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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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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3일 21시 13분 등록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신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 김용규의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중에서 파스칼의 경구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신을 믿느니 차라리 나 자신을 믿겠다며 기고만장했다. 그땐 내 인생이 내 뜻대로 꾸려지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였다. 신 따위에 기대는 것은 나약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신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에 코웃음을 쳤다. 죽고 나면 끝인데 무슨 천당과 지옥이 있나 했다. 신의 존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신 따위는 전혀 필요 없던 호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나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니 오만 했고 신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내게 신이 필요한 시점이 찾아 왔다.

 

자전적 소설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성공한 커리어 우먼 리즈는 11월의 어느 목요일 새벽 3시 부엌 바닥에 엎드려 간절한 기도로 신을 찾는다. 그녀는 신에게 제발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세요라고 간청한다. 그녀 역시 자신이 원하던 것을 모두 가지고 승승장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신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절망하면서 그녀는 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로 그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나 역시 몸과 마음이 무너지니 신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자 어떤 신에게 의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다가왔다.

 

=종교라고 생각했던 내가 접속할 수 있는 종교란 고작 기독교, 불교, 천주교 정도였다. 종교인이 어쩌면 저럴 수 있나 싶었던 고객, 동료, 지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전도를 가장한 극성스러움과 일주일 동안 지은 죄는 주일에 사함 받으면 된다는 편리한 사고방식도 수긍할 수 없었다. 신도들의 성금으로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부동산 재벌이 된 종교인은 생각할수록 역겨웠다. 신을 섬긴다며 싸구려 잡지의 스캔들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불쌍한 아이들을 볼모로 푼돈을 챙기는 종교인들이 떠올랐다. 어떤 종교를 선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천주교를 떠올렸다. 나는 천주교의 신을 믿어야겠다고 결심했다.

 

1 3일 새해의 첫 일요일, 나는 난생 처음으로 성당에 갔다. 처음 간 성당에서 들은 은은하면서 웅장한 오르간 소리가 경건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 나간 첫 날, 나는 신부님의 강론으로 세 나무 이야기를 들었다. “올리브 나무, 박달나무, 소나무가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브 나무는 세상의 값진 금은보화를 담는 상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한 나무꾼이 올리브 나무를 베어다가 말구유를 만들었다. 박달나무는 멋진 왕을 나르는 큰 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박달나무는 어부들이 쓰는 조그만 나룻배가 되었다. 소나무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하나의 표적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번개를 맞아 쓰레기 통에 버려졌다. 이들의 꿈은 무너졌고 이들은 크게 좌정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이들에게 다른 계획이 있었다. 말구유가 된 올리브 나무는 세상의 왕이신 예수님을 누이신 곳이 되었다. 조그만 고깃배가 된 박달나무는 예수님께서 바다를 잠잠케 하신 놀라운 역사의 현장을 목격했다. 쓰레기장에 버려졌던 소나무는 로마 병사들에 의해 십자가가 되었고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였다. 내가 지금 넘어진 것은 하느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쓰려고 나를 이끄시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생각해 보았다. 잠깐의 어려움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 분의 큰 뜻을 믿고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가며 큰 사람으로 성장해가자 다짐했다. 하지만 천주교인이 되겠다는 내 계획은 잘 실행되지 않았다.

 

나는 신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800페이지가 넘는 신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도 신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인간이 논증으로 신의 현존을 증명하려는 일체의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칸트의 주장이 있었고 신은 사고의 대상이 아닌 경험의 대상이란다. 그런데 그러한 신에 대한 경험은 심리적 환상이기 때문에 실재성이 부인되기도 하고, 설사 그것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종교 생활에 바람직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그것의 가치를 부인한다. 결국 신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 말고 신앙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 나도 이제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고 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있으니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나약해진 몸과 마음을 가진 내가 되고 나서는 일상의 일들이 모두 신의 계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전령인 것이다. 예전에는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신을 원망했다. 이럴 수가 있냐고 따지기도 하고 이번 한번만 도와주면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좌절하지도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 일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신이 나의 쓰임새를 보고 나를 그의 도구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시는 일이라 생각하면 일상이 신비롭기만 하다. 쉰이 넘은 한비야는 아직도 자기가 커서 무엇이 될지 궁금하다는데 나도 그렇다. 도대체 신은 나에 대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

 

이제 나는 신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종교인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성당에 찾아가 신에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조급해할 것은 없다. 신이 만약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나를 그 길로 인도할 테니까. 나는 오늘도 나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하지만 나의 천복을 따르면 그 길에서 천복의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조셉 캠벨이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은 나를 어떤 길로 안내할까? 나의 하루하루가 한 편의 모험소설같이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있으니 분명 나는 빛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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