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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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날씨도 무더운 한여름 복달임에 청천 날벼락도 유분수지, 대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언제고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기어이 얼굴 한 번 안 보여준 채로 속절없이 어딜 그리 황망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시는 겐가...
그 사내 참 싹싹도 했지.
정감 넘치고 의리 있으며 깡다구 넘쳤지...
졸업 후 각자의 길에 들어서 가끔씩 안부 전화는 나누었지만, 언젠가부터 서로의 소식 다른 이들을 통해 그저 멀리서만 들으며 잘 살아가겠거니 무심했고 정작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하였는데, 보고 싶다 생각하며 안부 묻고자 하였거늘, 무에 그리 급해 바쁜 걸음 재촉하셨는가.
호리호리 마른 몸에 가슴은 새장형이라고 해부학 수업 시간에 모델로 시범을 보여주기도 해서 그날 이후 그대 닉네임은 새장형 가슴(새가슴)이었지.
학교 가을 운동회 때에는 집에서 만두가게를 한다며 한소쿠리 싸가지고 와서 푸짐하게 잔치를 벌였는가 하면, 그것도 흥에 모자라서 파한 후 모두들 몰고 가서 오래도록 건아하게 뒤풀이를 하였다고 했지... 동창들뿐만이 아리라 선배들도 그 이야기 참 오래도록 즐겁게 떠올리며 되뇌이곤 하였지.
생활이 풍족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누가 봐도 항시 꿋꿋하게 살아가는 호쾌한 성실파라고 느낄 수 있었지.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씩씩한 일상이며 항상 즐거운 사람마냥 의욕 넘치고 활기찼지. 마치 기분에 살고 기분에 웃을 줄 아는 호방한 사내처럼 유쾌하고 화통한 모습 보였지만,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청년 가장이기도 했지. 수업이 파하면 집으로 돌아가 밤늦도록 장사를 하느라 바쁘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를 통해 들은 것 같네. 그래서 졸업 후 남보다 빨리 서둘러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생활한다는 소식 간간히 접할 수 있었지... .
두 수쯤 꿇었다가 들어온 그대에게 새침하게 별로 말없이 지내는 내게 다가와 여자인 나보다 더 상냥하고 살갑게 굴었던 자네였기에, 그리고 사회 초년생일적에 간간히 전화로 곧잘 안부를 주면서 이따금씩 변함없이 의젓한 목소리로 마치 오빠가 동생에게 안부하듯 연락 주고는 했었는데... .
내 삶이 편치 않아 어느덧 그대 소식마저 몰라라 훌쩍 끊어버리고
나 이제야 용기 내어 보고 싶은 친구들 모습 떠올리는 데, 그대 멀리 어디로 떠나시는가.
나, 아직 그대 나이 들어 중후해 졌다는 이야기 귀동냥만 겨우 하였거늘...
이보게, 야속한 사람아!
한 번씩 친구들 만나면 왜 동창 모임에 나오지 않느냐고 물으며, 궁금하다했는데...
다시 만나면 그동안 어찌 살았느냐며 의연하게 회포 풀면서 빼지 않고 수줍음도 없이 마주 앉아 살아온 이야기 스스럼없이 나누고자 했는데... 야속하고 야속해 허무한 사람아.
더운 길, 고되었던 인생 모다 떨쳐버리고 즐겁고 기뻤던 일들만 기억하며 편안히 가시게.
부디 좋은 곳에서 평화롭게 영면에 들기를 빌며... 친구여, 안녕...
학창시절 오빠처럼 친구처럼 살갑고 친절했던 동창 한명복 님의 졸지의 부고를 접하고서 안타까움에 옛 기억과 더불어 고인의 넋을 기리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