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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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볼때까지 감독인 재일교포 출신의 한국인 감독임을 모르고 봤다.
그러면서 보는 내내 일본 영화치고는 정서가 매우 한국적이라 생각했다.
일본 영화 전체를 평가할만큼 일본영화를 많이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늘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이라 표현하듯이 그들의 문화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어딘지 우리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한국문화는 뭐랄까. 좀 더 뭉클하고 인간애 혹은 정이 느껴지고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한데비해, 아무래도 일본영화는 고립된 섬문화가 베어있는듯한 서늘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인간적인 부분을 엄청 담고 있다. 오히려 자칫 70~80년대 신파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경계 직전까지 갔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몇가지 별가루 같은 요소들이 있는데 그 중 한가지는 역시나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점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 꿈을 이뤄나가는 어찌보면 너무도 식상할 수 있지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옛날 이야기처럼 변함없이 즐거운 소재인 것 같다.
영화배경은 1965년 일본어를 잘 못하는 내가 들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사투리가 진하게 베어나오는 후쿠시마현 이와키시 탄광촌. 시대 흐름에 따라 석탄의 수요가 줄면서 탄광촌 역시 해고에 해고를 하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페광의 위기를 벗어나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회사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어딘가 썰렁하고 추운 탄광촌에 "하와이안 센터"를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 정말이지 야심찬 계획인것이, 시커먼 분위기의 탄광촌에 울긋불긋한 하와이안 센터 건립 계획은 색감부터 지극히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듯 하다.
그렇게 시작된 계획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와이를 대표하는 훌라댄스 단원들.
탄광촌을 벗어나고픈 절심함에 친구 기미코 (아오이 유우)를 꼬드겨 신청하는 사나에를 비롯하여, 누군가는 평생 탄광촌에서 늙을 때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딸만큼은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희망 아래 찾게되고, 누군가는 아버지가 해고되어 살 길을 찾고자 지원하게 되고. 그렇게 저마다 다른 꿈, 다른 목적으로 모여든 탄광촌 소녀들을 가리키기 위해 도쿄에서 세련된 훌라댄서 마도카가 내려오지만,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처음엔 그야말로 댄스는 커녕 체조 한판이라도 제대로 가리키고 배울까 싶은 만남이 시작된다.
그 다음 스토리야 대개 이런 영화가 그러하듯이 우여곡절끝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무사히 훌라댄스를 성공시킨다는 전개이지만, 뜻하지 않게 보는 이로 하여금 울컥울컥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기미코를 댄스단원으로 끌어들인 사나코.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해고되는 바람에 살길을 찾아 이와시키보다 더 추운 지방으로 떠나야 한다. 냉정하고 아이들한테 관심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을 것 같던 마도카. 그녀의 무심한 듯한 인사에서 그새 정이 들었음이 느껴지는데.. 결국 사나코가 댄스를 배운 짧은 시간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 아래 얼음같던 그녀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 사나에와 아프지만 뜨거운 이별을 한다... 아마 이 장면이었던 것 같다. 마도코와 아이들이 서서히 하나가 되어 가는 시점. 그리고 그 장면에서 관객인 나 역시 여지없이 찡..하니 찌르륵..하고 정이 참 무서운 사람들의 관계가 전달되어 왔다. 역시 사람들은 누구나 정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닐런지..
다음은 아이들과는 하나가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는 계속해서 이방인 취급을 받는 제자가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마을을 떠나는 장면. 마도코는 이미 기차 안에 있고, 저기 건너편에 아이들이 서 있다. 아이들은 기차가 떠날까 발을 동동구르며 선생님을 외치는데. 이 때 기미코가 조용히 훌라댄스를 시작한다. 모든 댄스가 그러하듯 훌라댄스 역시 아주 경쾌한 부분도 있지만, 아주 느린 부분도 있는데, 신기한건 슬로우 댄스의 경우 동작 하나하나가 수화처럼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눈물을 닦고 제 마음을 전합니다.."
자신이 몸소 가리친 바로 그 몸짓으로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제자들..
사랑은 주기만 해도 기쁘지 않고, 받기만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랑이 가장 빛나게 마음 가득 차오르는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때 아닐런지..
그 어떤 관계에서도 말이다..
그렇게 주고받는 사랑은 두 사람을 다 성장시키는 것 같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통행이 아니라, 양쪽이 다 정성을 다해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고 받을 때
그 때 비로소 다 함께 한걸음 더 성숙하고 성장하는 거. 어쩌면 사랑의 힘이 크다는 본질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들은 마도코를 통해 성장하고, 마도코 역시 아이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받으니 말이다..
도쿄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빚까지 쪼들려 시골 탄광촌으로 내려온 마도코가 일흔이 넘도록 프로 댄서들을 양성하며 지냈다고 한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선한 소명의식에 최선을 다할 때, 그 때는 정말이지 우주도 그 길을 열어주시는 거 아닐런지.
뻔한 스토리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그렇게 누군가 역경을 딛고 성장하고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는 인류역사가 이어지는 한 옛날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것처럼 언제라도 즐겁다. 아마 나에게도 훌라댄스의 경쾌한 희망의 에너지가 전해져서인듯하다^^
그래서 나 역시 다시금 꿈꾼다.
과연 검은 석탄으로 상징된 폐쇄된 세계에서 걸어나와 출 수 있는 나의 훌라댄스는 무엇일지 말이다..
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생기있게 만드는 단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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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http://blog.daum.net/alysa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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