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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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란 비빌 언덕이다.
몇 년전,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다. 양재역으로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띤 성당의 표지판. 나는 무작정 그 표지를 따라 골목길로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친구를 따라 미사를 보러 간 이후에 처음 가보는 성당이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성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작정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성수(?)로 간단히 십자가를 그리고 가벼운 목례를 했다. 그리고 가까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특별히 기도를 한것은 아니지만 5-10분 정도 앉아 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참 평안해졌다. 잠깐이었지만 높은 천장 때문에 웅장해보이고 굉장히 조용했던 성당이란 공간이 내게 주었던 그 편안함은 이후에도 힘들 때면 한번씩 생각이 나곤 했다. 그 편안한 느낌 때문에 주변에 많은 이들이 그렇게 신을 가까이 두려고 하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에는 학용품이나 선물 따위를 받기 위해 동네에 있는 교회를 간적도 있었다. 불교신자이고 교회를 엄청나게 싫어했던 아빠가 나를 찾아 교회까지 와서 끌고 집에 간 기억도 난다. 그 때는 아빠가 왜 그렇게 교회를 싫어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살면서 다양한 종교인들을 만나고 다른 종교를 너무나 배척하고 때로는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기독교인들을 만나면서-물론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어릴 적 아빠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아빠는 가끔 혼자서 여행을 떠나 산 속에 있는 절을 찾곤 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빠가 어느 날 '너도 같이 갈래?'라고 해서,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어느 절이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는 않지만 아빠와 거의 한달 가까이 어느 절에서 시간을 보냈다. 적막함이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던 절. 좀 짜긴 하지만, 매일 맛있는 절의 음식들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이다. 그 때의 기억 때문인지 템플스테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활성화된 프로그램들에 언젠가 한번쯤은 참여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학교 때였다.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선택한 루트는 제7안식일을 지켜서 이른바 '이단'으로 불리는 삼육교회를 통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때 가족 모두가 그곳 나름의 세례를 받았다. 까만색 옷을 입고 뒤로 돌아 물에 입수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미국공항까지 갔다가 우리를 맞이하러 온 목사님 얼굴만 잠깐 보고 한국으로 되돌아 오긴 했지만 말이다.
작년에는 아는 분이 독실한 원불교 신자여서 원불교 교당에도 갔었다. 매주 일요일 교회처럼 많은 신자들이 모여 말씀을 나누는데, 교회의 목사님들이 대부분 남자분인데 비해-물론 요즘엔 여자분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원불교는 여자분들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왠지 끌렸다. 여기도 김해 교당에서 한번, 서울에 와서 동네 원불교 교당에 한번 갔던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언젠가 내가 종교를 가지게 된다면 원불교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가정환경 및 조사를 할 때면 늘 있던 '종교'란에는 항상 '무교'라고 적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나를 믿어'라고. 그런데 지금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니 참 다양한 종교를 거치며 성장했다. 물론 어느 하나에 완전 푹 빠져 본적은 없지만 말이다.
나만큼이나 다양한 종교를 거쳐 온 엄마가 얼마 전부터 매주 빠짐없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계신다. 지난 주에는 대학원 입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동생에게 교회에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다. 다녀와서 엄마의 왈 '목사님 말씀 재미있지 않니? 목사님 얘기를 듣고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해 지는 것 같아. 사실 사람 사는게 별거 아닌데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거든' 엄마의 말을 들으니 엄마가 종교를 가지고 교회에 나가는게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둥바둥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게 또 있을까? 어쩌면 큰 딸인 내가 해야하는 몫을 교회 목사님이 대신 해 주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덕분에 엄마 얼굴이 좀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종교가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를 가진 적은 없지만,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별로 의심을 해 본적이 없다. 주변이나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신을 영접한 다양한 경험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믿고 있으니까. 주변을 둘러 보면 신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이 많다. 본인이 원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는지 리스트를 적어놓고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봤고, 일을 하다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새벽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들, 그리고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이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봤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이런 고통을 내게 주는 것은 전부 신의 뜻이다. 혹은 나에게 경험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이다'라고 믿으며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신'이라는 존재가 그 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란 정말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과 가족, 혹은 친구 관계 등등 삶의 대부분의 것들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일 뿐
나도 가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평소에 찾지 않던 신을 찾곤 한다. '내가 다 잘못 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보다는 '이런 고통이 내게 또 다른 삶의 지혜를 주는거겠지'라고 생각하는것이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데 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신이란 존재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비빌 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