 생각은 우리동네 작은 시장에서 작은 소비를 꾸준히 하는 것이라는데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생협을 통해, 우리밀과 유정란과 현미를 구입하긴 하지만, 우리동네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시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후에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 새참을 날마다 준비해야하니 장보는 게 큰 일이다.

예전에 마트를 이용할 때나 인터넷, 생협을 이용할 때는 그 일이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면,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요즈음은 장보기가 큰 즐거움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함께 운영하시는 단골야채가게는 늘 손님으로 북적인다. 이웃 할머니들이 늘 놀러오시고 야채 다듬고.. 사랑방 수준이다. 이곳에서 사는 야채는 언제나 신선하고 맛있다. 100% 신뢰할 수 있다. 마트에 가면 일년 사시사철 늘 있는 야채들이 이곳에서는 제철에만 있다. 지난 겨울에는 생미역을 산더미처럼 가져와서 날마다 다 팔아치우셨고, 두어달 전에는 잔파가 제철이었고, 요즈음 가장 인기있는 품목은 알타리무다.

기장에서 그날 바로 캐온 알타리무를 오후에 갖고 오면 저녁나절이면 다 없어진다. 나도 그저께 알타리무김치를 담궜다^^

야채가게 맞은 편에는 생선가게가 있다. 잠깐 곁길로 새면, 하루는 딸아이와 생선가게 옆을 지나가는데 딸아이가 어디선가 '제사'지낼 때 나는 냄새가 난다는 거다. 아하~ 그건 생선가게에서 피워놓은 향냄새다 라고 말해주었다. 딸아이가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ㅋ 날마다 생선들이 죽어있으니 아주머니가 생선들 제사지낸다고 향을 피워놓았다는 ㅎㅎㅎㅎㅎ

초등학교 4학년 딸래미가 하는 소리가 참 ^^* 생선가게에서 파리 모기 오지 말라고 피워놓은 모기향이라고 말해주면서 우리 모녀는 둘이서 배를 잡고 소리내어 웃었다.

생선가게에 가면 아주머니께 생선 손질하는 법도 배우고, 요새는 뭘 해서 먹으면 맛있는지, 파전에는 뭘 넣으면 더 맛있는지도 배운다.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도 가득^^

과일가게가 여럿인데, 가는 곳마다 단골손님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과일을 사는 용도에 따라 가는 곳이 다르다. 비싸지만 언제나 맛있는 과일만 가져다 놓으시는 곳, 사과를 살 때는 꼭 가는 집, 근처 대학생들이 주 고객이라서 소량으로 사도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가게 뭐 대충 이렇게 말이다^^

떡집도 그렇다. 아이들 새참 덕에 떡도 많이 하는데 떡집들도 다 특징이 있다.

오며 가며 장구경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할머니들이 서로 어울려 지내시는 모습을 보면, 어울려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것 같다.  공동체라는 말의 뜻을 나는 지식으로 알고 있을 뿐 그 말속에 담긴 진의를 다 알지 못한다. 오히려 시장을 지나다가 인사를 나눠야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가끔 숨고 싶을 만큼 개인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니......

그래도 좋다. 그래서 일부러 날마다 장에 가서 장보기를 한다.

장보기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IP *.131.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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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11:15:00 *.148.134.54

재래시장 참 좋지요.
퇴근길에 들르는 골목시장..참 좋았는데...
지금 살고있는 곳은 신도시라, 마냥 인공적이기만 하지요.
오랜만에 엣날 추억도 떠오르고, 맛있는 글 잘 먹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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