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2010년 5월 31일 11시 31분 등록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난중일기 중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었다. 이순신의 글을 보며  많이 놀랐다. 그 동안 알고 있던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약점이 곳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약점은 나의 약점과 많이 흡사하여 일기를 읽는 중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순신은 일기의 곳곳에서 원균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는데, 심하게는 원균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단어들 까지 상당히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난중일기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원공이 술을 마시자고 하여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악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함부로 지껄였다, 매우 해괴하였다.............. 원수사가 왔다. 음흉하고 속이는 말을 많이 했다”  이순신의 이런 표현에 많이 웃었다.


원균에게 정말 그런 면이 많았을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읽은 책들에서 원균은 간신 이었다. 해서 그가 그런 대우를 받을 마땅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관심 있게 본 것은 이순신의 태도이다,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 표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원균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무장이었고, 전쟁 중이었으므로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고, 이것이 같은 편 내에서 조차 적용될 수 있었으리라 이해는 된다. 또한 왜보다 전력이 취약했던 수군의 총책임자로서 그가 얼마나 근심이 많았을지도 짐작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술 취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수사 원균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을지도 역시 알 수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혹시 이순신이 일기에 쓴 표현을 표정이나 말투로 원균 앞에서 내색을 하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되었다. 

 이순신이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고, 남이 거짓말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청렴한 무장이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단서들을 난중일기 중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단서들로 볼 때 이순신이 원균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어쩌면 대놓고 호통을 쳤을 수도 있다. 이런 면은 장수로서의 통솔력에는 큰 장점으로 작용했겠지만, 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오히려 이순신을 다치게 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원균을 마음속으로 상당히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지 못해 자주 표현했다고 하자. 원균은 이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고, 원한을 품었을 것이다. 또한 7년에 걸쳐 작성된 일기의 여러 곳에서 원균에 대한 무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둘이 관계는 오래 지속되었고, 이순신의 무시 역시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원균의 원한 역시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것이라는 유추를 할 수 있다. 급기야 원균은 이순신을 무너뜨릴 틈을 호시 탐탐 노렸을 것이고, 적당한 때를 만나 그를 모함하여 백의종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일기 중에 “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었다.

이 문장으로 보아 이순신은 상당히 무섭고 엄하며, 원리원칙대로 하고 청렴한 장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나는 이순신이 모함을 받은 이유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군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인간으로서 용서를 하지 않는 성품은 자신과 주변을 불행하게 만들 소지가 크다. 이순신의 눈에 들지 않은 군졸과 장수들은 이순신으로부터 많은 질책을 자주 받았을 것이고 불행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순신이 원균을 ‘포용’할 수 있고, 명령을 어긴 부하를 ‘용서’할 수 있는 성품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여기서의 포용은 중용하고는 조금 다르다. 포용은 무기력이나 무저항의 결과로 나타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다. 타인의 잘못 뿐만 아니라, 타인이 나와 다르다는 점 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문제의 해결에 집중하는 능력이다.

이순신에게 원균을 ‘포용’하는 힘이 있었더라면 적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당시 원균이 한 행동 중에는 적에게 나라를 팔아먹는 수준까지 있었으므로 이순신의 태도는 당연했을 테지만 혹시 그의 용서하지 못함이 원균을 더 자극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순신의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이순신의 처신은 과연 훌륭했는가?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맞는 일일까? 자신의 시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허용을 해야 하지 않는가? 용서할 줄 모르는 우리가 타인과 화평하고, 편안해지기 위해선 자신의 시각을 포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워드 가드너는 ‘Creating Minds’에서 7명의 창조적이었던 사색가를 분석했다. 그리고 간디와 나머지 6명과의 차별되는 점을 발견했고, 그 차이점을 기반으로 리더쉽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가드너는 뛰어난 지도자 11명을 선택해 그들의 특징을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통찰과 포용’이 있었다고 ‘Leading Minds’에서 말하고 있다. 역사를 꿰뚫어 보는 통찰과 대적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의 힘이 특출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이순신의 청렴함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거북선을 만들어 낼만큼 과학적인 사고와 실용화가 가능했던 사람이었다. 또한 십 여척의 배로 열배가 넘는 왜선 130여척을 파괴할 만큼 용맹과 통솔력과 병법에 기반한 지략 역시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조금 만 더 포용할 수 있었다면, 조금 만 더 자기의 감정을 숨길 수 있었다면, 조정 내에서 받은 수차례의 모함과 백의종군을 피해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가 54세에 전사한 것은 우리 역사에서 정말 아까운 일이다, 해서 그가 조금만이라도 포용을 더 할 수 있었더라면 노량에서의 전사하는 억울하고 통분스러운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억측까지 해본다. 이순신의 태도에서 무슨 역사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서울에서의 한 나비의 날개 짓이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LA에 태풍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라는 ‘나비효과’처럼 역사 속에서 내가 취한 하나의 행동, 내가 택한 하나의 태도가 10년, 20년 후에 나의 미래에 지대한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그런 교훈 한두 개 쯤은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서양철학사’를 읽던 중 그리스 격언에 “어떤 일도 너무 지나치지 않게 하라“라는 말을 본적이 있다. 이 말은 너무 자주 듣고 배운 말이라 충격은 고사하고 조금의 자극도 안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가 물으면 대답이 어떨까? 다행히 이 말을 잘 실천할 수 있게끔 유전자속에 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죽을 때까지 절대 할 수 없는 자들도 또한 존재한다. 내 경우가 그렇다. 지나치지 않게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 지나치지 않음은 중용에 가깝다. 중용도 어려운데 포용이 될 수 있는가? 포용이 될 때 용서가 되는 것이다.

중용과 포용의 차이를 보기 위해 데이비드 호킨스의 주장을 살펴보자. 미국 정신과 의사  호킨스는 인간의 의식 수준을 무기력부터 깨달음까지 20에서 1000까지의 대수 수치로 표현하고 있다. 수치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그가 등급을 매긴 순서만큼은 많은 선각자들이 깨닫고 가르치는 것과 흡사하다. 그는 인간의 의식수준 중 중용을 250의 대수 수준이라고 하였다. 포용은 그 보다 높은 350의 값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대수적 의미이므로 중용과 포용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중용에서 포용까지 가는 것에 평생이 걸릴 수 있는데,  중용조차 어려운 나는 어찌할 것인가?


오늘 나는 용서의 문제를 다시 돌아본다. 이순신조차 하지 못했던 용서를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나 자신과 주변을 화평하게 할 수 있을 ‘용서와 포용’을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을까?  이것이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질문한 나의 난제이다. 그리고 그 길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 또한 이순신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IP *.145.204.123

프로필 이미지
박상현
2010.05.31 13:10:27 *.236.3.241
포용의 키워드로 이순신을 바라본 관점- 신선하고 재미났습니다ㅎㅎ

컬럼을 읽고 보니 포용은 인간 이순신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한 주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청강 경
2010.06.01 08:54:31 *.145.204.123
상현님
저 역시 '포용과 용서' 가장 어렵습니다
제가 가장 약하기 대문에 이순신에게서 그면을 보았겠지요
감사~~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10.06.01 05:58:17 *.50.254.81
중용과 포용이라...
갑자기
용서와 용납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용서는 되는데 용납이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 차이는 중요과 포용만큼일까요...?

프로필 이미지
청강 경
2010.06.01 08:58:33 *.145.204.123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용서와 용납'로 대조되는게 맞을 듯합니다
중용과 포용, 용납과 용서...
저의 경우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너그로워지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검으로 꼭꼭 질러서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69 이 대목에서 이 방이 생각났습니다 [2] [2] 지금 2010.06.09 2463
2968 십년 만에 함께 한 저녁 식사 file [9] 승완 2010.06.09 2639
2967 딸기밭 사진편지 38 / 어느 아침 file [2] 지금 2010.06.09 2596
2966 [바른생활 유부녀의 발찍한 상상 3]사랑한다는 것 [2] 깨어있는마음 2010.06.08 3740
2965 [칼럼 14] 불편한 진실-연행 [3] [1] 신진철 2010.06.07 2396
2964 나비의 하루 file [9] 윤태희 2010.06.07 2420
2963 칼럼따라하기14<지난주 내가 버린 것 두 가지> [13] 청강 경수기 2010.06.07 2648
2962 첫 만남 - 논어가 내게로 왔다 [2] [2] 김나경 2010.06.07 2952
2961 딸기밭 사진편지 37 / 지금 file [2] 지금 2010.06.07 2440
2960 6-2칼럼 나이가 경쟁력, 사골곰탕처럼 푹 고와야 진국이... [2] 윤인희 2010.06.06 2662
2959 [오리날다] 내 여자의 남자 file [4] 김미영 2010.06.06 3423
2958 '마려움'과 '고품' [3] 써니 2010.06.05 2336
2957 [오리날다] 나의 행복은 너의 불행 file [2] 김미영 2010.06.05 2492
2956 딸기밭 사진편지 36 / 위로 file [2] 지금 2010.06.04 2415
2955 정서적 허기 / 하지현 [4] 지금 2010.06.04 3273
2954 20주년 결혼 기념일 [1] 지금 2010.06.03 5444
2953 딸기밭 사진편지 35 / 사이 file [1] 지금 2010.06.02 2951
2952 비오는 화요일 아침 [3] 신진철 2010.06.02 2415
2951 [오리날다] 미친년 file [13] 김미영 2010.06.02 2572
» 칼럼따라하기-13<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4] 청강 경수기 2010.05.31 2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