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김미영
  • 조회 수 2081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0년 5월 23일 16시 19분 등록



5월 17일 월요일 오전,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전화기를 들었다. 텔레비전을 사랑하는 남편의 소원인 인터넷 TV로 서비스변경 신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화요일 오전에 설치기사 방문을 예약하고 서둘러 출근을 했다. 새로운 지역을 담당하게 되어 기존 선생님과 동행수업을 하기로 한 날이다. 한주를 시작하는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시작된 인수인계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와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채점을 하고 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책을 펼쳤지만 채 한 장을 읽지 못했다.


5월 18일 화요일 오전, 인터넷 TV 변경을 남편에게 맡기고 가볍게 출근을 했다. 설마 노트북에 문제를 만들진 않겠지, 괜한 잔소리한다고 할지 모르니까 알아서 하게 냅두자, 하고는 피곤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날에 이어 저녁도 못 먹고 분 단위로 뛰어다니며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큰아이는 TV 앞에서 리모컨을 휘두르며 신기해했다. 다양한 채널이 다채로웠다. 문득 노트북이 떠올랐다. 배고픈 것도 잊고 부팅을 했지만 인터넷이 끊겨있었다.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함께 내 정신은 살짝 맛이 가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수업 중인 남편과 통화를 하고, 인터넷 회사의 상담원과 통화를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내일 오전에 기사가 재방문하겠다는 상담원의 답변을 끝으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내 화는 상상을 초월할 속도로 진행 중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소주병이 보였다. 아니, 소주병만 보였다. 저녁 대신 흡수된 알코올은 남은 정신마저 조금씩 가져갔다. 나는 왜 남편이 내 노트북을 챙겨줄 거라고 믿었을까. 믿는 대신 말을 할 것을. 아침에 남편에게 생략한 그 한마디가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내가 미웠다.


5월 19일 수요일 오전, 출근을 미루고 노트북을 챙기기로 했다. 방문한 기사는 능숙한 솜씨로 처리해 주었다. 병주고 약주고 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했다. 문제는 기사가 돌아가고 난 뒤, 남편과 둘이 있을 때 발생했다. 남편은 내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물론 내가 노트북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낼 줄 몰랐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게 잘 해주려고,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프로그램인가를 깔아준다고 했다. 나도 불같이 화를 낸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알았다고 하고는 기다렸다. 나는 내가 또 미워졌다.


그 뒤로도 이틀 동안 노트북은 먹통이었다. 어제가 되어서야 겨우 제자리를 찾았지만 내 몸은, 정신은, 아직 아니다. 돌아볼수록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글은 고사하고 책도 안 읽혔다. 내 화가 삭지 않아 매순간 도를 닦아야만 했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주말밖에 시간이 없는데 그 주말이 이렇게 날아간 것에 대한, 고작 이 정도 상황에 휘둘린 내 꿈에 대한, 여전히 오종종한 나 자신에 대한 화다. 내공? 그런 거 없었다. 있다면 그건, 고작 노트북 앞에서나 가능한, 딱 노트북만한, 고만한 크기였다.


내일이면 또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다. 나는 또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주를 보낼 것이다. 주말에 약속된 나와의 시간을 꿈꾸며 내 어깨를 내리누르는 짐을 부리며 고단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주처럼 내 꿈마저 짐이 되는 날, 나는 무너질 것이다. 술에 취할 것이고 나를 놓아버릴 것이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 걸어갈 것이다. 그 길은, 아마도, 조금 다른 길일 것이다. 아닐까?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난 다시 그 길을 갈 테니까. 오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꿈은 암흑을 요구하는 어둠의 언어라고 했던가. 꿈이란 한 개를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몽매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곤고함을 견디게 하는 희망의 동의어라고도 했다. 어쩌면 꿈은 양파와 같이 껍질로만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알맹이는 없고 외피만으로 겹겹이 포장된 구적이 꿈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언제든,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꿈을 선택한다. 5월이 속절없이 가는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201022019726750.png


IP *.9.79.211

프로필 이미지
짐승
2010.05.25 16:32:30 *.48.252.253


짐성이 오리에게...

오리야, 너머 스팀 뿌머대지 말그라... 원래 짐승들은 있쟎니어...

집 나가면 때려 뿌시고 뭉개고, 집에 들어오면 코를 벌름거리다가 자빠뜨리고 올라탈줄이나 알지 뭐 딴거 있따냐... 그렇게 몇 십만년 살았디야... 그 짐승 머리가 얼마나 좋아야 우아한 몸매 아래 열나 바쁜 다리를 상상할 수가 있것는가... 기대하믄 실망만 큰겨여...

 

그 짐승 요즘 무지하게 힘들디야... 자빠뜨리기는커녕, 한 삐작에 어퍼져 있어도 오리발에 채인당께... 그 짐승 무척 슬프다잉... 찬찬히 바바... 꼬리내리고 눈 내려뜨고 비실대는거...

근께... 쫌 짠하지 않냐...

 

프로필 이미지
미영
2010.06.02 12:23:44 *.9.79.211
아녀요~ emoticon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