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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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2011년 2월 21일 강훈
봄이 오는 길목에 서있습니다. 입춘이 지났으나 아직도 숲은 겨울의 외양 그대로 입니다. 하지만 저 땅속에서는 봄의 기운이 움터 오르고 있겠지요. 자연은, 숲은 작년보다 더 풍성해 질 것입니다. 봄의 꽃과 여름의 초록으로 젊음의 홍역을 앓고 가을의 숙연함과 비움을 통하여 겨울을 보내면서 한 쌍의 연륜(年輪)을 완성하는 나무처럼 그렇게 비움과 새로 태어남을 통해 나도 단단해지고 풍성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나는 요즘 직장생활을 잠시 정리하고 삶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라는 말을 쓰게 되는 것은 아직도 나의 미래를 내가 확신으로 그리지 못하고 있는 연유에서 입니다. 1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배움과 생각을 갖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나이에 상관없이 꿈은 유효하다라는 얻음을 가진 것이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허무하게 지내버린 지난 나이와의 상관입니다.
봄의 꽃과 여름의 초록처럼 왕성했던 20대~30대의 청춘이 아쉽습니다. 내 삶을 살피기 전에 다른 삶의 눈치를 보았고, 시간을 만들기 보다는 흘려 보내 버린 미성숙함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솟아오릅니다. '오! 지금이라도 다시 그런 시절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하는 어리석지만 삶에 대한 열정을 담고 있는 바램이 마음 속에서 봄의 씨앗처럼 쑥쑥 올라옵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욕망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다라는 욕망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먼저 그것의 의미를 좇아가 봅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느끼는 '열정적인 삶, 나로서 살아가는 참살이' 이런 것을 젊었을 때 해보고 싶다는 바램일 것입니다. 되돌아 보는 삶에서 지금의 자각을 찾을 수 없는 '갭'이 만들어 내는 욕구라고 생각을 합니다. 캡벨이 이야기 했던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살아있는 황홀을 젊음의 한 대목에서 느껴보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것'도 '새로 태어나는 것'도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날의 삶에서 '돌아온 것처럼',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야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라는 표현보다는 지극히 어렵다는 표현이 나에게는 더 적합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날 때 산로를 거치면서 그리고 탯줄을 끊고 어머니의 품으로부터 분리(分離)를 겪을 때 엄청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고 합니다. 몸 담고 있는 것으로부터의 분리, 현재의 익숙함으로 부터의 분리는 태어나는 것의 불가결한 전제조건인 것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도 이런 분리(分離)와 불안(不安)을 제물처럼 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더불어 태어남의 선행(先行)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었듯이, '다시 태어남'의 선행에는 반드시 삶에 대한 오의(奧義)를 깨닫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크고 작건 그런 삶에 대한 눈뜸의 순간을 통하여 낡은 의식의 죽음과 새로운 의식의 태어남이 곧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정의해 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요와 순간적인 느낌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순수한 자발성에 기인한 의지적 선택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선택을 통해서 삶에 대한 인생관과 생활 태도의 변화를 꾀할 때 '새로 태어나는 것'은 걸음마의 단계로 입문하는 것이 아닌지요. 이러한 자신의 인생관과 태도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 수만 있다면 시일이 조금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나로서 살아가는 참살이'를 누리는 '삶의 황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답해봅니다.
내가 '다시 태어남'과 그것을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면 "삶에 대한 진리를 조용히 체험하고 밝게 깨닫는 것, 그것을 아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리해봅니다.
조용하게 체험하고 밝게 깨닫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새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감사합니다.

건너뛴 삶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느린 걸음
오늘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물러간다
쓸쓸한 미소건
회한의 눈물이건
하지만 인생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건너뛴
본질적인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담요에 싸서 버리고 떠난 핏덩이처럼
건너뛴 시간만큼 장성하여 돌아와
어느 날 내 앞에 무서운 얼굴로 선다
성공한 자에겐 성공의 복수로
패배한 자에겐 붉은빛 회한으로
나는 내 인생의 무엇을 해결하지 못하고
본질적인 것을 건너뛰고 달려왔던가
그 힘없이 울부짖는 핏덩이를 던져두고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성공했기에 행복하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
성공을 위해 삶을 건너뛴 자에게는
쓰디쓴 삶의 껍질밖에 남겨진 게 없으니
.................................
..
올리신 칼럼을 다시 읽어보기 하다가 이곳에 올려두었던 이 시가 생각나서 다시 옮겨봅니다.
마음 먹었을 때에 큰 일(변혁)을 할 수 있게 되고, '시작이 반' 이라고 작심이 곧 성취의 길이며, 그리는 삶 자체의 일상을 꾸려가게 되는 것 아니겠는지요. 전심을 다해 귀한 일상으로 쌓아 나가길 바랍니다. ()
- 세상에서 외로움을 가장 두려워하는 여우가^^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