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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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서 나태해졌는지, 나태해서 힘들어졌는지, 둘 다인지, 아무튼, 갑자기, 별안간, 느닷없이, 황당하게, 빼도박도 못하고, 홀연, 잔혹할 정도로 지루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변함없고 저렴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지프스는 그나마 바위가 하나밖에 없었지, 이건 셀 수도 없는 바위를 저글링 볼 굴리듯이 받아내느라 손을 뗄 수조차 없었다. 너무도 사소하고 너무도 일상적인, 무시하기엔 부끄럽고 안타까워 감히 어쩌지 못하는, 게다가 그것조차 서투른, 그 언젠가의 낯설기만 했던, 작기만 한 내 기억속의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바로 내가!
기억도 힘이고 능력이던가. 나는 다시 뭔가를 기억해야만 했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 짓이 대개는 제 무덤 파는 짓이었던가. 맞다. 삶에 대한 욕망이 삶에 대한 복수로 돌변했던가. 그것도 맞다. 돈이나 가족 나부랭이에게 쉽게 내 자리를 내어주기 때문이던가. 오! 마이 갓, 빙고! 살기 위해 가지려 했지만 실제로는 그걸 얻기 위해 내 삶을 야금야금 내어줬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런 젠장! 더 늦기 전에 나는 다시 뭔가를 되찾아야만 했다. 내 삶의 자리를 꿰찬 이런저런 허깨비들로부터 되찾아야만 하는, 소중한 그 이름은 바로 나!
나이를 먹는다는 건, 더 성숙해지고, 더 관록을 갖추게 되고, 더 용의주도해지고, 더 샤프해지고, 더 탄력적인 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바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를 먹고 싶었다. 좋다. 내가 원하던 게 드디어 생각났다. 그러려면 정리가 필요하다. 자, 그러면 이 시점에서 정리 들어가 보자. 나이는 누가 먹나? 내가 먹는다. 나는 누구인가? 가족인가? 아니다. 나는 그냥 나다. 가족이 아닌 나 자신이란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절대로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아니, 그런데, 왜, 나는 이걸 정리해야하고, 정리하면서 찜찜해야하고 께름칙하고 뒤가 구린가 말이다. 내가 내 나이 먹으면서 나 자신을 잘 관리하고 싶다는데, 내가 날 잘 돌보고 싶다는데, 내가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는데, 왜 이런 걸 스스로에게 이기적인 일이 아니라고 강조를 하고 다짐을 하고 확인을 해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왜! 게다가 내가 먼저여야 가족도 있을 수 있다는 후렴은 또 뭐란 말인가. 어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요상하고 야릇한 생의 한가운데에 와 있단 말인가. 그 이름도 너무나 소중하다는 바로바로 내가!
돌아보니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하다. 난데없는 내 화가 우주까지 치솟아서 하도 낑낑거렸더니, 아니 얼마나 낑낑댔으면 그놈의 치질이 다시 도졌나 말이다. 진짜 더럽고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 술을 마셨다. 아, 나도 안다. 술이랑 치질이랑은 친하지 않다는 거. 그래서 그랬나? 마실수록 술이 깼다. 이 아까운 느낌은 정말이지 치사하기 짝이 없다. 간단한 인수분해라도 무리 없이 풀 수 있는 상태에서 조금 더 마셔보았다. 이번엔 근의 공식마저 튀어나온다. X는 2a분에 마이너스b 플러스마이너스 루트 b제곱 마이너스 4ac. 이런, 제기랄!
똑바로 앉지도 못해서 무릎 꿇고 안절부절 못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나는 대체 뭐람?
그것도 모르다니. 쯧쯧. 바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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