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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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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30일 08시 57분 등록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이끌었던 세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고뇌 속에서 살아간 이야기.
어찌보면 천재들의 삶 또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보이기도 하고
그런 가운데 또 그 나름 다른 것 같은 그들의 이야기.
영화나 책 혹은 그 밖의 예술을 통해 늘 대하는 같지만 다른 그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혹적이다..

어릴때부터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재능을 보이던 클라라는 슈만과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슈만은 6년이란 긴 세월을 법정투쟁까지하며 클라라와 겨우 결혼하게 된다.
9살이나 많은 슈만이 그때까지만해도 그다지 뚜렷한 성공을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역시 천재는 천재가 알아본다고 했나. 클라라는 그의 천재성을 익히 간파하고 역사에도 남을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었고 결혼하게 된다.

영화는 그들이 결혼한 뒤 뒤셀도르프에 정착하는 걸로 시작된다.
이때는 이미 슈만이 명성을 얻은 뒤로서 음악가로서 절정에 이른 시기이지만
그 절정 속에 언뜻언뜻 그의 정신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는 시기이다.

그러던 어느날 슈만 부부는 우연히 브람스를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클라라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신화에서 보면, 영웅이 탄생하기위해 여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클라라는 슈만과 브람스라는 두 거대한 낭만주의 영웅을 세상에 인도하는 뮤즈와도 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슈만의 후계자로 지목되어 슈만의 집에 머무르게 되는 브람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훨씬 연상인 클라라를 흠모하게 된다.

"제겐 자유가 필요합니다. 고독할 수 있는 자유말입니다.."
처음 자신의 집에 머무르기를 청하는 클라라에게 브람스가 했던 말이다.

고독과 자유.
예술가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두 단어인건지..
그래서 어쩌면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길을 때로는 그렇게 외로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건지도..

얼핏생각하면 스승의 부인을 사랑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 우정과 애정을 품고 있다.

슈만은 아내 클라라를 사랑하고 그녀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자신 못지않은 천재성을 지닌 제자, 브람스의 인정 또한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아내를 흠모하는 그를 질투한다.

클라라는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하고 끝까지 남편 곁을 지키며 브람스와는 통속적인 그 어떤 관계도 맺지 않지만, 브람스에게 끌리고 슈만의 죽음 이후 브람스의 음악을 연주하며 피아니스트로 재기한다.

브람스는 당대 최고의 천재적 음악가인 슈만을 존경하고 끝까지 스승으로 모시지만
클라라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끝까지 독신으로 남아 사랑은 오직 클라라에게만 바친다.

이들 세 사람의 사랑이 왜 아름답게 느껴지는걸까..

그건 음악이라는 깊은 세계에 그들의 삶조차 내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 어느 누구도 음악 앞에 자신의 삶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한건 슈만, 클라라, 브람스가 아닌
슈만을, 클라라를, 브람스를 에워싸고 있는 서로의 깊고 거대한 음악적 세계였을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천재들도 살아내야했던 일상이란 현실 앞에 그들의 빛나는 재능과 노력마저 흔들리는 모습은 나처럼 일개 평범한 이들의 마음에 한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저들도 저러했을진대..

위엄있게 죽고 싶었던 슈만. 라인강에 투신하지만 자살이 실패하자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자신, 슈만이나 브람스 못지 않은 음악적 재능을 지녔지만, 역시 19세기는 여성 음악가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며 슈만과 브람스 두 거장의 사랑으로 만족해야 했던 클라라. 어쩌면 그토록 뛰어난 음악가였기에 두 거장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세 사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슈만이 아닌 브람스도 아닌 "클라라"라는 제목에서, 영화감독도 두 거장을 뒷받침하는 그녀를 21세기에는 알아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많은 여인을 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생 당신만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저도 같이 가겠어요. 그 어둠의 세계로 혼자보내지는 않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슈만에게 데려다 줄게요.."
슈만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져있는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브람스이다.

같은 여자로서 클라라의 삶이 재조명된것이 기뻤지만, 사실 내가 재발견한 인물은 브람스이다.
그는 내게 짧은 말과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사랑에 대해 또 다른 깊이를 일깨워주었다.

영성학자 데이비드 호킨스의 말처럼 인간의 행위에는 "의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이기에 때론 사랑보다 욕망에 따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의 사랑은 지키겠다고 한다. 영혼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육체적 관계가 사랑이될수도, 욕망이 될수도 있는것을..

그렇게 지독히 사랑해서일까. 사랑하는 그녀가 혼자 어둠의 세계로 가게 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 함께 가 슈만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이다..
사랑하면 함께해야 한다 생각했던 내게는 엄청난 충격의 한 마디였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누며 그것으로 인해 내 삶을 채워가면 좋겠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도 사랑할 수 있음을 배웠다.
내것으로 소유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우리"라는 단어 속에 함께하지 못해도 삶이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말이다..

상대방의 존재이유를 온전히 지켜주는 사랑.
어렵지만, 너무 깊지만.. 그래서 진정 사랑이 위대할 수 있음에 새로이 눈뜨게 해준 영화였다.

칼융이 말하는 자기실현의 길을 저만치 앞서 걸어간 이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의식세계는 나와 같은 이에게는 무의식 세계인듯 깊고 오묘하게 나를 그들 세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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