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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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신지 14년, 새삼스레 아버지의 부재를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그것이 서러워 가만히 산소 주변을 돌아보았다. 산소쓸 때 애들아빠가 사다심은 스무 뿌리 철쭉 중에서 댓 그루 남은 것이 거의 관목수준이 되었다. 죽은 사람이야 그렇다쳐도 산 사람도 함께 하지 않는 세월이 철쭉 덤불로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무언가 될 것 같은 기대주가 아니라, 아버지의 총애에 보답하지 못하여 안쓰러운 어이없는 중년이 되어 있다.

햇살은 아버지 성품 만큼이나 온화하고 따스하여, 사람들은 봄나들이 나온듯 경쾌하게 나무를 베고, 석축공사를 하고, 듬성해진 곳에 잔디를 심는다. 아버지 산소꾸밀 때 누군가 앞으로 합장이 가능하다 하니, "난 안 죽을 거야" 하시던 엄마, 이제 시시각각 늙으신다. 2주만에 한달만에 뵐 때마다 엄마는 속절없이 늙어가신다. 77세, 언니의 시어머니께서 85세에 치매 기운이 있으시다는 것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생애는 빠른 속도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앞으로 겨우 몇년만 엄마가 온전히 엄마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막힌 일이다. 나또한 그 길을 고스란히 밟아야 한다니 그건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인가.
아버지 산소가 좀 내려앉고 잔디가 많이 죽었더라며 이번에 손보는데 오빠가 앞장섰다. 젊어서 '좀 놀았던' 그, 오죽하면 오빠 고등학교 다닐 때 오빠보다 아버지가 더 많이 학교에 갔다는 농담이 전해온다. 받은 것이 있으니 나오는 것이 있구나. 인부들까지 스무 명의 식사 준비를 해 온 큰 올케도 애 많이 썼다. 보쌈에 북어찜에 육개장, 갖가지 나물에 밑반찬이 뷔페가 따로 없다. 한 사람의 수고로 스무 명이 맛있게 먹었다. 나는 전업주부 시절 시골잔치 할 때 이후로는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문득 내 몸을 움직여 여러 사람을 해 먹이고 싶어진다. 내 살을 베어 세상을 먹이는 차원을 이해하다.
울기에는 날씨가 너무 화창했고, 분위기 또한 그래서 행여 눈물이 나오면 참 어색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무심한 마음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그렇게 담담했는데 절하느라 이마를 땅에 댔다가 떼는 순간 아버지의 봉분과 눈이 마주쳤다. 석축을 둘러 더욱 오뚝해진 아버지의 봉분 그 아래 아버지, 착실하게 썩어 문드러졌을 광경이 떠오르며 진저리가 쳐졌다. 나또한 언제고 그런 처지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산다는 것이 허망하고 두려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음을 무서워하면서 사는 것처럼 살고 있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눈물이 더해졌다. 돌아가신지 14년 후에도 그들먹하게 모인 자손의 절을 받고 계신 아버지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지금처럼 사소하고 지리멸렬하게 살다가는 누가 내 죽음을 슬퍼하고, 누가 내 죽음을 기억해줄 것인가.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는 각성이 나를 적셨다. 그러니 아버지는 진토가 되어서도 아버지 노릇을 해 주신 셈이다. 나는 비로소 아버지 1주기에 글쓰던 마음으로 돌아가 소주 한 잔을 아버지 산소에 가만히 끼얹었다.
아버지 1주기에
이제 당신의 생신을 지우고
기일을 기억해야 하는데
그 날, 중앙병원 영안실에서
당신의 함자 위에 놓인 故자가
아직도 막막합니다.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 먹고싶어”
“아아 내가 니 애비를 굶겨 보냈다”
엄마의 통곡에도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내게 당신의 누이가
새침해져 말했습니다.
“곡해라
딸의 곡소리는 저승길을 밝혀준단다“
아버지
이제 당신께 해 드릴 일이
곡밖에 없을진대
어찌 못 울겠습니까
울고 또 울리다
목을 놓아 울리다
아버지 저승길 밝아지라고
태어나서 한 번 가는 길
그러나 상상이라도 한 번 했더라면,
남당리로 온천으로 열 번만 모셨어도
이리 한스럽진 않으리다.
천원을 달라면 이천원을 주시던 우리 아버지
농활한답시고 근 십년을
수상쩍게 떠돌아도
공부 잘 한 내 둘째딸
뭐가 되도 되겠거니
제 자리 찾겠거니
무조건 믿어주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영전에
소주 한 잔 올립니다.
아버지
편히 주무세요.
내가 그대를 만날 줄 몰랐듯이
그대도 나를 만날 줄 몰랐으니
세월인들 맺어지는 인연을 어찌 알리오
세월따라 흐르다보니
옷깃이 스치듯
기약하지 않아도 맺어진 인연인것을
언젠가
옷깃을 스치며 또 다시 만날지
그대로 이어지는 인연이 될지
그 뉘라 알리오
모르는 세월이 흐르듯이
인연도 그렇게 흐르는듯
행여 짧은 인연이라한들
내 뉘를 탓하리오
다만 일체 중생은
인과 연으로 생멸한다하니
좋은 만남으로 귀하고 귀하기를 바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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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관심으로 대해주시는 선배님께 따듯한 시 한편 드리고 싶은데
제가 아는 시가 별로 없습니다..
세월이란 속절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흐르는 세월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역시 저희들 스스로겠지요..
그걸 알기에, 어렴풋이나마라도 알고 있기에
선배님과 제가 이 공간에서 이렇게 만나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몇 년이 흘러도
또 몇 년이 더 흘러도
계속 선배님을 부르며 안부를 청하겠습니다.
한 분의 스승을 함께 모신 제자들이란
그렇게 세월을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 만나면 저 한번 안아주세요..
저도 선배님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부모님께 총질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떤 말을 하면 가장 절망하실 줄 알면서도 날려버렸으니.............
미필적고의에 의한 존속살인이겠지요............
제목을 보는 순간..............
정말 클릭하기 싫었습니다...........
내용을 보기 전에 이미 보고 나면 마음이 찢어지듯 아플걸 알기에..............
언젠가 어느날인가................저는 대성통곡하는 날이 올 것 역시 압니다............
그걸 알면서도 날렸습니다..............어차피 자기 일이 온 우주에서 제일 아픈 일이기에..................
오늘따라 햇빛이 먹빛이네요..................아침부터 취하고 싶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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