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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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코 앞에 온 것처럼 포근하더니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점심시간에 사촌동생 상준에게 전화가 왔다. 요새 계속 법정스님의 저서를 읽고 있는데, 깨우치는 바가 많다고 했다. 이번에 나온 스님의 저서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읽고 내 생각이 나서 안부 차 전화를 했단다. 몇 달 전 스님께서 요양을 위해 제주도에 내려가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는지 스님의 안부가 궁금하다. 얼른 쾌차하셔서 돌아오는 꽃철엔 스님의 맑은 법문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에 들었던 바비킴의 '소나무'라는 노래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누구랑 다툰 것도 아니고, 오후까지만 해도 신이 나서 일을 했는데 갑자기 처지는 이유가 뭘까?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아내가 표정이 왜 그러냐며 걱정한다. 씻고 난 뒤 작은 방에 들어가 불을 꺼 놓고, 퇴근 길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소나무'란 노래를 들었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전에 없던 일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 스님께서 입적하셨다. 내 뿌리가 꺾여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바로 어제 동생과 통화하며 스님의 안부를 걱정했었는데. 믿을 수가 없다. 슬픔도 흐느낌도 일지 않았다. 그냥 멍했고 담담했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여 아내와 함께 성북동 길상사를 찾았다. 많은 조문객들이 와 있었다. '설법전'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실감이 나질 않는다. 억지스레 슬픔과 울음을 자아내지 않았다. 묵묵하게 삼배를 올렸다. 영정사진 속 스님께서 당장이라도 사진 속에서 나오셔서 휘적휘적 당당한 풍채로 걸어 나오실 것만 같았다.
함께 3배를 올린 분 중 한 분이 설법전에서 나오자 마자 어떤 스님에게 안기며 오열을 터뜨리셨다. 어깨가 들썩거릴 정도로 심하게 우셨다. 저분께서는 대체 스님과 어떤 인연이셨길래 저리도 슬퍼하실까? 극락전 앞 뜨락을 지나 스님의 법구가 안치된 '행지실' 주변을 잠깐 어정거리다 서둘러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차 안에 앉아 숨을 고르며 가만히 눈을 감으니 스님과 관련된 온갖 기억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행지실에 쓸쓸하게 누워계실 스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스님께서 많이 추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훌쩍이지도 오열하지도 않았다. 그냥 눈에서 눈물이 줄줄줄 흘러내렸다. 아내가 손수건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 주었다.
곧 있으면 스님께서 우리의 곁을 떠나신 지 1주년이 된다. 스님께서는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늘 한결같이 영웅의 모습으로 살아계신다. 새삼 1년 전 스님께서 떠나시던 풍경을 떠올리게 된 것은 스승께서 내게 주신 '관계'라는 화두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관계 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나면서 관계를 시작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관계 속에서 스러져 간다. 그렇게 우리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는 없지만 스님께서 입적하시기 전날 내게 찾아온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슬픔이야 말로 '관계'라는 화두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체험이었다고 여겨진다. 스님과 나 사이에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스님께서 이제 곧 다른 세상으로 떠나신다는 신호를 내게 조금 더 빨리 보내주셨던 것이다. 비록 합리적인 나의 의식세계는 그 신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 가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신호를 먼저 알아차리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듯 '관계'란 우리가 각자 떨어진 별개의 존재가 아닌 하나의 뿌리에서 난 가지임을 아는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꽃 봉오리처럼 잠자던 사연과 가능성들이 시절인연을 만나 맺어지며 꽃을 피운다. 그렇게 맺어지는 순간 우리의 가슴은 공명한다. 그 작은 떨림은 우리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우리의 가슴이 울고 웃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맺어짐. 즉 관계에는 본래 선과 악이 없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좋은 인연, 나쁜 인연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는 가지마다 맑은 수액이 도는 나무와 같아서, 좋은 관계는 수액이 잘 흘러 들어 푸른 잎이 돋고, 꽃을 피운다. 그러나 나쁜 관계는 수액이 흐르지 않아 썩고 메말라 버린다. 건강한 맺어짐은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 따뜻한 배려, 그리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서로의 기쁨과 슬픔에 온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지금, 나와 한 뿌리로 연결된 수 많은 가지들의 힘겹고 지친 눈매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님께서 지구별을 떠나신 지 이제 1년, 스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 '어린왕자'가 사는 소혹성 B-612에 놀러 가셔서 홀로 해넘이를 바라보고 있을 어린 왕자를 위로해 주고 계시지는 않으실는지.
"내 마음 따로 있고 네 마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하나이다. 한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가 내 마음이고 당신의 마음이다. 불우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눈물 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왜냐하면 같은 뿌리에서 나누어진 한쪽 가지가 그렇게 아파하기 때문에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 법정(法頂) 스님
**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스님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3월 11일자 일기에 길상사 설법전에서 함께 조문을 드리고 밖에 나와 오열하셨던 분이 법정스님의 재가상좌(출가하지 않고 속세의 삶을 살아가는 제자)인 청매(靑梅) 왕상한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찾은 블로그에서 왕상한 교수가 법정스님을 20년 전 말 빚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주례를 서시게 한 결혼의 주인공이자, 스님의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의 ‘운판 이야기’에 나온 스님의 ‘음악담당 보좌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상하게도 그 분에게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런 사연을 알게 되니 그분을 따로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참 신기한 인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스님과 왕상한 교수의 사연이 담긴 블로그 http://shoshank69.blog.me/800510100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