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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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하다’가 실상 ‘나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가 될 때, 즉 자신의 특별함을 남들과의 비교에서 찾게 될 때 – 특별함을 느끼는 기쁨보다는 그것이 언제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순간들이 많고, 실제로 그 특별함은 오래가지 못한다. 유독 단체 활동이 많고, 소규모 집단 단위로 이루어지는 각종 모임, 배움 등에 어릴 적부터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비교의 감성이 어느 정도 내재화되어 있기에, 비교와 그에 따르는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물론 일면 그런 측면이 있긴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남들보다 꽤 빨리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경험한 것 같다. 이는 많은 부분 어릴 때 부모님의 교육방식에서 기인한다. 부모님의 교육방식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못한다고 혼내지 않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게 해주자’였다. 나는 육회의 맛을 아는 꼬마 미식가였고, 부모님의 서재를 기웃기웃하며 심오한 소설책을 들춰보던 호기심 많은(아는척하고 싶은) 아이였고, 항상 또래가 아닌 어른들과 생활했기 때문인지 약간은 조숙한 언어생활을 하는 아이였다. 반면 원하는 것은 꼭 해내야 하는 이기적인 면도 있었고, 친구 없이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답지 않은 면도 있었고, 운동신경은 꽝인 아이였다. 부모님은 비교적 빨리 나의 특성을 파악하셨고, 그 중 특별한 기질은 계발하고, 조금 모난 구석도 향후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을 선에서 적절한 성격적 특징으로 계발시켜주려 노력하셨다.
유년기의 시행착오 및 향후 노력을 통해, 나의 특별함을 구성하는 강점으로 정착한 몇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모국어를 포함해서) 다양한 언어를 배워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통해 나의 사유를 발전시키는 것.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편견의 폭을 없애는 것. 새로운 시도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고 내 자신이 통념의 반증이 되는 것. 원하는 것이 많은 만큼 그에 맞는 실행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실행력을 제고하려다 보니, 없던 운동신경도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진정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추구하는 것.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양식(ex. 음악, 미술, 제철 음식)을 전투적으로 추구하는 것.
지금 생각하면, 위 기질들은 성적 스트레스로 폭발해버릴 고등학교 때조차 나의 세계를 가꾸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 외국어 익히기, 대중음악 듣기, 심야 라디오 듣기 등 - 을 고등학교 때 계속 하면서 경쟁 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고, 운 좋게도 이런 면들이 점수화되어 평가되는 입시 전형이 생겨 그 덕을 입어 대학에 입학했다. 요즘의 대학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고는 하는데, 대학교 때까지도 나의 특별함을 애써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대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암묵적 합의가 통용되는 낭만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운 좋게도 아주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각자의 특별함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이 없는 온실 속에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모든 시간과 자원은 내가 원하는 대로 쓰면 되었다.
나의 특별함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회사 연수 때였다. 모두들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생각이 많은 천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라서, 나는 연수 내내 표현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내가 가진 것을 좀 더 어필해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든 적도 있었는데 – 돌이켜보면 나의 특별함을 드러내는, 그것이 바로 나다운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계속해가면서, 나의 특별함을 나타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만의 시간이나 나만의 공간, 독서나 외국어공부를 할만한 정신적 여유가 확보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나는 내 특별함을 유지하도록 남들보다 배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안의 또 하나의 기질 – 조용하지만 아주 끈질기게 힘을 비축하는 반동분자의 면모를 발견했다.
회사 생활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회사에 다니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언젠가 내 힘으로 우리 나라의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어떤 지위에 올라가겠다거나, 몇 년안에 얼마를 모으겠다는 목표보다 훨씬 절박하고 중요한 목표였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었지만, 왠지 그런 변화를 일으키려면 직접 조직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조직 문화의 혁신에 기여하고 싶다는 장기적 목표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 다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론에서는, 내가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목표달성을 모색할지, 공부를 하면서 노력할지 고민중인 상태이다. 나의 또 하나의 기질 중 하나는,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영롱하게 빛난다는 것인데, 반복적이고 창의성이 그다지 필요 없는 지금의 직무에서는 어쩌면 영영 나의 기질을 써먹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으며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최근의 나는, 만약 공부를 계속하게 될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있었다. 석사2년, 박사 5년, 내 나이 34, 결혼은, 아이는, 가정은, 노후는? 이 7마디가 내 머리 속을 헤집어 놓았던 한 주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교의 사고에 빠져들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금 충실히 나의 기질에 집중하게 되었다.
2011년의 3월, 27살의 나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제 처음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7살의 나의 특별함은, 문제의식을 따라 사는 삶에서 찾고 싶다. 회사 생활이든, 공부든, 어떤 활동을 하든 – 그것을 추동 하는 원리가 외부의 압력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였으면 좋겠다. 각자 가진 내면의 목소리는 모두 다르게 마련이고, 나의 특별함은 그러한 환경에서 가장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 목소리가 일러주는 방향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가고, 내가 넘어야 할 산과 무찔러야 할 용을, 이제껏 갈고 닦아 왔던 각종 기질을 이용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