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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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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0일 02시 24분 등록



한동안 오리가 날지 않았어요. 멀찍이 비켜서서 웅크리고는 한참을 머뭇거렸지요. 내가 뭘 하려고 했었지? 뭘 하다 말았지? 왜 그랬지? 멀뚱멀뚱 답도 못할 질문을 가끔씩 던져가며 서성였어요. 글을 쓰고 싶단 거야? 어떤 내용? 어떤 주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누구에게? 계속되는 질문에 지친 나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어요.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오래 전 어느 날의 내가 떠올랐어요. 그때의 내가 원한 건 아빠의 칭찬이었어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거죠. 맏딸로서, 첫정을 지속하고픈, 첫사랑을 소유하고픈, 욕심이었죠.


그건 어차피 채워질 수 없는 거였어요. 그걸 알기까지는 시간이 엄청 걸렸지요. 강산이 서너 번쯤 변했거든요. 그리고 그때쯤 함께 알게 된 게 있었어요. 남편에게도 꼬맹이 때와 비슷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더군요. 끊임없이 나를 사랑하길 바라고 원했던 거죠. 어린 시절의 아빠처럼 남편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어요. 그가 전하는 사랑이 내겐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죠. 내 기대가 꽤 높았던 거였어요. 내 속에선 아빠도 남편도 인정하지 않은 거였어요. 그리고는 또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댔지요.


내가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바로 그거였어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아실현이라고 여겼지요. 그래서 찾았냐구요? 네, 찾은 줄 알았어요. 그는 내가 지금껏 만난 그 누구보다도 멋진 남자였거든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이미 살고 있었어요. 샘이 나고 부럽고 따라하고 싶었지요. 그의 목소리로 내 이름이 불리길 간절히 원하고 또 원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간절한 꿈은 언제나처럼 늘 이루어지더군요.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꿈이었어요. 내 꿈이 그저 그런 껍데기였다는 거, 바로 그거였어요.


내가 원하고 바라는 건, 40년이 넘도록 언제나 변함없이, 누군가의 인정이었던 거죠. 왜 그걸 그리도 목말라하고 애타게 찾았던 걸까요. 나는 왜 내 존재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늘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걸까요. 아마도 그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그랬을 거예요. 부족하고 모자라단 지나친 겸손과 헛갈렸는지도 모르지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다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겠지요. 오만한 욕심이었을까요. 아무튼 더 이상 오리가 날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단 얘기가 이토록 길어졌네요. 또 제자리걸음!!


결혼이란 게 내게 알려준 건, 그건 또 다른 시작이란 거였어요. 마찬가지로 연구원도 그랬지요. 그 언젠가의 내가 선택한 그 이름들을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해요. 내가 알게 된 건 늘 그거예요, 내가 모른다는 거요. 그리고 이제야 조금이나마 인정하게 된 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과 구체적인 꿈이 없다는 정도예요. 아, 또 있어요. 여전히 욕심쟁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내가,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나름 뒤뚱거리는, 그럼에도 언젠가는 날기를 꿈꾸는, 여전히 욕심을 간직한, 바보 같은 내가, 살짝 좋아지기 시작했단 거예요.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고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을 보면 마지막까지 남은 한 명의 도전자가 답을 적는 작은 칠판에 “미안해”라고 적을 때가 있어요. 물론 정답이 아니지요. ‘도전! 골든벨’에서 ‘미안해’하는 도전자를 지켜본 이들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연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래요. 나는 그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거든요. 나는 내게 ‘미안해’라고 말하는데 내 안의 나는 ‘괜찮아’라고 답하네요. 다 괜찮다고, 천만번 괜찮다고. 그러니 또 그냥 살면 된다고.


나침반이 남북을 가리키며 끊임없이 흔들리듯 일정한 방향과 목표를 지니는 한 떨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물론 지금의 나는 목표한 방향이, 어쩌면 목표 자체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하긴 하지만 뭔가 있기는 하니까, 아니 그랬으면 싶으니까, 나는 지금의 내 뒤뚱거림이 사랑스러워요. 한 글자만 바꿀게요. 자랑스러워요. 아마도 나는 ‘꿈꾸기’가 꿈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의 이 흔들림이, 이 휘청거림이, 이 뒤뚱거림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아요. 오히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요. 아, 점점 뻔뻔해지는 건가요?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씨앗으로 살아간다. 씨앗으로 남아 있을 때 안전하다고, 편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씨앗은 쉽게 상처받지 않지만, 일단 싹이 트면 공격받거나 훼손되기 쉬우며 급기야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씨앗으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은 길 위의 조약돌만큼 생명력이 없다. 새가 광활하고 위험한,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씨앗의 운명은 씨앗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억하라. 삶은 본래 위험하고 불안하다. 그것이 본성이다.”

-오쇼 라즈니쉬, 『The Alchemy of Y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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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24.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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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10.07.10 12:21:20 *.131.41.34
씨앗의 운명은 씨앗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글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미밥을 먹는데 쌀알 몇 개를 흘려 두었더니
거기서 가느다란 뿌리가 나왔더군요.
아~ 네가 살아있었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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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7.15 13:33:18 *.124.150.202
예쁜 나경님~
고마운 답글, 감사해요.
언젠가 마주보며 인사 나눌 날이 있겠지요.
어머! 안녕하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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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11 07:56:51 *.131.127.50

" 뒤뚱거려도 눈 부시다!!"
너,  사랑스런 오리! ^^
이렇게 쓰면 문제가 될까?...

고치자
자네 알랑가 모르것네..
뛰똥거려도 눈부시다는 거말이시
오메,, 요거 요거 이쁜오리...

이래도 안 돼나?
그러면

흠...
정말 뒤뚱거려도 눈이부시다
예쁘고 귀여운 오리같은 미영이...

ㅎㅎㅎ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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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2010.07.15 13:35:00 *.124.150.202
ㅎㅎㅎ ㅎㅎ
'오.빠.야.~'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어요.
왜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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