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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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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5일 06시 36분 등록


Saving Grace라는 원작의 영국 영화. 여러가지 면에서 놀라운 영화였다.

영국의 조용한 어촌 '콘월' 마을에서 그레이스는 동화에 나오는 정원을 가꾸며 아름다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 그녀는 남편이 집을 담보로 사업을 시작했다가 실패하여 그녀 앞으로 거대한 빚을 남기고 죽은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남편의 정부까지 장례식에 나타나고..

남편의 죽음은 그녀에게 그냥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주저앉아 탄식만 하기에는 은행에서 집을 경매에 넘기려는 연락이 시시각각 오고 있으니..

더 이상 돈을 지불할 수 없어 자신의 정원사 매튜도 해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튜가 그녀에게 죽어가는 화초 하나를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그 화초란 것이 다름아닌 대.마.초.였다!

그 자신 영국에서 제일가는 정원사로 자부하는 그레이스는 그것이 대마초이던 무엇이던 일단 죽어가는 식물에 대한 애정으로 그 녀석을 살리는데.. 그러면서 재정난에 부딪힌 그레이스에게 묘안이 떠오른다. 다름아닌 대마초를 그녀의 온실에서 재배하여 판매하려는 것! 재정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매튜와 함께 그야말로 꿍짝이 맞아 대마초 재배를 시작하기 시작하는데, 더 놀라운건 이 사실이 온 마을에 번지지만, 모두가 그녀를 감싸준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경찰관까지.

그렇게 최고급 품질의 대마초 재배에 성공하여 런던으로 판매를 하러 간 그레이스. 거기서 이야기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다름아닌 대마초를 구입하려는 프랑스 유통상 두목이 그레이스에게 반한 것. 웃음이 절로 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영국이지만 그레이스로 하여금 대마초를 판매하게까지 만들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에피소드 끝에 결국 대마초는 그레이스의 온실에서 불태워지고, 그녀를 도왔던 온 마을 사람들이 마치 향수에서처럼 한순간 그 향에 취해 몽롱한 기쁨에 빠져든다. 정작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건 실화와 허구인지 논란이 이는 그녀의 소설.

이야기만 놓고보면, 대마초를 소재로 한  전반부는 우리에겐 조금 파격이다.
그런가하면 갱단 두목과 결혼하고 소설가로 성공하는 후반부는 헐리우드식 코믹에 가깝다.
그런데 이 모두가 합쳐져 매우 영국스럽다.

얼핏 낯섬과 코믹이 섞여있는 것 같은 이 영화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세심하다.
영국 어촌의 장면들은 마치 이 영화가 무슨 수작이라도 되는 양 숨막히게 아름답다. 그 어떤 영화보다.
거기다 장면, 장면에 너무도 어울리는 노래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그 또한 여느 작품보다 빼어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탁월한건 한 장면, 한 장면에, 대사 하나, 연기 하나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잘 드러난다.
그레이스는 남편 묘지에서 남편의 정부를 만나자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질문을 던진다. 다름아닌 남편과의 잠자리가 어땠냐고. 입이 벌어진 내게, 정부의 대답은 더욱 놀랍다. 별로였다고. 그냥 척했을 뿐이라고.

그 순간 두 여자 사이의 앙금이 녹아내린다.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이해할 것도 같은 장면이다. 그러니까, 결국 여자라는 동련상병의 애증같은 그 무언가 말이다..

자신의 삶 전반이 그토록 무너져내리는 가운데 그녀 스스로 가꾼 대마초를 매튜와 함께 영국의 노을진 해변가에서 피운다. 생전 처음으로. 대마초 연기와 함께 바닷가로 웃음을 날리는 그녀를 보며 무언가 내 가슴 속에서도 통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마, 이 장면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 말이다.
감독은 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대마초를 빌려와 누구의 아내로서만의 그녀 삶을 바닷가 바람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일어서기 시작하여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자신의 삶을 지배했던 가정주부로서의 삶이 철저히 붕괴되었지만
가장 극단적인 사회적 규범으로 자신과의 과거와 결별하고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러나 거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따스한 사랑이 아름다운 융단처럼 깔려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과 함께..

그래서 좋았던 것 같다.
금기적 소재와 다소 엉뚱한 후반부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운 상징이 되어주어서 말이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나다운 삶,
사람들과의 사랑
그리고 숨막히게 아름다운 자연과 음악이 흐르는 삶 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설 용기와
그 용기를 이어갈 유쾌함과 사랑이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은
아주 영국적이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즐거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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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현재 속에 과거를 담고 사는 여자, 루이스의 이야기 "p.s 온리유":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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