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서영
- 조회 수 235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신이란 무엇인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에 인자한 눈을 가진 아버지’로만 상상하던 신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준 짧은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그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홍수가 발생하여 한 할머니가 위험에 처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녀는 신께 구원을 기도했다. 기도를 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냈다. 지나가던 이웃이, 구급대원들이 그녀를 구해내려고 할 때 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해다. “괜찮아요. 나는 신이 구해주실 거에요.” 그러나 그녀의 믿음과 달리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이승에서 신과 마주한 할머니는 신께 큰 소리로 따졌다. “네가 얼마나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까.” 이에 신은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네게 사람들을 보내지 않았더냐.”
어린이 성서만화에 실렸던 이 글은 내게 신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신은 영롱한 빛에 둘러싸인 어떤 모습이나 어떤 음성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알던 신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숱한 종교싸움과 갈등을 바라보며, 인간이 신의 모습을 단정하고 규정하는 것의 부질없음과 위험성이 느껴졌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인간의 언어와 환경에 따른 표현방식이 다를 뿐 같은 존재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그저 막연히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때로 이러한 생각은 내 종교의 형식과 규율을 어기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 성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지금 내 기분이 어떤지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끝은 늘 밑도 끝도 없는 사랑고백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근원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외치고 나면 그 분은 기분 좋은 바람향기로, 나뭇가지에 가득 달린 싱그러운 초록 잎의 팔랑거림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순수함 혹은 괴짜스러움으로 기억될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신을 믿었던 때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 분보다는 사회의 판단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서양문명의 흐름이 그래왔듯이 신은 뒷전이요, 나와 내 가족의 안이함과 풍족함이 주된 관심이었다. 신은 단지 절박한 상황이나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을 때 찾다가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금방 잊게 되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늘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보호하고 있음을, 지금은 그 뜻을 알 수 없는 하나하나의 점들이 언젠가는 내게 딱 맞는 가장 좋은 길로 이어질 것임을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서른에 접어들 때 쯤, 그 분의 존재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그 분은
오랜 세월 동안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가치들을 가차없이 무너뜨렸다. 내 스스로에 대한 오만한
생각과 편견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 나는 인간의 나약함과 덧없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 내가 생각했던 미래를 어디론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그분은 내게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마주치는 인연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마음의 울림을 통해서
그 존재를 느끼게 하였다.
그리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신>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막연히만 느꼈던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생각의 조각조각을 모아 어느 정도 그림을 그리도록 도움을 주었다.
인간인 내가 신이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 자연을 통해, 동물을 통해, 사물을 통해 그 분의 존재를 느낄 수는 있다.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겸허한 마음을 가지는 것, 신이 창조한 존재물들을 존중하고 그들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신앙인으로서 삶을 사는 자세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신의 존재를 믿는 자로서 내리는 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