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살다

여러분이

  • 신진철
  • 조회 수 2082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0년 6월 7일 11시 38분 등록

[칼럼 14] 불편한 진실 - ‘연행’

 

그날 아침 어머니 꿈자리가 심상치 않았던 모양이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꼭 나가야 하냐’고 물으신다.

“당연하지요. 사람들과 약속을 했는데요.”

평소에 안하시던 말씀을 다 하신다 싶어, 별일이다 싶었다. 그렇게 나선 걸음이 저녁나절 유치장 면회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1990년 9월, 전동성당에서 ‘민중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하반기 학생회 선거준비와 조직개편 그리고 겨울방학기간 동안 학습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1박2일의 간부MT에 참석해야 했기에 잠깐 집회장에 들렀다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모 단과대학의 예비역 선배 하나가 뜬금없이 시위에 쓸 ‘쇠파이프’를 나에게 맡기는 것이었다.

‘어.. 안되는데’

(당시 공개사업이 아닌 조직사업을 하는 간부 활동가들은 집회장이나 시위현장에서 드러나는 일에 매우 조심해야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선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어떻게 판단해야할 틈도 없이 상황이 진행되었다. 자칫 겁쟁이로 보이는 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기도 했다.

‘에이... 별일 없겠지 뭐’라고 생각하며, 닫히려는 버스 문을 재촉하여 신문지로 돌돌 말은 5-6개의 쇠파이프를 짊어지고 내렸다. 버스가 지나가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선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사자와 사슴이 그럴까? 아무리 사복을 하고 있었지만, ‘운동권’과 ‘짭새’들은 서로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아 챌 수 있다. 약 10여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각자 딴 짓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나는 그들의 표적이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계산을 했다. 성당 앞 정문까지 약 30미터 정도, 무장한 농민 시위대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거기까지 뛰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 버스에서 함께 내린 동료들이 있으니까... 곧 신호가 바뀔 조짐이었다. 옆에다 귓속말처럼 빠르게 속삭였다.

“야, 재호랑 창관이, 형 옆에 바짝 붙어, 신호 바뀌면 성당까지 뛴다. 알았지?”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자말자,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시간이 흘렀다. 2시 방향, 성당으로 진입하려는 우리들과 그 앞을 차단하고, 낚아채려는 사복 경찰들 간의 몸싸움이 붙었다. ‘징’이 날라 가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갔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챈 농민들이 쫓아 왔지만, 훈련된 사복경찰들의 날랜 솜씨를 따라잡지 못했다. 뒤에서 허리춤을 잡힌 나는 발버둥을 쳤지만, 저항한번 제대로 못하고서 현행범으로 연행되고 말았다. 검정색 짚차의 문이 열리고, 잠시 버텨도 봤지만, 이내 팔다리가 접힌 채 차안으로 짓이겨져 쳐 박히고 말았다.

 

경찰서 지하 유치장에는 나 말고도 이미 그날의 시위와 관련해서 연행된 몇 사람이 더 있었다. 소지품을 다 꺼내 놓고, 허리띠마저 풀었다. 그야말로 무장해제가 되었다. 사진도 찍혔다. 증거물로 압수된 쇠파이프 몇 개를 들고서... 안경을 잃어버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이미 여기저기 발자국에, 바지도 찢어져 있었다. 영락없는 폭력배였다.

‘아! 이래서 가끔 연행된 선배들 사진이 흉학범들처럼 신문에 나는구나’

하지만, 정작 나의 고민은 다른 데 있었다. 바지 뒷주머니의 접어 둔 문서 한 장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다. 학교를 나서기 직전까지 그리던 ‘조직개편’에 대한 초벌 그림이었다. 급하게 나오면서 뒷주머니에 접어 넣었던 것이다. 그것이 넘어가면, 문제는 달라졌다. 단순한 폭력사범으로 몇 개월 살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맞추기 위한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족히 20여명은 될 것이다. ‘학원반’이나 ‘정보과’로 수사가 넘겨질 가능성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고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녁에 어머니가 다녀가셨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아들의 모습을 보시는 어머니는 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셨다.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금방 나가게 될 것’이라고 허세를 부렸다. 한 10분쯤 지나서야 어머니는 말을 이을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를 만져 보시더니 ‘밥을 어찌 했냐’고 물으셨다. 유치장에서 제공되는 ‘관식’을 먹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빨갛다 못해 검은 빛깔이 나는 보리밥에 시커먼 고추장아찌에서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더구나 온통 문서처리에 팔려 있던 나는 도저히 밥 먹을 정신이 아니었다. 건성으로 ‘많이 먹었다’고 답했다. 빨리 보내드리는 것이 나을 거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후배들이 집에 다녀갔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이것저것 보던 책들이랑 몇 가지들을 정신없이 챙겨가지고 갔다고 했다. 연행된 동료에 대한 보호차원에서 이루어 진 조치였다. 문제가 될 법한 책이나 물건들을 경찰보다 앞서 치워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가 연행되었다. 간혹 경찰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그날 ‘민중대회’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울러 내 운명이 어떻게 될 거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구속은 피할 수 없고, 기본 6개월 정도, 괜찮으면 집행유예로 좀 일찍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의 상황이었다. (그 문제는 어찌어찌해서 처리하였다)

 

그렇게 하루 밤이 지났다. 다음 날 오전에 본부 학생과에서 다녀갔다. 약간의 의례적인 질문들을 묻고는, 점심에는 사식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더니, ‘피식’ 웃는다.

“‘관식’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 자네들 뒷바라지가 벌써 5년째야.”

괜한 호기 부리려다가 들킨 것 같았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지금 경찰하고 ‘쇼부’보고 있어서”

“쇼부요?”

“응, 전경 두 명이 농민들한테 잡혔어, 지금 포로교환하자고 그러고 있어”

 

3일째 되는 날, 아침. 나는 훈방조치 되었다. 너무 간단했다. 경찰서를 걸어 나오는데 아무도 잡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하긴 했지만, 일단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해서, 다시 내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 나올 것만 같았다.

 

후다닥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전북대로 가 주세요. 빨리요.”

IP *.1.206.202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6.08 23:36:37 *.34.224.87
^*^
프로필 이미지
신진철
2010.06.10 18:17:18 *.154.57.140
우성이 형 코에 꽃이 폈던가? 아님, 누구한테 맞았데?
편의상 칼럼 14를 [불편하게 살기 11]로 갈음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buyixiaozi98
2010.09.26 17:01:18 *.79.83.70
Eine gravierte Anhänger geschätzt wird. Wenn thomas sabo online shop deutschland Sie besonders gewagt werden, haben ein Handwerker anfertigen ein Stück: Wählen Sie Steine oder Edelsteine, die zur Erinnerung thomas sabo charm club anhänger an ihren Augen, wählen Sie einen Charme, etwas Sinnvolles aus Ihrer Vergangenheit symbolisiert zusammen, oder gib ihr einen angebote thomas sabo anhänger herzförmigen Halskette, um Ihre Liebe und Hingabe zum Ausdruck . Wenn Sie Zeit im Voraus haben, darauf achten, was sie will. Lässig thomas sabo charm durch den Juwelier zu gehen und sehen, was sie ist gezeichnet. Play it cool und sie werden begeistert sein und sabo charms überrascht, wenn Sie ihr Geschenk mit genau was sie will.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79 [66] 허접스런 미물들의 아우성 [9] 써니 2008.01.22 2076
1978 딸기밭 사진편지 73 / 여름이야기 file 지금 2010.08.13 2076
1977 [0011]마지막 한 순간까지 - 용혜원 [3] 햇빛처럼 2011.01.02 2076
1976 [영원의 시 한편] 세 송이의 꽃 정야 2014.11.18 2076
1975 [오리날다] 도대체 책은 왜 읽는데? file [4] 김미영 2010.02.27 2078
1974 컬럼 4. 내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가?(무의식에 대한 고찰) [6] 박상현 2010.03.08 2078
1973 [버스안 시 한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야 2014.08.26 2080
1972 [오리날다] 내공? 그런 거 없다! file [2] 김미영 2010.05.23 2081
1971 마주 앉은 거리만큼 일 때가 행복입니다 file 지금 2010.05.26 2081
1970 매일쓰기53 : 단군의 후예 2기 프로젝트 출사표 인희 2010.09.05 2081
1969 오뜨길 [1] 이선이 2004.08.03 2082
1968 <변화학 칼럼 21> 슬럼프에서 벗어나는 법 [3] [1] 문요한 2005.09.08 2082
1967 눈물나는 꿈 [4] 오병곤 2006.05.25 2082
1966 딸기밭 사진편지 24 / 4월 안부 file [1] 지금 2010.04.22 2082
1965 딸기밭 사진편지 25 / 사랑법 file 지금 2010.04.24 2083
» [칼럼 14] 불편한 진실-연행 [3] [1] 신진철 2010.06.07 2082
1963 딸기밭 편지 6 / 설날 인사드립니다 file [1] 지금 2010.02.12 2084
1962 매일쓰기57 : 진정한 배려를 위한 전략적 접근 인희 2010.09.09 2084
1961 3월의 눈은 기적을 부른다... [2] 신진철 2010.03.10 2085
1960 매일쓰기30 : 교차로 무단진입차량 운전자 의식 개선(안) 인희 2010.08.13 2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