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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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손에 이끌려 간 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어렸을 때 나에게 종교란 부모님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고, 귀찮은 것이었다. 되도록 이면 안 가고 싶은 곳이 성당이었고 종교는 자유니깐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부모님께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신은 나에게 그리 간절한 존재가 아니었다. 마냥 봄날 같았던 대학시절을 뒤로하고 사회로 나오니 왜 그리 서글픈 일들이 많은지... 그때 처음으로 신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당을 다시 나가기 시작했고, 성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에도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신에게 다가서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성당을 나가는 것은 그저 나의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려 있었다.
꼭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는 그런 순간도 있지만 그런 시절들이 있다. 당시에는 뭔가 흡족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불평을 하고 다니던 시절들이다. 시간이 흘러 그 때를 떠올리면 충실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아쉬움이 남아 눈물이 날 정도로 다시 돌아가고픈 그런 순간들 안에서 난 뭐라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준비해 주셨던 신의 사랑을 그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후에야 느끼게 되었다. 미처 난 깨닫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일을 한번 겪고 깨달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하루하루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성당 안에서의 활동을 통해 나는 신을 미루어 짐작하며, 그가 자신의 말이라 남겨 두신 성경을 보며 그의 한 부분을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와 코, 귀 등을 천천히 더듬어 가듯이 조금씩 내가 경험하는 신만을 이해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큰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난 그 매 순간순간을 신의 사랑을 느끼며 신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수술을 아예 받지 않는 상황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마치 그 순간을 위해 과거부터 나를 이끌어 오신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더 단단히 만들어 주셨다.
인간의 지식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은 결국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오묘한 진리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우연에 의해 발생되어 돌아가고 있다고 하기에는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철저하게 짜 맞춰서 돌아가고 있으며 완벽하지 않은가 말이다. 파리의 앞다리를 굉장한 고비율의 렌즈로 확대한 것이 몇 세기를 걸친 기술을 습득한 장인이 만든 바늘의 끝보다도 더욱 정교하고 아름답다 하는 것은 비단 이러한 창조의 아주 작은 예일 것이다. 하물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어떤 마음으로 창조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 대해서만은 손수 노동을 통해 생명을 전하신 신의 행동만으로도 그가 인간에게 가지는 사랑은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내가 보이지 않는, 나의 인지능력으로는 잘 이해를 할 수 없는 신을 믿는 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한낱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성경의 말씀은 결국 겨자씨의 크기는 정확히 가늠을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믿음은 그러한 확실하게 실재하는 존재의 크기로 확정되어 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믿음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연약한 믿음과 신의 측정하기 어려운 존재로 인해 항상 눈에 보이는 대상과 물질을 추구하고 그것을 손에 넣어 만족감을 느끼기에 급급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신이 내가 태내에 있기 전부터 나를 아시고 나를 이름으로 부르시며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알게 될 때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는 확실한 목적이 있고 나를 끝까지 영원토록 떠나지 않고 사랑하며, 나의 부족한 것을 채우시고 나의 모자란 부분을 다듬어 주실 이가 영원토록 지치지도 않으시고 쉬지도 않으시며 나를 언제나 지켜보고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은 뭔가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다가 올 때도 있다. 하지만 신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시며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는 시편 기자의 말처럼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신이기에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 그 자체가 결국 신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