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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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매일, 매초, 매호흡 사이에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짜피 숨이 끊어지는 그 자리가 죽음의 자리이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생명의 지속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고 머무르려는 속성도 가지고 있지요. 그렇기에 습관에 끄달려 살게 마련이고 생명의 연장이 그렇게 새롭지 않고 매호흡이 새로운 탄생이라고 여겨지기 어려울 뿐이만요. 이러한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캠벨은 신화를 통해서 계속해서 내면의 힘 영적인 힘 천복을 쫓아가기등 그 에너지를 다시 내부로 보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는 주어진 것을 너머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 더 나아가 원래 하나였던 이름짓기 어려운 그 근원으로의 귀의가 아닐런지요. 결국 삶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그 이 전에 스스로 자신 되기를 통해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여행이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여행은 스스로가 원할 때에 순간 순간 깨어 있어서 늘 태어나는 새생명의 삶을 얻을 수도 있는 것이고 한 순간 깨우쳐 새로운 삶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진정한 자기 되기.. 주어진 것의 답습이 아닌 강요되어진 자신이 아니라 진정한 나 그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무엇되기가 아닌가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에 대해서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잠자고 있던 나의 영성을 내면의 힘을 쓰다듬고 그 전과는 다른 삶의 진정성에 보다 가까워지는 나로 이끌어 주는 것 같습니다. 잠자던 나의 의식이 깨어나면 그 이전에 볼 수 없던 것들을 경험하게 되고 고통의 세계 속에서 환희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늘 깨어나 있으라는 선가의 말씀이 바로 여기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그 순간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고 인간성이 발현되는 경험의 순간들이겠지요. 일상에 매몰될 수 있는 자신을 다시금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하고 그 마음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을 신화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캠벨을 통해 배웁니다. 그리하여 새로이 태어난다는 그것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어제의 나에 묶여서 오늘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처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말을 서문에서 보았는데 아마도 탄생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탄생이라 이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늘 생각해 오던 것인데 대가들의 예술 작품을 보아도 돌고 돌아서 자신의 모습을 찾습니다. 한 바퀴 돌아 다시 아이가 되는 것이지요. 그 순수에 닿아 있는
그 모습에서 전 이 사람들은 다시 태어났구나 한 바퀴 돌아 다시 자신이 되었지만 이 모습은 이전의 그 모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밀알이 죽어 열매를 맺는 그 말씀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
또한 새로운 탄생을 위해 매일, 매순간, 매호흡 각성하고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캠벨이 얘기했던 중심에서 다시 태어나는
두 번째 태어남을 맞이했으면 합니다. 7기 연구원의 경험이 지금 잉태되고 있는 것들을 빛으로 모아주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첫 칼럼을 마무리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