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경
- 조회 수 2397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용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더 넓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 중에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조셉 캠벨의 말대로 내 안에 있는 용을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다. 새로 태어나면 그 동안 중요하다고 여기고 살아 온 가치들의 순서가 재배열된다. 그리고 그 순서에 따라 삶을 일구게 된다. 나의 경험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는 아이를 낳으며 새로 태어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내 몸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내 몸도 생명의 씨앗을 만들어, 열 달 동안 배 속에서 기르고, 그 생명 하나를 몸 밖으로 낼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몸은 그 과정을 모두 해내었다. 물론 생명을 배 속에서 기르고 밖으로 낸 다음 먹여 키우는 일련의 과정은 내 인생 최고의 시련이었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안에 있던 ‘이기심’이라는 용이 죽었다. 내 목숨보다 소중한 건 아이가 되었고 나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보다 밖으로 나와 눈 앞에 보이니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나는 굶어도 아이는 먹여야 했고 아이를 위해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 아이를 낳으며 여자에서 어머니로 새로운 세계를 맞아들였다.
나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 자신을 구원하여 새로 태어났다. 내 안의 욕심과 허세, 그리고 가진 것들에 대한 집착이 나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고 갔다. 지금 걷는 길 이외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나의 뒷덜미를 잡고 놓지 않았다.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 마냥 파멸의 끝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 자신을 구원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안에 있던 ‘탐욕’이라는 용을 죽이고 나니 소박하지만 행복한 나만의 길이 보였다. 이전의 나에게 중요한 가치는 사회적 성공 > 돈 > 가족 > 건강 순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용이 죽고 나니 그 순서 또한 재배열 되었다. 건강 > 가족 > 행복 > 배움과 성장의 순서로 새로운 가치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삶이 새로운 가치에 맞게 일구어지고 있다.
내 안에 있던 첫 번째 용은 굶어 죽었다. 이기심이라는 먹이를 먹던 용에게 내가 상황상 더 이상 먹이를 줄 수 없었기에 죽은 것이다. 내 안에 있던 두 번째 용은 내가 벼려온 칼로 찔러 죽였다. 내가 그 동안 성실히 먹여온, 피둥피둥 살이 오른 용을 찌르는 데는 오랜 시간과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 안에는 또 어떤 용이 살고 있을까? 나는 또 어떤 용을 찾아 내게 될까? 신이 나에게 그 용을 알아볼 지혜와 과감히 죽일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하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