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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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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6일 00시 39분 등록

<Animal laborans_028>
어떤이는 '운'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일상사'라고 애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전체)와의 공명'이라고 한다.

작은 사업을 하며 내게 작업실을 빌려주고 계시는 분이 직접 그릇을 깍고 싶어 하신다. 4시간여에 걸쳐 내가 알고 있는 기술을 보여드리며 같이 그릇을 깍았다. 누가 그랬던가. 가르치는 것은 두번 배우는 것이라고. 더불며 즐거운 일이라고... 어느새 투박한 나무에서 부드러운 선과 고운 감촉을 가진 그릇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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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완성된 그릇을 보며 흡족해 하시면서도 무언가 아쉬워 하시는 것 같다. 조금더 크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고 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목선반(Wood turnning)의 성능으로는 무리가 따른다. 좋은 기계를 사면 좋겠지만 단군 프로젝트100일차 때 성공의 보상으로 목선반 기계를 걸었을 정도로 몇백만원대의 고가의 기계이다. (미국에서는 목공이 요트보다도 더 고급 취미에 속한다. 좋은 기계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다음날 그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목선반을 주문하셨다고 한다. 그것도 가장 최고급 사양으로... 목선반은 찾는 사람이 적긴 하지만 좋은 기계는 수입되면 금방 팔린다. 주문한 그날은 때마침 재고가 남아 있어 주문한 다음날 작업실에 새로운 기계가 받을 수 있었다. 간절히 바라던 꿈의 기계...애정어린 눈길로 기계를 바라본다. 그 분이 말씀하신다. '내가 목선반을 자주 다룰 일은 드물어요. 성우씨가 좋은 것들을 만들길 바래서 구입했어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라고 그분에게 여쭙자 그분은 웃으시며 '목선반에 사용할 나무 사시면 되죠'라고 하신다.

가구를 만들 때는 보통 통나무를 건조해서 길게 잘른 판재를 사용한다. 나무 역시 그 가격은 나무 종류에 따라 상상을 초월한다. (기타를 만들 때 쓰는 Snake wood 라는 남미산 목재는 조그마한 한 덩어리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목선반은 마치 도자기를 만들 때 쓰는 판을 90도로 회전시켜 사용하는 구조라 통나무를 건조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좋고 큰 통나무가 있으면 제재해서 판재로 만드는지라 좋은 통나무 자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좋은 목선반이 들어왔으니 좋은 나무를 구해야 하는데 어디서 구한다?

다음날...지방 출장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단군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분에게 연락이 왔다. 태풍으로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쓰러지기 전이라 나무를 자르고 있다. 혹시 관심 있을까봐 연락했다라고... 잠시 도로가 정체된 사이에 보내온 사진을 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좋은 나무다. 좋은 나무라고 말씀 드렸더니 작업하시는 분 연락처를 가르쳐 주신다. 작업하시는 분에게 연락 드렸더니 2m짜리 나무 2그루가 있으니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하신다. 목공 선생님을 비롯하여 지인들에게 어떻게 운반하면 되는지, 조심할 것이 무언지 미리 확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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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전날 밤늦게 겨우겨우 수배한 1톤 트럭 2대를 나무가 있는 곳으로 보냈다. 작업하시는 분에게 다시 연락 드렸더니 트럭 2대로는 다 못 가져간단다. 다시 확인해 보니 2m가 아니라 20m 나무 2그루다.(!) 다시 급히 1톤 트럭 한대를 더 수배하고 나무를 옮기기 쉽게 잘라달라고 부탁 드렸다.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분명 한시정도까지는 나무를 싣고 작업실에 도착해야 했건만 작업이 지연되서인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작업실 앞에서 나무를 볼 수 있었다. 곤란했다. 트럭 세대에 실린 나무의 지름과 길이는 어른 두명이라도 옮기기 힘든 크기와 무게였다. 더군다나 용달차 기사님들은 작업실이 지하인 것을 보연 아연실색한다. 나무를  사람이 내릴 수도 없을 뿐더러 지하에 옮기지도 못 한다고 역정을 내신다.

식은 땀이 흐른다. 겨우 얻은 나무들인데...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나무를 버리지도 못 한다. (나에게는 보물이지만 보통은 이런 나무를 쓰레기라고 하여 돈 주고 버린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고양시에 있는 목공 선생님께 연락을 넣었다. 나무를 야적할 수 없느냐고 여쭈었지만 공방을 이사하셨는지라 더 이상 공간이 없다고 하신다. 선생님께 사정해서 사람을 소개 받았다. 파주시까지 가야 한다. 용달 기사분들이 두배의 운임을 요구하신다. 낭패다. 이를 어쩐다. 일단 제일 좋은 나무들 일부는 작업실에 내려다 놓고 나머지는 소개받은 분한테 맡기기로 했다. 많이 아쉽다. 나무의 무게와 크기 때문에 그 먼 곳에 두게 되면 아마도 태반은 사용하지 못 하게 되리라...

이미 지나가는 많은 분들이 나무들을 쳐다보며 지나간다. 하긴...대한민국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흔히 보기 힘든 통나무들과 그것들과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쳐다볼만한 구경거리다. 도로에 떨어진 통나무와 한창 싸우고 있는 나에게 지나가던 여자분이 말을 건넨다. '이거 두개 정도만 줄 수 없나요?' 이 뜬금없는 질문에 '드릴 수 있는데 어디에 쓰시게요?' '아는 목수분이 있는데 정원에 통나무를 깔면 좋다고 해서 깔려구요. 그런데 이거 어떻게 잘라요? 어느 정도 두께로 하면 좋아요?' 나무와 씨름하고 좋은 나무를 골라 기사분들에게 트럭에서 내릴 것을 독촉하고 있는 나에게 이 분을 대응하는 것 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드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정원이 어떻지요? 직접 봐야 아는데...제가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해야 되서요...^^:;;' '아! 집은 여기에요.'하시면서 가리킨 곳은 바로 작업실 건너편 빌라...어딜 봐도 정원은 보이지 않는다. 의아해 하는 나를 보면 그 분은 작은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하신다.

세상에...땅값 비싸기로는 두번째라면 서러워할 이 비싼 땅에 이 정도 넓이의 정원이 숨어 있었다니...그 분께 조심스레 여쭈어 본다. '나무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고 작업도 할 수 있는데...제가 저 나무들 여기에 둬도 될까요?' '네. 괜찮아요. 편하게 두세요. 저희가 좋죠' 트럭 세대분의 나무를 모두 작업실 건너편 정원에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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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나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문이었다. 눈물 겹다. 모든 게 하나의 선을 타고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고가의 새로운 목선반을 사용하게 될 줄 알았을까? 이런 좋은 나무들을 받게 될 줄 알았을까? 나무 도착이 늦어질 줄 알았을까? 나무를 내려놓지 못 하게 될 줄 알았을까? 이 여자분을 만나게 될 줄 알았을까? 나무를 이 곳에 두게 될 줄 알았을까?

땀으로 샤워를 하고 용달차 기사분들에게 운임을 드린다.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 더 넣어 드렸다. 내가 만난 이 전체와의 공명과 선순환이 또 다른 이에게 흘러가 더 큰 원을 그리게 하고 싶다.

무엇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는 계속 노력해야 겨우 남들만큼 살 수 있는 팔자구나'라고... 희망과 불안을 주무르며 살아가기에 '담담함과 겸손'이라는 김장독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누군가는 '운'이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흘러가는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체와의 공명이고 선순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이를 경험하고 있다.

※ 에피소드 : 나무를 그 집 정원에 둔 그 날밤 그 여자분의 아버님이 작업실에 오셨다. '우리 딸애가 잘 모르고 한 일이니 나무 도로 가져가고 원상복구 시켜 놓게!!!' 순간 긴장했으나 곧 이어 온 여자분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강력히 애기하신다. 주도권은 그 여자분에게 있나 보다. ^^;;;;

IP *.136.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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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10.06 09:21:09 *.197.63.121
추카! 잠재된 내면의 의식과 세상 일이 잘 발화되어 매치되면 더 없이 좋은 일이지. 우주와의 공명 겸허히 잘 전파시키면 좋겠네... .
성우는 좋은 일 많이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팔자인가보다.^^ 팔자를 세우는 일은 각자의 몫일 테지만.

단군이군에 지속적인 참여를 안 해도 애시에 한 원래의 약속은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 하지. 원래의 계획이 미처 원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진행되는 동안 꼭 같이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애시의 약속들은 사심없이 잘 챙겨 지켜져야 공명에 귀기울이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해. 그대에게 하는 말이기보다 첫모임에서의 취지와 이야기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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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0.10.07 13:07:40 *.136.209.2
다같이 할 겁니다. 그 형식이 바뀌어 가더라도...거기에 다시 내용이 보태어질 겁니다.
써니 누나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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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
2010.10.06 09:53:21 *.242.52.22
그대의 길에 우리가 함께 하니 더욱 즐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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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0.10.07 13:05:27 *.136.209.2
저 역시 좋지요...꿈만 같은 일들이 다같이 하고 있기에 가능해졌습니다. 형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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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10.06 20:59:15 *.67.223.154
최성우 화이팅~
돌아보면 이런 순간이 삶의 고비고비에 더 많았을꺼예요.
축하해요. 이제 좋은 작품 나오게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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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0.10.07 13:04:23 *.136.209.2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런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그 때는 그 일이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고 어떻게 선순환을 일으켜나갈까 생각하지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시작이지만 지금이 좋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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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
2010.10.09 00:51:39 *.7.191.35
성우가 준 우드펜..
오늘 워크샵 때 선물로 줄려고 가지고 왔지..
점점 진화하는 솜씨와 작품.. 참 보기 좋아..
계속 쭈욱 가길....자주 이용하고 홍보 많이 해줄께..
컬럼도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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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2010.10.13 11:13:18 *.136.209.2
ㅎ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더 좋은 물건 만들어낼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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