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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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3]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개망초’라는 꽃이 있다. 흔히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논이며, 들판이며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눈에 밟히게 핀다.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라서 농사꾼들의 입에 ‘망할 놈의 풀’이어서 ‘개망초’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꽃의 이름과 관련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바로 유방과 항우가 나오는 장기판의 ‘초한전’이다. 전쟁이 장기간 오래 지속되자, 매번 전장에서 죽어 나가는 병사들을 충원하기 위해서 농사꾼들이 동원되었다. 그 시절 군대라고 해야, 일상적으로 조직되고 훈련된 직업군인보다는 평소에는 농사일을 하다가 전시에 동원되는 예비군들이 오히려 주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삽과 괭이를 녹여, 창과 검을 만들어 무장한 군사들. 그들은 시대가 만들어 낸 쌈꾼, 소위 영웅들을 뒤를 쫒아 전쟁터로 불려나간다. 그럼, 농사는 누가 짓고, 무엇으로 지을 것인가. 결국 많은 논과 밭들은 방치되고, 그나마 노인과 여인네들의 힘으로 얻어진 수확도 군량미로 차출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당연히 굶주린다. 제대로 먹지 못한 민초들의 일상에 전염병은 치명적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노인과 아이들은 굶주리거나 병에 걸려 죽는다. 전방과 후방이 따로 없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는가의 문제만 남게 된다.
처음 시작은 명분과 이데올로기가 선동을 한다. 거창한 민족의식이나 담대한 꿈 때로는 신의 부르심이 그들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사람들을 자극시킬 적당한 희생양과 영웅이 필요하게 된다. 정치와 언론이 바빠진다. 영웅은 만들어진다. 수많은 역사의 장면 속에 절대 빠지지 않는 영웅들이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제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이어진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에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고, 감동도 받는다. 자발적으로 입대를 하기도 하고, 금붙이를 모아내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칭찬들이 쏟아진다. 아울러 자발적인 희생들이 이어진다. 하나가 된다. 싸워야 할 대상 보다 더 강해야 하기 때문에 더 큰 하나가 된다.
한 번씩 승전보가 날아든다. 이미 여러 차례 패배도 했고, 우리 쪽의 희생도 있지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열기를 식히면 안 된다. 순간을 놓치면 이성의 목소리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며, 그것은 분열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끝장이다. 최소한 상대가 나가떨어질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소위 ‘한’이 깊을수록, 당한 상처나 분노가 깊을수록 오래 버틸 수 있다. 물론 리더들의 술책과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 무기의 질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 해도 끝나게 되어 있다. 전쟁은. 그게 법칙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지쳐가지만, 먼저 끝내자고 말할 수 없다.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계산을 하게 된다. 주변 국가들과 국민들의 반응, 차라리 때로는 ‘울고 싶을 때, 뺨을 때려주는 이가 고맙기도 할 것’이다. 못 이기는 척, 회담장에 나간다. 종전을 선언한다. 이렇게 전쟁은 끝이 난다. 물론 일방의 힘의 차이가 클 경우, 주변의 도움 없이 상대를 제압하고, 깃발을 꽂고 선언을 하기도 하지만, 끈질긴 저항 앞에서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아니 실익이 없다. 철수를 하게 된다. 그냥은 안한다. 한껏 생색을 낸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 때론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관없다. 목소리 큰 놈이 이겼다고 우길 수도 있게 마련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누가 살고, 누가 죽었는지의 문제가 아니던가? 아니면, 최소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는 따져 봐야할 일이다.
가끔 ‘환향녀’라고 불리 우는 여인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정말이지 오고 싶었을 것이다. 약한 조국의 조공이 되어, 대국에 불려가 몸과 마음을 다 유린당하고서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고향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작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었다. 조국에게도 부담이 되었다. 누구의 잘못인가. 이 억울한 인생들을 정하신 것은 누구란 말인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억울해서 죽을 수도 없는 삶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나 먼 과거의 역사책 속에서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20년전, 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이 있었다. 화려한 민족주의의 기치 앞에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을 당해야 했다. 원치 않던 임신과 출산을 해야 했다. 아비가 누군지를 묻는 딸에게, 어미는 눈물만 보인다. 한 없이 사랑해야 할 자식이 자기를 욕보인 웬수의 씨앗이라니. 지옥 같은 현실이지만, 죽지도 죽이지도 못한다.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정말 전쟁이 끝났는가. 그렇다면 묻고 싶다. 누가 이겼는가. 진짜로 이겼는가.
얼마 전 배 한 척이 서해바다에서 침몰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시위를 한다. 슬슬 부화를 돋구고 있다. 계산 빠른 이는 라면과 생수부터 사놓자고도 한다.
아니, 총성대신 시끄러운 확성기가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더 많은 이들이 패자가 될 것이다.
정말이지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또 다시 여름이다. 초나라는 망할 것이다. ‘개놈의 망할 풀’이 논밭에 그득하니, 저 풀이 초나라를 망쳐 먹고 말 것이다. 개.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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