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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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은 저서인 <신화의 힘>에서 “두 번째 태어남이란, 중심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이 정의에 따라서 내가 경험한 새로 태어남의 시점을 돌이켜보니 3가지 정도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외적인 세계에 나를 꾸역꾸역 맞추어 넣어가다가 무기력해져버린 내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기 시작했을 때 맞닥뜨린 초라하고 외롭고 안쓰러운 내 모습과 조우하면서이다. 그 동안 그런 내 모습과 마주치기 싫어서 겹겹이 싸놓았던 껍데기들을 모두 벗어버렸을 때 나는 갓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눈을 뜨기도 어려운 그 아이를 마주하자 홀가분한 마음과 함께 희망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아이를 키워나가는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두 번째는 대학원 시절에 몇 번을 다녀온 소록도에서의 순간들이였다. 소유의 양식에서 존재의 양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취지에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새로운 나를 발견해나가고자 하였지만 마음처럼 쉽게 나라는 사람이 변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소록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한센병을 앓거나 앓고난 분들과의 만남, 특히 미술치료라는 다소 이질적인 주제를 가지고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혹시 병이 옮는 것은 아닐까, 그 분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나를 받아들여줄까, 내가 그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무도 복잡한 심정이었다. 거기다가 자원봉사라는 것에 대해서 그 때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위선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누군가를 도우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게 가능한건지,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쁘기만 할 수 있는 건지... 살면서 그렇게까지 두려운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싶게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나는 도전해보기로 했고 그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함께 가기로 한 동료들이었던 것 같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모아서 함께 준비하면서 많은 용기를 얻었고 갈등을 서로 조율해나가면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수용하게 되었던 것 같다. 소록도에서 만난 분들은 오히려 열린 마음으로 우리는 맞아주셨고 나는 그곳에서 정말 “감사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삶이 이렇게 감사한 것이구나, 내가 여기서 이 사람들과 이렇게 깊이 소통하는 느낌을 갖는 것이 정말 현실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러고 나서 서울로 돌아온 나는 그 전의 나와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느꼈다. 정말 존재의 양식으로 한발짝 내디딘 느낌이었다.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 두려워하던 어떤 것에 도전하였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한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아이를 낳고 난 후 모유 수유를 위해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피딱지가 앉고 또 앉기를 반복하고 허리와 목에 이상이 생기고, 배에 선명히 남은 수술자국이 두드러져 보이던 그때였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완전히 다른 누군가로 완벽히 재탄생했다는 느낌이었다.
젊은, 아이를 낳지 않은, 탄력 있는, 늘어지지 않은......
그런 몸을 가졌던 나는 없어졌다는 상실감이 컸던 것 같다. 그걸 느낄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어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 상실감을 채워주었던 것 같다. 나 혼자였던 세상에 남편이 들어오고, 또 아이가 들어오는 과정을 통하여 나는 새로 태어났다고 느꼈다.
또 앞으로 어떤 순간을 통하여 나는 새로 태어남을 경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그 순간에는 힘들겠지만 그 후에 오는 성장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다음번이 설레이고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