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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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약간의 논란의 중심에 있던 영화를 며칠 전에 보았다.
논란에 걸맞게 나역시 꼭 귀신까지 등장시켜야 했었나..하는 의문은 들었지만
그보단 "궁녀"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한국여성들의 권력지향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 영화에는 가히 지난 세월 한반도 땅에 살았던 모든 여인들의 삶의 모습이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여인으로 태어나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더 처절히 사랑에 전부를 던지는 옥진.
그런가하면 자신이 왕의 씨앗을 품지 못하자 자매를 내세워까지 왕의 핏줄을 품고야 마는 희빈과 이 모든 일을 뒤에서 조작하고 협조하는 심상궁. 그 자신, 궁녀 생활을 거치는 동안 외모로 왕의 눈에 들지는 못했으나 그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한번 권력에 다가서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여인이다.
그런가하면 최고 권력에까지 바짝 다가서지는 못했지만, 그 다음 서열에서도 처절하게 벌어지는 상궁들간의 기 싸움에, 의녀라는 나름 전문직의 길을 걸으면서도 언제 권력에 희생양이 될지 몰라 몸을 도사릴 수 밖에 없는 관습에 젖은 최고참 의녀.
그리고 이 모든 권력싸움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지만 나름 사랑의 상처를 그렇게 승화시켜보려 애쓰는 여주인공, 천령. 그러나 아이러니였던건, 영화 마지막 사건을 파헤치던 천령이 최고참 상궁에게 끌려가 고문아닌 고문을 당하며 생명까지 위협을 받다 결국 또 다른 권력인 희빈의 핏줄인 왕손의 어의녀가 되어 풀려나온다는 점이다. 사랑의 상처를 딛고 자신의 길을 걷지만, 그 길을 걷는 가운데도 권력에 의해 휘둘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세상의 속성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 여성들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서 보여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흔히들 현대 심리학적으로 여성들은 관계지향적이고, 남성들은 권력지향적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쓰는데, 과연 정말 그러할까?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리되었을까..? 혹여라도 여성은 권력을 지향하는 속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외적 환경에 의해 남성들처럼 직설적으로 표현할 길이 막혀있어 어쩔수없이 관계지향적으로 우회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남성이 권력지향적이고 여성이 관계지향적이라는 것이 재능이 천성적이야 후천적이냐는 논란만큼이나 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이슈가 아닐까 하는 생각말이다.
역사적으로 서구사회나 우리나라나 여성들이 권력에 다가가는 길은 남편을 통해서나 아들을 통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에게 선천적으로 권력지향적인 속성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들 나름 권력에 다가서기 위한 우회적 방법인 관계지향적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켜 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게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남성들 또한 선천적으로 관계성이 부족했던 건 아닌거같다. 앞으로만 늘 용맹돌진할 것 같은 남성들이 중년이 되면 감성이 여려지고 그 동안 억눌러왔던 눈물마저 보이는 남성 속의 여성, 아니마를 내비치기 시작하니 말이다.
결국 남성은 권력지향적이니 여성은 관계지향적이니 하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보고,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완성의 길을 지향하는 칼 융의 "자기실현의 길"이 더 다가온 영화, "궁녀" 아마도 그녀들의 수면 아래 권력싸움이 너무도 처절해서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드러내놓고 숨 한번 크게 쉬지도 못하면서, 그러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권력에의 갈망.. 여성을 뛰어넘은 모든 인간의 속성일 듯 싶었다.
한 여자로서, 나 역시 스스로 권력지향적이기보다는 응당 관계지향적인 존재라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만약 저 시대, 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모습의 삶을 추구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귀신까지 등장시키지 않아도 영화는 주제와 소재 자체로 충분히 임팩트가 강했다고 할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냥 그대로 좀 더 깊은 심리극으로 끌고 갔어도 충분히 세련되게 색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었는데, 조금 너무 지나친거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물론 이 부분이야 철저히 감독의 선택 영역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결국 색다른 각도에서 나를 포함한 이 땅위의 여성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되어 논란을 비껴나 좋은 경험이었다. 영화는 때로 영화라는 작품 그대로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이처럼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영화로 기억에 남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표를 찍어본다.
다시금 내 안에도 얼마든지 권력지향적인 아니무스가 존재할 수 있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그러니 더욱 그것들이 엉뚱하게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포용하고 수용하여
보다 성숙한 하나의 인격체로의 성장을 그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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