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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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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28일 11시 02분 등록


  말을 못하겠다. '잘 못하겠다'는 게 아니다.
마음을 말로 하면 말이 된 그 순간부터 거짓인 것 같다. 가식적이고 무겁고 비겁하다.
마음과 말은 다르다. 내 맘 같지 않고 심지어 뜻도 다르게 된다. 내 몸에서 크길래 내 건 줄 알고 쌍둥이로 키웠더니 단숨에 피 한방울 안 섞인 남까지 도달하는 사이였다. 이것이 친한 사람조차 외롭게 하는 줄 내가 다 알고 있는데 그제 토요일에 이 형편없는 솜씨로 남을 만나러 갔다.
  혼자가 아니다. 내 친구 넷과 그들 넷. 아홉은 좋은 수다. 내가 좋아하는 수였다. 그러나 그땐 소용없는 수였다. 로또 번호를 찍고 있는 게 아니니까.
오직 서두르기만 했는데도 약속 시간을 2시간이나 넘겼다. 가는 내내 가슴에 벙어리가 얹혀서 무겁고 답답하고 무엇에 집중할 수가 없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이 따위 표현이 싫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둥 심장이 배 밖으로 나올 거 같다는 둥은 너무 흔해빠졌는데 더 좋은 표현을 찾을 수 없기에 쓴다. 내가 흔해빠진 짓을 하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약속을 2시간이나 넘긴데서 오는 조바심인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너무 잘 아는 사람과 만나야 되는 부담감 때문인가.
어쨌든 나는 종일 삼각김밥 하나에 두유를 먹은 게 다였는데도 배부르고 더부룩해서 모임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말은 안 하고 먹을 것은 자꾸 거절하니 이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형님 할 기세, 재미가 개미 콧구멍만큼도 없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근데 아직 토요일 저녁이다. 감정이 그렇다, 감정이. 제일 늦게 도착해서 제일 먼저 모임을 나온 주제에 아직 그 날 찌꺼기 때문에 가슴이 쑤욱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런다. 내일 음악 시험 받아 논 사람 같고 운전면허 실기 시험장에 서 있는 것도 같다. 그 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 하나 곱씹고 되새기고 후회하고 땅을 친다.
말과 태도가 너무 어렵다. 이만큼 살아놓고 모른다며 징징대는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그러나 이럴 때는 징징거려줘야 한다. 누가 뭐래서 누구 때문이 아닌 것이다. 나를 위해서 푸념으로 미친여자 널 뛰듯 살풀이를 한바탕 해줘야지 이 찌꺼기 감정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정신건강상 푸념 푸념 열매를 씹어 먹는다.
아.......
이러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 이제 이걸로 끝. 토요일 저녁 따위....
아아... 근데 전에도 이런 식의 일로 이런 식의 글로 푸념했던 것 같다. 데자뷰.... 전혀 성장을 못했구나... 이러면서 또 북 치고 장구 치고 징징징. 더 살다 보면 이런 사물놀이 몇 십번을 더 하겠지? 또 심장이 쑤욱 꺼진다. 에구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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