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강 경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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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할 때 비로소 글이 써지는가?
이번 주에 연구원 과제 12번째 책을 읽었다. 비로소 나도 한 개의 책에 일주일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11권은 평균 3일 정도의 시간 만에 해야 했었다. 어찌 달려온지 모르겠다. 일주에 한 세트도 어려워 보였는데, 밀린 숙제까지 일주일에 두 세트의 글을 올린다는 것은 내겐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였었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시작도 안했으리라. 그리고 절박하지 않았다면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뭐 뒤돌아볼 틈도, 앉아서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지난 6주를 달려온 것 같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내질렀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밀린 숙제를 다 끝냈던 날 비로소 나는 가픈 호흡을 여유있게 할 수 있었다.
한권에 일주일이 주어지면 두 배로 좋은 북 리뷰, 두 배로 더 깊은 칼럼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책은 꼼꼼히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글을 쓰기는 더 어려워졌다. 막막하다. 무슨 주제로 칼럼을 쓸지 시작도 안 되고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동안 급히 내지르던 때는 고민할 틈도 없었는데, 비로소 시간이 생기자 무슨 글을 써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절박하지 않으면 뱃속까지 내려가지지 않는가 보다. 대충 생각하니 대충 밖에 떠오르지 않는가?
하워드 가드너는 ‘열정과 기질’에서 특별난 창조성 발휘하여 자기 분야의 대가로 자리매김한 7명을 분석하며, 그들이 ‘파우스트적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창조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중요한 어떤 것을 기꺼이 내어놓는 악마와의 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거래의 결과로 그들의 예술과 학문이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거래가 종료되었을 땐 그저 그렇고 그런 생산물을 내놓거나, 아예 생산하지 못했다고 가드너는 말하고 있었다. 그 거래 관계가 평생 유지된 일부는 죽을 때까지 훌륭한 작품을 산출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거래가 다소 필요한가?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할 만큼 치명적인 위험요소는 아니더라도 우리에게도 어떤 ‘중요한 거래’가 필요한가? 그냥 기쁘기 위해 글을 쓸 수는 없는가? 우리도 글을 쓰기 위해 뭔가를 포기해야 하거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거나, 쉬지 않고 늘 깨어있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 각자가 뭔가를 내놓으려면..... 그리고 그것이 쓰레기나 배설물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분야에 연료나 거름이 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도 나름의 어떤 거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지금에 와서 보니, 6기 연구원들이 이미 치른 과제를 몰아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끌고 온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금, 그들과 똑 같은 시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유가 나를 망설이고 미적거리게 만들고 있다. 절박함이 사라졌고 불안함이 줄어들었기에 오히려 글이 안 나오고 있다.
‘수족관의 문어‘ 이야기가 생각난다.
물고기가 사는 수족관에 문어를 한 마리 넣어두면 그 문어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호시 탐탐 노린다. 따라서 물고기들은 그 문어에게 안 잡혀 먹으려고 계속 도망 다니고 결과적으로 물고기의 육질이 탄탄하고 싱싱하여 더 맛있는 횟감이 된다는 것이다. 그 문어를 없애면 물고기들은 쉽게 죽어 버리거나, 힘없이 시들시들 해져서 생선의 맛이 훨씬 없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학문을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평생을 두고 수족관의 문어와 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는 게 축복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서 나는 지금 파우스트적 거래까지는 안 되더라도 수족관의 문어와 같은 뭔가를 가지고 가야할 것 같다. 항상 깨어 있을 수 있게 만드는 어떤 절박함, 쉽게 손 놓고 쉴 수 없는 압도하는 두려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 이런 것 중 하나라도 있을 때, 우리도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존재를 갖지 못했기에 인생이 허비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도 ‘수족관의 문어’를 한 마리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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