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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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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일 19시 28분 등록

포스터

가끔 일본 영화를 보다보면 맥없이 잔잔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 아오이 유우의 "편지"또한 그러한 영화 중의 하나.

후키가 6살되던 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쓰던 수동 카메라와 함께 후키를 섬에 두고 떠나는 엄마. 그리고 매해 생일이면 배달되어오는 엄마의 편지. 영화는 마치 시간을 두 배로 늘려놓은 것처럼 천천히 한해, 한해가 진행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유키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하다. 너무 느려 어느새 유키가 성장했는지조차 느끼기 어려울 뿐..

많은 관객들이 이야기하듯 스토리 라인은 참으로 예측가능하다. 반전에 반전은 커녕, 마지막 엔딩까지도 스토리 라인을 비틀어 관객에게 흥미로움을 선사할 의도는 애시당초 없었던 영화인듯, 이야기는 끝까지 배경이 되는 외딴 섬 파아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그렇게 천천히 흘러갈 뿐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어린 유키를 어엿한 성인으로 길러낸 것이 과연 무엇일까..가 아닐런지..

당연히 돌아가시기 전 어린 유키의 스무살 생일까지를 상상하며 써내려간 엄마의 편지가 가장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해주겠지만, 사실 조용히 고요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그뿐만이 아니다.

6살 이전에 이미 돌아가신 아빠이지만, 아빠에게 물려받은 수동 카메라가 유키에겐 자신의 꿈이되고, 그 꿈이 또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현실의 힘으로 유키를 붙잡아 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유키가 성장할 때까지 동경 우체부지국에 부탁하여 아주 오랜 세월을 말없이 유키의 곁을 지켜준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부탁을 고이 지켜준 우체부국장님이 있다. 한편, 유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마을 어른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 또한 침묵으로 유키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마음 한가득 응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매해 생일선물을 챙겨주는 어릴 적 단짝 친구와 유키의 사진을 관광객에게 판매하다 동경의 사진사에게 어시스턴트로 소개해주는 레이나 언니까지. 유키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유키의 성장을 돕고 있다.

게다가, 그 섬의 하늘과 바다는 그 자체로 유키에게 너무도 깨끗한 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며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넉넉히 그 품을 내어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존재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자라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많은 손들이 자양분이 되어주고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는 거. 지금까지 난 나의 생존에 대해 나를 둘러싼 자연과 사람들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을 그다지 해보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보이지 않는 관계에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지루하리만큼 천천히 전개되지만, 어쩌면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흐르지 않는 듯 흘러가는 구름 속에 감춰진 것이 아닐까..

엄마가 돌아가신 걸 알고 난 뒤에도 유키의 삶은 흐른다. 시간이 멈출 수 없듯이, 그녀의 삶 또한 변함없이 흐르지만, 이제 유키는 행여라도 엄마가 자신을 멀리하지 않음을 더 따듯하게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엄마가 좋아하는 벚꽃을 사진에 담으며..

그 긴 세월, 자신을 길러준 것은 엄마의 편지만이 아님을 깨닫게 된 유키와 함께 나 역시도 새삼 주변을 둘러보게 만든 영화, 아오이 유우의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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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찰스 핸디의 신작, "나는 젊음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뮤진트리) 소개: http://blog.daum.net/alysapark

 

 

IP *.9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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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11.07.02 06:24:52 *.163.144.8
삶을 돌아보게하는 좋은 영화였겠습니다.
순환적 삶. 세상의 끝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같아요.
한편의 영화를 감상한 느낌입니다.
참 잘 읽었습니다.
수희향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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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11.07.02 12:38:54 *.98.16.15
뛰어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 나름 맑은 물이 흐르는듯 좋은 영화였습니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감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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